“인제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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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가면……!”
  •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
  • 승인 2019.06.0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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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홍주문학회에서 문학기행으로 강원도 인제의 박인환시인 문학관을 찾았다. 오랜만에 정들었던 고향을 찾는 설레임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언 55년 전, 육군에 입대해 대구 군의학교에서 교육받던 어느 날 오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국민가수 이미자의 애절한 ‘동백아가씨(1964)’의 노래 소리가 아련하다. 마침 설 명절 무렵에 전방으로 부대 배치를 받아 강원도 깊은 산골인 화천으로 홍천, 인제 원통을 거쳐 고성에서 제대를 했던 기억이 문득 생각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처럼 긴 세월 적어도 5번은 변했을 강원도가 군대에서 입버릇처럼 하던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제는 인제가 볼 것, 배울 것, 느낄 것들이 많은 명승 고장이 된 듯 하다.

특히 1926년 8월 15일에 출생해서 1956년 3월 20일에 30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한 강원도 인제의 초절정 미남 시인 박인환 문학관에 들어서는 첫 눈에 보인 ‘세월이 가면’은 인상적이고 감회가 깊었다. 강원도 홍천에 있던 의무대에서 시간이 있을 때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적어 놓았던 시 가운데 ‘지금도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을 읊조리던 추억을 현실 앞에 서서 음미하게 된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올해 3·1운동이 100주년이 되고 시로 저항했던 문인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한국시집 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은 근현대기의 시집을 체계적으로 보존, 전시, 교육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집전문 박물관이다.

공교롭게도 중학교 1학년 때 스승님께서 적어주시고 암송하라 하시던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의 첫 소절인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구절이 저절로 떠오른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의미하듯 시로서 민족의 독립에 항거했던 문인들의 힘찬 고동이 메아리치는 듯 했다.

뒤이어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라고 하듯이 우리 일행은 5월의 울창한 산림 앞에 압도돼 긴 메아리를 따라 오른 곳이 자작나무 숲이다. 치유와 힐링의 자작나무숲은 45만 여 그루가 키 재기하듯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고 자작나무가 하얀 것은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때 묻지 않은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 나무 아래에서는 잡초들이 자라지 못하지만 큰 인물 아래에서는 훌륭한 인물이 배출된다는 명언을 생각하며 높이 치솟은 자작나무의 밀림을 호흡해봤다.

6월은 전쟁의 화마가 삼키고 간 산야의 흔적이 되살아나는 달!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영혼들의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에서 포탄의 쓰라린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는 듯하다. 우리민족에게 동족상쟁의 비극의 발원지였던 강원도가 이제는 문학이 꽃피고 문향이 스며드는 청정지역이어서 문인들이 오가는 낙원이어라!

간성의 향로봉 아래 진부령 고개는 단일로인데 어느 날 동태를 까마득하게 실은 트럭과 마주칠 때 수십 길 낭떠러지가 보이는 협곡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아찔한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손에 땀이 맺힌다.

‘인생은 나그네 길’ 우리네 삶 자체가 긴 여행이고 그 중에 하루라는 여로에서 이것저것 보고 배우면서 최종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인생열차! 하루 24시간 중에 장장 15시간을 걷고 타고 생각하면서 하루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 노을을 사진에 담았다. 하루 중에 아침이나 한 낮보다 석양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황혼기에 이제 앞으로 10년 아니 20년 후에도 다시 올 수 있을까! 인제야! 그 때까지 잘 있거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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