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월산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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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산을 오르며
  • 최복내 칼럼위원
  • 승인 2019.06.0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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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팍팍한 삶을 살면서도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외칠 때가 있다. 잃어버린 지갑을 어떤 행인이 주워, 아무개가 맞느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라든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회적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 등이 그 대상이다. 그리고 사회는 경쟁의 틀 속에서 살아간다고 보면 경쟁의 주체인 ‘나’와 객체인 ‘너’로 생존경쟁의 결과인 ‘사는 것’과 ‘죽는 것’으로 구분 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생활 터전에선 흔하게 ‘너 죽고 나 살자’는 등식(等式)이 존재한다. 그래서 등식 해소 방법을 우리는 모든 생명의 모체인 숲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숲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오묘함이 숲속에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분해자를 어우르며 향기까지 뿜어주는 아름다운 숲길이 지척의 백월산에 있으니 또한 살만한 세상이라고 외쳐 봐도 되겠다.

나뭇잎의 옅은 초록색에서 짙은 초록으로 변해가는 요즘의 나뭇잎이 가장 순수하면서도 아름다운 색깔이다. 백월산은 유명한 산이 아니라서 오를수록 포근하고 아늑하여 태고의 숨결이 그대로 들려오는 듯 정막감마저 든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진 숲길을 한참을 오르다 나무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이 반가워 심호흡을 해본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짙은 향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 신비의 향이 어디서 온 것일까?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바로 앞 때죽나무의 향기품은 하얀 꽃잎 하나가 한 마리의 나비처럼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나도 어느덧 한 그루의 때죽나무가 되어간다. 안으로 내 안으로만 나무속에 깊숙이 고인 향과 수액을 모두 마시고 있는 것 같다. 신록의 숨결이 이런 것인가? 자문도 해본다. 이렇게도 맑고 깨끗한 산의 정기를 온 몸에 칭칭 감으며 산을 올라가는 행복감을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아니랴.

사람은 가끔씩 목욕을 하면서 더럽혀진 몸을 씻어내며 행복감에 젖곤 한다. 그러나 등산길에서의 숲 향과 바람에 비할 수 있으랴. 보이지 않는 몸 속의 세포를 깨끗이 씻어주는 자연, 그 품안에 안기는 것은 영혼까지도 깨워주고 정화시켜주는 그 무엇인가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다는 것이 또한 자연의 진리가 아닌가. 우리는 숲에서 우리의 삶을 배워야 한다. 등산길은 우리의 인생길로 보고 맑고 고운 향과 바람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헹궈 내야겠다.

오늘도 묵묵히 홍성을 굽어보며 홍성을 지켜준 백월산을 올라보자.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 오염되지 않고 가끔씩 산울림처럼 들려오는 정겨운 새소리에 오솔길 같은 등산길이 더욱 정감 있는 백월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이 있어 서로 인사를 나누곤 하였는데 요즘은 찾는 이가 거의 없어 더욱 쓸쓸해 보이는 백월산이다.

정상에서 용봉산 쪽으로 내려다보면 소향리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옛날 소향 마을의 아가씨를 사이에 두고 백월산 장수와 용봉산 장수가 싸웠다는 전설도 아스라이 음미해 볼 수 있는 백월산. 이왕에 백월산 장수가 이겼다는 전설이라면, 많이 알려진 용봉산보다는 찾는 이 많지 않아 외로운 백월산의 정상에 그 전설이 담긴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 놓으면 백월산의 영혼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최복내<숲해설가·숲속의힐링센터 대표·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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