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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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80>
  • 한지윤
  • 승인 2019.06.1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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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금테안경을 끼고 옷도 점잖게 차려입고 있었고 단정하고 우아한 태도였으며 목소리는 알맞은 톤으로서 다소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사시는 곳은?”
“저는 의정부입니다. 이 아이 부부는 서울입니다.”
한 박사는 노부인의 말에서 이해하기 힘든 점이 없지 않았다. 며느리의 친정인 천안이 멀다고 하면 이 곳도 서울에서 살고 있는 아들 부부에게서 보면 먼 곳이 아닌가.
한 박사는 자기의 본분인 의사의 일 이외의 것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초산이지요?”
“네.”
역시 시어머니가 대답하고 있었다.
“최종생리는 언제 있었나요?”
이 것도 시어머니인 노부인이 대답할 것인가 하고 한박사는 기대하면서 물었다.
“3월 26일이었어요.”
한 박사는 이번에는 목소리에 끌려서 환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얀 얼굴에 눈두덩이 조금 소복하고 살이 통통하게 쪄 있는 20대 후반의 얼굴이었다.
“그럼, 진찰을 해 봅시다.”
한 박사는 커튼이 쳐져있는 진찰대 쪽으로 눈짓을 했다. 나이분 간호사가 준비하는 동안에
한 박사는 임신주수를 계산해 보았다.
17주가 된다.

“아드님 부부가 결혼한 것은 언젠가요?”
시어머니에게 물으면 될 것이다 싶어서 물은 것이다.
“식을 올린 것은 금년 4월 17일입니다.”
“그래요?”
나이분 간호사가 커튼을 반쯤 열기에 한 박사는 그 쪽으로 갔다.
오랫동안의 직업적인 육감에서 한 박사는 모진선 씨의 몸을 진찰실에서 보았을 때부터 이전 6개월 말쯤 된 임신부가 틀림없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임신복은 아니었으나 원피스를 입은 탓인지 모씨의 몸매는 외견상으로 임신의 증후가 확실하게 나타나 있었다.
자궁저가 배꼽의 높이까지 올라와 있어 처음으로 밖으로 나타나는 변화다.
“부인, 아기가 움직이지요?”
“네. 움직여요.”
한 박사는 심음계로 태아의 심음을 들려주었으나 임신부는 눈을 감은채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박사는 제 자리에 돌아와서, 임신부인 모진선씨를 잠시 바라보다가,
“부인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12월 31일이 출산 예정일이 되는데요. 아이는 좀 더 빨리 낳을 것 같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시어머니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태아는 지금 상당히 커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최종 생리가 3월 26일이라면 4개월 말이 되는데요, 태동이 있었지요? 태동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5월말이 지나서 있게 됩니다.”
“………?”
“선생님의 진단으로 지금 몇 개월쯤 되었다고 생각되십니까?”
시어머니가 점잖은 말씨로 물었다.
“현재 자궁저가 대강 배꼽 높이까지 올라와 있어요. 그러니까…… 6개월 후반에 해당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만.”
“선생님, 요즘 젊은 사람들의 일이니 다소 차이가 생기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며느리의 친정언니 되는 사람이 이 아이들의 결혼식 후 1개월쯤 되어서 위암으로 죽었습니다. 아직 서른 둘 인데요. 우리들도 충격을 받았습니다만, 그 때 친언니가 권해서 위의 방사선을 찍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임신 된지 얼마 안돼서 방사선을 쐬었으니 걱정이 됩니다. 혹시 아이가 기형이라도…… 욕심으로는 이번 임신은 없는 것으로 했으면 싶은데 만일 가능하다면 몇 개월까지가 될까요?”
백발의 부인은 낮고 침착한 음성으로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법적으로는 6개월 말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중기의 중절수술이란 임신부에겐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 한 번 정도의 방사선은 그다지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
“전 낳고 싶어요.”
젊은 임신부는 이 말 한마디만 했다.
“네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아직 너희들은 젊은데 아이는 언제라도 낳을 수가 있지 않니? 모험인데, 그런 것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심각한 사정이 깔려있는 것이라고 한 박사는 짐작이 갔다.
“오늘은 아이나 산모가 모두 순조롭다고 하시니 안심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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