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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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 최복내 칼럼위원
  • 승인 2019.07.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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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강한 생명력, 절개, 지조, 은근과 끈기로 표현된다. 그래서 우리의 민족성과 연관이 깊고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이다. 고려시대에 소나무는 귀중한 임산자원으로 인정돼 보호됐고 조선시대에 내려와서도 왕실 또는 귀족들의 관재로 삼기 위해서 소나무 숲이 보호된 바 있는데, 굵게 자라서 안쪽의 심재가 황적색을 띤 고급재로, 임금이 승하하면 소나무 관을 이용했는데 이를 황장목(黃腸木)이라해 소나무 또한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지금도 오서산 휴양림 중턱 소나무 숲 입구에 ‘창덕궁’ 이라는 조그마한 표시돌이 있다. 오서산의 질 좋은 적송을 보호하기 위해 왕명을 받고 그 곳에 관리인의 집을 짓고, 관리인이 죽순을 이용하기 위해 대나무를 심어 관리를 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전쟁에 필요한 송진과 질 좋은 소나무를 쓰기 위해 모두 벌채해, 지금은 한 구루의 구부정한 노송 한 구루·허물어진 관리인의 집터·무성한 대나무만이 인고(忍苦)의 오서산 중턱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소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소나무는 수령이 보통 300년 정도 되는데 30년 정도 되면 위쪽으로부터 표피가 벗겨지면서 우리나라 소와 똑같은 색으로 변하여 소나무라고 했으며, 송(松)이라는 이름 또한 색다른 면이 있다. 지금의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길을 가다가 비를 만나 큰 소나무 밑으로 피하게 됐는데 나무가 웅장하고 아름다워 나무목(木)에 벼슬 공(公)을 합성해 송(松)이라 했다. 그러면 솔은 어디서 왔을까? ‘으뜸’이라는 표상은 독수리. 정수리와 같이 수리이다. 그래서 나무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의미로 수리-술-솔로 변했다.

또한 ‘경국대전’에는 가을이 되면 중앙관서에서는 각 지방에서 장정들을 징집해서 숯을 구워 바치도록 한 기록이 있는데 원료가 된 것은 주로 소나무였다. 속껍질은 식량으로서 한몫 했으며 소나무 뿌리의 정기가 뿌리로부터 떠나지 않고 끝까지 붙어 있다고 해서 복신(伏神) 또는 복령(伏靈)으로도 불렀다. 소나무의 또 다른 귀중한 쓰임새는 구황식물이다. 풀뿌리의 대표는 칡이지만 나무껍질의 대표는 느릅나무와 소나무였다. 배고픔을 참을 수 없으면 소나무 속껍질, 즉 송기(松肌)를 벗겨 자근자근 씹으면 떫은맛과 단맛이 솔 향과 함께 목을 타고 넘어가 허기진 배를 채워주곤 했다. 벗겨서 말려 보관해 뒀다가 물에 담가 떫은맛을 없앤 뒤 식용하기도 하고 가루로 만들어 송기떡을 만들기도 했다.

요즘의 우리들은 건강하게 살기 위함으로 숲 에 가면, 폐 속 깊숙이 파고드는 솔향기에 취해 솔의 고마움이 사무칠 때가 있다. 숲의 천이에 따라 안타깝게도 활엽수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으며, 소나무는 오직 우리의 적송만이 소나무이지 검은빛의 외래종 리기다는 흑송·검솔 이라고 해야 맞다. 겨레의 혼과 숨결이 살아있는 우리의 소나무를 보호하고 장려하자. 그러면 소나무도 묵묵히 보답 할 것이다.

최복내<숲해설가·숲속의힐링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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