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 좋던 삼부잣집 담장이 곧 함라마을의 옛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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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좋던 삼부잣집 담장이 곧 함라마을의 옛 돌담길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한지윤·이정아 기자
  • 승인 2019.07.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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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돌담길의 재발견<6>
함라마을 돌담길은 흙과 돌을 적절히 섞어 만든 토석담이 주류를 이뤄 토속성 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함라마을, 흙과 돌을 한 켜 한 켜씩 쌓아 만든 토석담 마을 감싸
만석꾼인 조해영·김안균·이해영 삼부잣집 담장이 마을길 만들어내
토담과 돌담, 전돌 담 혼재 토속성 짙은 아름다움 간직했다는 평
거푸집 담장의 양편에 대고 황토흙과 짚을 혼합 축조한 전통방식


전라북도 익산은 백제(百濟)의 왕도(王都)이자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고을이다. 또한 곡식이 풍성하게 자랄 수 있는 곡창지대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고택(古宅)이 자리한 함라마을 삼부자 집이 있어 해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익산평야의 풍경만큼이나 황토색 돌담장으로 둘러싸인 익산 함라마을. 흙과 돌을 한 켜 한 켜씩 쌓아 만든 토석담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다. 흙다짐에 돌을 박은 형식이 토석담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밖에도 토담, 돌담 형태의 담장과 황토 흙과 짚을 혼합해 축조한 담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후 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세대를 이어가며 만들고 덧붙인 우리민족의 미적 감각이 돌담장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문화유산이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이 담장 길은 익산에 이름난 만석꾼들인 조해영·김안균·이해영 삼부자 집의 담장이 마을길을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만석꾼이 셋이나 살았으니 집의 크기도 알만 하다. 집들이 워낙 커 삼부잣집의 담이 마을길이 됐고, 이 길에 19세기 마을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쌓아 올리고, 덧붙이며 지금에 이르렀다. 가세를 짐작케 하는 커다란 가옥들과 감나무, 밤나무, 탱자나무 등이 심어진 정원이 당시를 연상케 하고 있다.

■ 나눔 실천한 삼부잣집의 가옥과 담장
“조선시대 때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호남의 인재들이 이 길을 따라 말을 타고 지나갔지요.” 이처럼 옛 과거 길로 명성을 떨친 전북 익산시 함라마을은 토석담 뒤의 함라산과 그 옆으로 부(富)를 불러온다는 와우산이 마을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고 앞쪽으로 넓은 들판(평야)이 펼쳐져 일찍이 부촌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가옥인 김안균·조해영·이배원 가옥 등 ‘함라 3부자(富者)’ 집들과 마을 한편의 함열향교 대성전 등도 자리 잡고 있어 마을의 품격을 더하고 있다. 특히 함라면 수동길 20번지에 위치한 7649㎡ 터에 지어진 김안균 가옥(전북도 민속자료 제23호)은 전북 최대 규모로 1920∼30년대 전통적 상류 가옥의 변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안균 가옥은 지난 1986년 9월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다. 삼부자집의 가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김안균 가옥의 안채와 사랑채는 1922년에, 동·서 행랑채는 193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의 전통적인 상류가옥의 면모를 보여주고 조선 말기 양반가옥 형식을 기본으로 구조와 장식에 일본식 수법이 가미된 것이 특징이다. 현대식처럼 거실과 침실을 구별했고, 사랑채 가장 깊은 곳에 별도의 침실을 마련했다. 사랑채와 안채 앞뒤로 복도를 두르고 유리문을 달아 채광을 조절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사랑채는 팔작지붕으로 대청은 누마루 형식으로 정교한 아자(亞字) 난간을 둘렀으며, 안채는 비교적 전통적 기법을 유지하고 있다. 1920년대에 지어진 만큼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상류가옥이 어떻게 변천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문화재다.

조해영 가옥은 함라면 수동길에 위치해 있으며 김안균 가옥과 같은 1986년 9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됐다.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안채와 본채, 별채만 남아있다. 안채는 상량문에 ‘대정(大正)7년’이라 명기돼 있어 1918년에 건축된 것으로 보이며, 별채는 안채보다 조금 늦은 1922년이나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가옥은 정남향에 가까운 남서향이며 안채와 별채는 모두 남북으로 길게 서로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남쪽으로, 별채는 서쪽으로 향해 자리 잡고 있으며 대문채 안쪽으로는 아름다운 돌담길이 정갈하게 서있다. 담장은 붉은 벽돌로 쌓고 그 중앙에 화려한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네모나게 흰 회칠을 하고 돋아나게 그린 그림 속으로 학이나 사슴, 구름, 연꽃과 산삼 등 십장생의 벽돌꽃담이 있다. 경복궁 대조전 뒤뜰의 굴뚝꽃담을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최근에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배원 가옥은 함라면 천남1길에 위치해 있다. 2012년 11월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됐다. 삼부자 집 중 가장 먼저 지어진 이배원 가옥은 김안균 가옥과 조해영 가옥의 모델로 적용됐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평면의 구성에서도 서로 연관성을 찾아 볼 수 있다. 건립 당시에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곳간채 등을 비롯해 이 집안의 부를 이뤘던 여러 채가 있었다.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주위의 토석 담장만이 남아 있는데, 사랑채는 내부를 개조해 1959년부터 원불교 교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안채는 입식부엌으로 개조해 활용하는 안방 뒤쪽 공간을 제외하고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이배원 가옥은 함라면의 한옥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조해영 가옥, 김안균 가옥과 토석 담장, 한옥 기와지붕 등이 어우러져 전통적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세 가옥의 주인들은 특이하게도 한 마을의 만석꾼들이다. 당대 우리나라에는 90여 명의 만석꾼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들 중 세 명의 만석꾼이 한마을에 모여 살았다는 것을 보면 옛 함라지역의 명성과 풍요로움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에만 치중하지 않고 넉넉했던 만큼 동네 주민들에게도 나눔을 실천했던 부자들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전해지고 있다. 경주의 최부잣집을 떠 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나눔의 실천이다.
 

함라마을 돌담길은 흙과 돌을 적절히 섞어 만든 토석담이 주류를 이뤄 토속성 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 토속성 짙은 돌담길, 아름다움 간직해
흙과 돌을 적절히 섞어 만든 토석담이 주류를 이룬 함라마을 돌담길은 토담과 돌담, 전돌을 사용한 담이 혼재해 토속성 짙은 아름다움을 간직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평 쌓기 방식으로 축조된 이들 담은 규모가 크지 않은 일반 농가의 담과 달리 집 안을 쉽게 들여다볼 수 없도록 2m 안팎으로 높지도 낮지도 않게 쌓은 것이 특징이다. 익산 함라마을 옛 담장 길은 약 2km에 달할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돌담길 중에서 차순덕 가옥의 담장은 거푸집을 담장의 양편에 대고 황토 흙과 짚을 혼합해 축조한 보기 드문 전통적인 방식이 특징적이다.

전통가옥들과 함께 마을 한편에 자리한 ‘함열향교 대성전(문화재자료 제85호)’은 마을의 품위를 더해주고 있으며, 마을의 역사와 함께 세월의 더께를 품은 돌담길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익산시는 돌담길 일대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지난 2009년부터 김안균 가옥을 비롯한 50∼60채의 전통 한옥과 담장을 정비하거나 복원해 역사문화 체험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이를 위해 시는 이 일대 10만여㎡에 200여억 원을 들여 광장, 주차장, 전통공원, 황톳길 포장 등 기반시설을 설치했으며, 한옥숙박시설, 전통찻집 등을 조성했다는 설명이다.

익산시청 문화관광과 관계자에 따르면 “호남사람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한양)로 오가던 주요 골목인 함라마을의 돌담길을 널리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한옥마을 등을 조성하고  웅포관광지, 함라산 둘레길, 금강 억새단지 등 주변의 관광자원과 연계한 가족단위 체험·체류형 관광지로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함라’라는 명칭은 이 곳의 주산인 함라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며, 홍길동전의 작자로 유명한 허균이 1611년(광해군3년) 함열로 귀양을 와 유배돼 있는 동안 800년 동안의 시가(詩歌)를  시사적(詩史的)인 관점에서 평가해 묶은 평론집 ‘성수시화(惺叟詩話)’ 등 여러 작품을 집필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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