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 삼지천마을, 굽이굽이 옛 돌담길 따라 추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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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평 삼지천마을, 굽이굽이 옛 돌담길 따라 추억 속으로
  • 취재·글=한관우/사진·자료=한지윤·이정아 기자
  • 승인 2019.07.2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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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돌담길의 재발견<7>
전남 담양의 창평 삼지천마을의 돌담은 토석담이 대부분으로 500년 역사가 묻어나면서 ‘슬로시티 창평’의 상징같은 존재로 꼽히고 있다.

담은 구분과 경계의 울타리 뛰어 넘어 이웃과 이웃 이어주는 소통 역할
집 안과 밖 연결해 주는 소통로, 과거와 현재 연결시켜 주는 세월의 끈
삼지천마을 옛 담장은 전형적인 토석담에 일부는 돌담장 2㎞에 이르러
한옥과 조화 이뤄 전통마을의 가치 높여, 슬로시티(Slow City)지정 요인


원래 담이란 나와 남을 구분 짓는 일종의 금이었다. 길과 집을 구분해주고 이 집과 저 집의 경계를 나눠주는 울타리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분과 경계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소통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남 담양의 창평 삼지천마을의 돌담길(등록문화재 265호)은 부드러운 S자 곡선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 마을의 돌담길은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며 우리의 역사와 함께하면서 자연스레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됐다. 크고 작고 둥글고 모나고 울퉁불퉁 제각각인 돌들은 흙과 뒤엉켜 서로 모자란 부분은 채워주며 차곡차곡 덧쌓인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닮은 역사가 된다. 이 땅의 모든 자연이 그러하듯이 해묵은 돌담은 쌓은 사람들의 심성을 간직한 채 우리와 같이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 간다. 돌담길은 금이고 경계이며 울타리다. 또한 집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소통로이자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주는 세월의 끈이다. 이러한 제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주위의 것들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돌담길은 겨우 내 삭풍에 시달리던 나이든 고목과도, 새봄 파릇하게 물 오른 담장이 덩굴과도, 비가 오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끼들과도 어울려 그 자체가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전남 담양의 창평 삼지천마을의 돌담은 토석담이 대부분으로 500년 역사가 묻어나면서 ‘슬로시티 창평’의 상징같은 존재로 꼽히고 있다.

■ 향토색 돌담에 싱싱한 생명력 가득
소박한 가운데 푸근함이 느껴지는 담양 창평의 삼지천마을은 고풍스런 옛 고가들과 낮은 돌담길이 잘 어울려 정겨운 그림 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들어서는 입구에 보이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대신 말해주듯 16세기 초에 형성된 이 마을은 500여 년의 역사가 곳곳의 고가에서 묻어나온다. 특히 장흥 고씨 집성촌 마을로 고재선 가옥과 고재환 가옥은 지방 민속자료로 지정돼 있으며, 이밖에도 여러 고건축물들이 남도 주거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굽이굽이 굴곡진 골목길 사이로 초록 담쟁이넝쿨이 향토색 돌담에 싱싱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마을의 돌담길은 자그마치 3㎞에 이르는데, 2000여m에 이르는 삼지천마을의 옛 담장은 전형적인 토석담에 일부는 돌담장이다. 전반적으로 돌과 흙을 사용한 토석담으로 비교적 모나지 않은 화강암 계통의 둥근 돌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쌓기 형식의 담장이 혼재돼 있다. 대체로 담 하부에는 큰 돌, 상부로 갈수록 작은 돌과 중간 정도의 돌을 사용해 쌓았다. 그다지 높지 않은 돌담장 안으로 살포시 보이는 올망졸망 장독대와, 졸린 듯 느긋한 삽살개의 조는 모습이 오히려 사랑스럽다. 아마도 이 낮은 돌담장 위로 동네 아낙들은 나물이며, 전붙이며, 손수 만든 그들의 속 깊은 인정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또 꼬마 녀석들은 돌담 모퉁이마다 숨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수 없이 외쳐대며 숨바꼭질에 해 지는 줄 몰랐을 것이다.

나지막한 돌담길을 따라 삼지천 마을을 둘러보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으며 추억에 잠기면 금방 시간이 흘러간다. 소박한 돌담길 따라 한가로이 거니는 뒷짐 진 촌로의 걸음마저 그림처럼 정겨운 곳이다. 그러나 아직 이곳저곳이 세월의 훈장처럼 상처로 남아있는 돌담길은 좀 더 많은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대대로 내려오며 손보고 덧쌓으며 정성을 다한 흔적이 역력한 이 담장에 계속 새로운 손길이 더해지리라.

전남 담양의 창평 삼지천마을의 돌담은 토석담이 대부분으로 500년 역사가 묻어나면서 ‘슬로시티 창평’의 상징같은 존재로 꼽히고 있다.

■ 500년은 족히 된 돌담길 고즈넉한 고택
아름다움과 예스러운 정취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담양 삼지천 마을의 돌담은 또 여러 채의 전통 한옥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전통마을의 가치도 높여주고 있다. 이 돌담은 담양군 창평면을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하게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겉으로 드러난 돌담은 옛 가옥과 함께 ‘슬로시티 창평’의 상징 같은 존재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돌담이다. 담장은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토석담이 대부분이다. 아래는 비교적 큰 화강석을, 중단 위로는 어른 주먹만 한 정도의 돌을 쌓아 올렸다. 담 위에는 또 기와로 지붕을 얹기도 했다. 야트막한 돌담 위로는 호박 덩굴이 늘어져 있었다. 돌담으로 이어진 마을이 푸근하고 정겨운 이유다. 그 담장 너머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같이 놀기를 권하기도 했다하여 돌담은 추억의 공간이며, 그리움의 공간이다. 정갈하면서도 아름다운 돌담길은 추억의 풍경이다. 요즘엔 도회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게 돌담이다.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닥치는 대로 초가집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면서 사라져버렸다.

깔끔하게 정비하는 것도 좋고, 허물어진 곳을 보수하는 것도 좋다. 관광자원으로 만들어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관광자원화 한다는 미명 아래 무조건 개·보수하고 정비하는 일은 자제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얼까.

담양 창평 삼지천 마을은 500년은 족히 된 돌담길과 고즈넉한 고택, 깊은 장맛을 내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명인, 진심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한옥 민박집 등 삼지천마을에는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현재를 뛰어넘는 과거와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고가의 매력에 흠뻑 취할 무렵이면 고 씨 집안 종부 기순도 명인의 장맛에 대한 얘기가 이 마을에서는 빠질 수 없다. “대숲 바람과 솔바람, 햇볕을 받으면서 전통 옹기에서 숙성되기 때문에 최고의 맛을 낼 수 있어요. 대나무 밭 보셨죠? 거기서 3년 넘게 자란 왕대를 마디마다 잘라 대통 안에 부안에서 가져온 천일염을 가득 다져 넣고 소나무 장작으로 구워요. 한 번 구우면 대는 타서 재가 되고 소금은 굳어 하얀 막대가 되는데, 이걸 빻아 다시 대통에 넣고 아홉 번을 굽죠. 마지막 아홉 번째는 송진으로만 불을 때는데 이 과정이 끝나기까지 두 달이 넘게 걸려요. 이처럼 예부터 장 담그기에는 최적의 장소라는 말을 들어왔어요. 수천 그루의 소나무에서 날리는 송홧가루, 지하 150m에서 퍼 올리는 암반수가 장맛을 돋워주는 비결이죠. 어떻게 보면 우리의 장맛은 자연의 선물이기도 하지요”라며 명인의 비법을 공개했다.

마을을 돌아 나오다 보니 허름한 쌀엿 간판이 두세 집 건너 한 집씩 붙어 있었다. 창평 쌀엿은 조선시대에 양녕대군이 이곳 창평 지역에 낙향해서 지낼 때 함께 동행한 궁녀들이 전수해준 것으로 이 지역에 부임한 현감들이 궁중 대감들에게 선물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창평 쌀엿은 바삭바삭해서 입 안에 붙지 않고 먹은 뒤에도 찌꺼기가 남지 않으며 생강을 섞어 맛을 내는데, 이 쌀엿을 원료로 만든 한과 또한 유명하다.
 

전남 담양의 창평 삼지천마을의 돌담은 토석담이 대부분으로 500년 역사가 묻어나면서 ‘슬로시티 창평’의 상징같은 존재로 꼽히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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