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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이야기

‘도로명주소법’이란 것이 있다. 이 법은 국민의 생활안전과 편의를 도모하고 물류비 절감을 목적으로 2017년도에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도로명 주소 사용을 위해 필요한 시책을 마련해야 하고 공법관계의 각종 공부상 주소 및 위치관련 전산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며, 주민은 도로명 주소를 이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법에 따라 도로명 주소를 이용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으나 어쩐지 잘 되지 않는 것은 실로 어쩔 수가 없다.

지난 2014년부터 전면 시행된 도로명 주소는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주택이나 건물에는 순차적으로 번호를 붙여 도로명과 건물번호에 의해 표기하는 새로운 주소체계를 말한다. 위치확인 및 시간절감으로 4조 원을 절약하고 신속한 대응체계구축으로 긴급출동시간을 단축시키며 정확한 배송에 따른 물류비를 연간 27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도로명 주소만을 놓고 보면 이게 대체 어느 동네인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도로명 주소에는 행정구역의 최소단위인 법정·행정의 ‘리(里)’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을(里)은 자연환경이나 전통 및 풍습, 고유의 역사문화에 기인한 이름을 갖고 있기에 이름만 들어도 대략 어떤 마을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롭게 지어진 도로이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주소를 갖다보니 주소만 보고는 도저히 어느 마을인지를 알 수가 없게 됐다. 홍성군에는 ‘내포로’라는 도로가 있는데 이 도로는 홍성읍부터 구항면, 갈산면, 결성면 등 4곳에 연결돼 있고 인근 서산시 해미면, 고북면까지 이어져있다. 하지만 막상 내포신도시에는 이 도로명이 없다. 도로명 주소의 정착이 요원해 보이는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도로명 주소를 시행하기 바로 1년 전인 지난 2013년, 영국의 스타트업 w3w(왓쓰리워즈)의 ‘크리스 쉘드릭’은 쉽고 정확한 주소체계를 고안해 냈다. 지구의 모든 평면을 가로 3m, 세로 3m씩 (약 2.7평) 격자를 그어 나눴다. 히말라야가 됐든 태평양이 됐든 이렇게 모두 나누었더니 약 57조 개에 달하는 바둑판 같은 조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조각에 각각 이름을 붙였는데 그가 사용한 것은 세 단어였다. 즉,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세 가지를 조합해 각각의 조각에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4만 개의 단어만으로 64조 개의 조합이 생겨나게 되어 지구상의 어떤 곳이라도 2.7평마다 주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이 기막힌 주소 시스템은 드넓은 지역에서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예를 들면, 사람으로 가득찬 홍성역사인물축제가 벌어지는 홍주성의 넓은 지역에서 치킨을 시키고 싶을 때, 내 위치에 해당하는 단어 세 개만 불러주면 배달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그 자리로 찾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길을 잃어도 추풍낙엽을 타고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어도 단어 세 개만 불러주면 정확하게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이 시스템은 현재 36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고, 170여 나라 1천개의 기업과 UN, 그리고 많은 비정부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광활한 몽골과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국가시스템으로 도입됐다. 세계적 기업인 인텔, 벤츠, 소니에서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더 나은 주소가 필요한 이유를 일찍 깨닫고 이 기술에 발 빠르게 투자하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 다양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도로명 주소에 목매면서 생활의 불편을 억지로 인내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로명 주소의 가장 큰 불만은 고유의 지명이 주소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홍성문화원에서는 도로명 주소가 시작되던 해에 군내 11개 읍·면의 모든 마을을 조사해 고유지명의 유래와 전통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 사업을 6년간 진행했다. 올해 연말이면 그 대단원의 결실을 맺게 되니 주소는 변해도 홍주의 옛 지명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위원>

조남민 주민기자  cn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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