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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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7>
  • 한지윤
  • 승인 2019.08.2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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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그러므로 자식이 성년이 될 기초는 거의 어머니가 책임지고 있으므로 어머니의 교육여하는 성년 된 후의 성패(成敗) 까지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더우기 농경생활에서는 주로 어머니가 모든 가사 일을 돌보는 것이다. 그 후 아이가 성장하면 아버지를 따라서 사회생활에 관한 일들을 배우고 한 사회의 성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대에는 사회에 나가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곧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였다.
김유신 장군은 집에서는 어머니 교육을 받고 아버지를 따라서 전쟁의 통치술을 습득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난승이라는 스승을 만났다. 그 밖에 한 고조도 이와 비슷한 환경으로서 장자방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 통일국가인 한나라를 창업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농경을 위주로 하는 고대의 사회에서 어머니의 교육은 큰 인물이 될 수 있는 기초를 형성하였던 까닭에, 아버지와 스승보다 더욱 그 역할이 중요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시대에는 강이식, 을지문덕, 연개소문과 같은 위대한 명장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의 고대정치는 자녀들의 교육뿐만 아니라 이조시대에 조직된 방동 운영에 있어서도 큰 효과를 가져왔다.

셋째로, 공가(空家) 폐지의 주역도 어머니들의 가정을 중심으로 한 바탕이라 하겠다.
고구려 통치의 조직체를 삼국 때 촉나라의 제갈공명과 당나라의 이정은 말하기를, 정전제의 도성을 이루어 낙공불락의 성읍이라고 했다. 특히 이정은 말하기를 우부(愚婦)들도 그 도성을 지킴에 있어서 그 집을 죽음으로 지킨다. 따라서 공가(空家)없는 동이(東夷)를 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들이 우리나라에는 공가가 없으므로 군사로 또는 문벌로써도 공격할 수가 없다고 했다.
공가(空家)란 무엇인가?
도성(都城)에 집은 많아서 숲 지대를 이루고 있으나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친목하고 마음을 지키려는 협동심이 없는 것을 이른다. 즉,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친목하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로 화목하지 못한 상태라면 결국 온 도성은 폐허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병가(兵家)의 전략가들은 이러한 공가 지대는 피를 흘리지 않고도 능히 점령할 수 있었다 하였다.
원래 고구려는 고선의 전정제를 계승하여 8가작통제를 실시하였다. 이 제도는 이른바 양면조직으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복수(複數)로 형성된 마을의 운영실태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을의 조직은 철통같이 형성돼 한 치의 공가도 없으며 적군이 침투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더욱이 남자들이 병장기를 들고 싸움터에 나가면 어머니들은 그 부락의 주민들을 지휘하여 전쟁에 공헌을 했다. 이러한 제도를 가진 까닭에 한나라 이래로 수없이 대군을 이끌고 침략을 해 왔지만 그들은 한 번도 성읍(城邑)을 점령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당나라에 이르러 태종은 친정(親征)에 실패하자 이세적에게 고구려를 정벌할 것을 명(命)하였다. 이때에 이정이 태종에게 말한 것은 이른바 8진법이라는 것이었다. 8진법은 물상학의 존재가 아니라 조직의 형상을 말하는 것이다. 즉, 마을마다 공가를 폐지하고 입체적인 조직을 이루고 있어 적군의 침투는 물론, 그들의 첩보원도 한 치의 땅을 밟지 못하도록 하는 작전인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의 이세적은 좀처럼 고구려의 조정(朝廷)에 공가가 없음을 발견했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죽은 후 그 아들 남생(男生)과 남건(男建) 등의 싸움으로 정치적인 공가가 생긴 것이다. 이틈을 이용하여 남생을 꾀어 당나라로 들어가 이세적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원병을 청하게 했다.
이리하여 이세적은 남건을 징벌한다는 명목으로 남생을 선봉으로 세우고 침입을 했으며 결국 요서와 요동의 성읍을 싸우지 않고 점령할 수 있었다. 이것을 가리켜 공가된 고구려는 일조일석에 망했다고 전략가들은 말한다.
이와 같은 전술을 병가들은 음양전 혹은 어머니 전술이라고도 했다. 후대에 이르러 정치가들이 이 8가작통의 조직을 만들어 이것을 반상회 또는 애국반이라 했다.
이러한 조직의 활동은 군사뿐만 아니라 종교 등에도 흔히 사용되는 경우가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고대 우리의 어머니들이 농경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조직했던 어머니 전술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웃과 이웃이 서로 친목하여 물자의 교역이며 또 도난을 막고, 나아가서는 적의 침략을 막고자 했던 어머니들의 조직체였다. 이와 아울러 어머니들은 마을을 위하여 자신의 자식은 물론, 이웃 자녀들까지도 권선징악의 교육에 최선을 다하였다. 이 어찌 어머니의 역할이 스승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다음호에 계속>

<이 소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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