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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의 본질

총만 안 들었을 뿐, 전쟁과도 다를 바 없는 작금의 한일 갈등은 진작, 제대로, 청산됐어야 할 문제들이 곪고 곪은 끝에 터져 버린 것이다. 어쨌든, 이번의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한일양국의 지성인들은 이 사태가 결코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하리라 생각된다. 또한 불행한 충돌은 두 나라 국민 대다수가 결코 원치 않았던 일인 동시에 양국에 득이 되지 않는 사건이자 가능한 조속히 마무리돼야 할 사안으로 여기리라고 본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뭔지 모르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느낌마저 드는 것은 필자만의 심경은 아닐 것이다. 그 까닭은 양국 간의 대응이-그럴리야 없겠지만-갈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가 없게 흘러가고 있다. 필자의 과민반응이기를 바랄 뿐이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양국 정부의 입장을 감안해 지혜롭게 중재할 만한 나라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옛날 같으면 미국이 적절한 시점에 등장해 거중조정을 할법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그 일을 적절히 해내리라고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아베 정부가 예상을 깨고 우리의 등 뒤에 칼을 들이댄 수법은 트럼프가 중국을 다루는 방식을 모방한 게 아닐까 여겨질 정도인데, 중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런 추론 역시 필자만의 억측이기를 바란다.

아베 정권이 상식선을 뛰어넘은 초강경수를 둔 배경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보면, “한국정부는 국가 간의 신의조차도 멋대로 뒤엎는 신뢰할 수 없는 나라이다. 이번 기회에…”하며 팔을 걷어 부치고 나왔다고 분석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를 비롯한 한일 간의 여러 가지 갈등과, 잊을 만하면 되풀이 되는 일본 정부 요인들의 망언은 뿌리가 깊고 다분히 의도된 도발이라는 사실이다.

이점에 대해 일본인 역사학자가 객관적으로 접근하고자 고심한 책이 있기에 관련부분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 나카쓰카 아키라가 쓴 ‘일본인이 본 역사 속의 한국’이라는 책이다. 그는 일본의 사서 ‘일본서기’ 또한 4~6세기 경 야마토 시대에 신공황후가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세우고 지배했다는 신화를 사실로 인정하는 역사학자들이 1960년대까지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조선과의 평화적인 왕래 상태에서도 일본인의 조선멸시관이 마치 지하수와 같이 지속됐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젊은 시인 요사노 데쓰칸이 “옛날 물려받은 미미쓰카(귀무덤)를 다시 쌓을 날도 그다지 멀지 않았구나!”라는 시를 인용했다. ‘미미쓰카’는 임진왜란 때 풍신수길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이 조선인들의 코를 임진왜란 때 베어 보낸 것을 쌓아 만든 무덤으로, 10만개 이상의 코와 귀가 묻혀 있다고 한다. 1910년 8월,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탄한 뒤 초대 조선 총독이 된 데라우치 육군대장은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가 살아 있다면 오늘밤 달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라는 시를 읊었음을 인용하며 일본 지배계층의 조선침략 야욕을 비판하고 있다.

일본지도자들의 이런 그릇된 우월감은 ‘조선 낙오론’에 이어 ‘정한론’을 낳고 조선을 강제 침탈해 식민지로 만든 만행으로 연결됐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에도 “한국이 일본 덕분에 발전하게 됐으니 고마워해야 한다”는 식의 망언이 되풀이 된 배경도 그 밑바닥에는 자신들은 천손이라는 우월의식과 한국을 깔보는 심리가 깔려있다. 나카쓰카 교수는 일본인들이 망언을 반복 하는 이유를 이렇게 파악한다. 일본이 이차대전에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최고책임자였던 천황이 전혀 전쟁책임을 떠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일 러일 전쟁을 비롯해 한국병합 등 모두가 천황의 이름 아래 이루어졌음에도 천황의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이 일으킨 모든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책임도 추궁당하지도 않았으며, 그에 대한 반성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패전 이후에도 일본정부는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계속 정당화하는 망언을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요컨대, 일본의 일본지배계층은 아직도 식민지 지배 시절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망상 속에서 빠져들곤 하는 것 같다. 그 위에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크게 환대받고 평가받는 일본을 유독 남북한만이 “과거의 잘못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용서를 빌 용기도 없는 느이들이 뭘 어쩌자는 거야?”라고 우습게 대하니 일본(우익)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의 비극은 한일 양국 간이 그 동안 누적돼온 문제가 일시에 불거질 것으로 보이기에 양국의 지성인들은 이번 사태가 비이성적으로 치닫지 않도록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리라고 믿는다. 한편, 이번의 사태를 자기들의 정치적인 이해타산과 연관시켜 접근하려는 인간들이 있다면 개탄스럽기 짝이 없는 망돌이 될 뿐만 아니라 역사에 크게 죄를 짓는 짓이 될 것이다.

이원기 <청운대 교수·칼럼위원>

이원기 칼럼위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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