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5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홍주지명 되찾기 주민여론·자치단체장의 의지가 관건 홍주지명 되찾기 주민여론·자치단체장의 의지가 관건 1995년 일본총독부로 사용한 중앙청 첨탑제거, 지명개명의 시초지명은 정신적 매개체, 나라와 민족 정체성·역사문화유산 상징홍성지역주민 70% 이상 “홍주라는 옛 고유지명 되찾아야 한다”홍주지명역사 천년과 맞물려 지명되찾기범군민운동본부 출범해 우리의 민족정신과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 강제로 성(姓)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을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지명(산·봉우리·마을 등)을 일본식으로 바꾼 것이 ‘창지개명(創地改名)’이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지명을 되찾기 위한 시도는 최근 서거한 김영삼 대통령시절, 광복 50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12-04 17:17 홍주지명 되찾기 주민홍보·논리개발·전략이 필요하다 홍주지명 되찾기 주민홍보·논리개발·전략이 필요하다 창지개명(創地改名)은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創氏)과 같은 맥락‘홍주’지명 1941년 홍주면이 홍성읍으로 승격하면서 종적 감춰행정중추도시 과거 홍주목의 영광과 번영재현에 기본적인 목적군차원의 지명변경 필요성 홍보, 여론수렴과 주민들 설득 필요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일제 때의 지명이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일제는 당시 행정 편의라는 이유로 우리말 고유 지명을 전부 한자로 바꿨으나, 그것이 자기네 통치 행위의 편리성을 위한 것인데다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속셈까지 더해진 것이어서 광복 이후 정부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옛 지명을 복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11-19 10:57 홍성의 옛 고유지명이 홍주라는 사실 “알고 있다” 86.2% 홍성의 옛 고유지명인 홍주를 되찾아야 한다 “69.5% 동의 한다”홍주지명 일제에 의해 홍성으로 강제 개명 사실 “여성 절반 모른다”홍주의 지명역사가 1000년이 되었다는 사실 “홍성군민 절반 모른다”홍성읍민 51.1% 홍주로 바꿔야 한다, 33% 바꾸지 않아도 된다 답해홍주일보 홍주신문(대표 한관우)은 2015년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에 선정돼 문화체육관광부·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공모사업인 “지역공동체캠페인-홍성의 옛 고유지명 ‘홍주’를 함께 찾아요”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보도 및 이와 관련하여 홍성군민을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11-12 10:07 홍주 고유지명, 일제강점기 홍성으로 고쳤다 홍주 고유지명, 일제강점기 홍성으로 고쳤다 1910년 한국을 식민지화한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지방제도의 전반적 개혁을 도모하였다. 토지조사사업 및 지방행정의 재정적 안정화를 위하여 각 행정단위를 통폐합하고, 구획을 명확하게 획정한다는 방침 하에 동리 이상 면·군 통폐합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이 작업은 1913년 3월과 4월 일괄 실시되었다. 1913년 12월 29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도의 위치 관할구역 및 부군의 명칭 위치 관할구역)을 반포하고, 1914년 3월 1일부터 행정구역 통폐합을 실시하여 단기간에 완료시켰다.결국 1914년 군·면 통·폐합령에 따라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10-29 10:00 조선시대 내포지역 중심고을은 홍주목(洪州牧)이었다 조선시대 내포지역 중심고을은 홍주목(洪州牧)이었다 1895년 제도개정, 홍주목이 홍주군(洪州郡)되기까지 정3품 목사 파견조선시대 홍주목(洪州牧) 고을명은 일시적으로 충청도 도명으로 사용홍주(洪州)의 고을명이 충청도 도명에 반영된 것은 명종 4년 이후 9번홍주(洪州) 행정중심지 부각, 조선시대 충청도 4목(충주·청주·공주·홍주)홍주(洪州)는 공민왕 7년(1358) 왕사(王師) 보우(普愚)의 고향이라 하여 목(牧)으로 승격되었다가, 공민왕 17년(1368)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고, 공민왕 20년(1371) 다시 목이 되었다. 조선시대 충청도는 차령(車嶺)산맥을 경계로 2개의 권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10-22 16:52 홍주목(洪州牧)과 왕사(王師) 보우(普愚)국사의 고향 홍주목(洪州牧)과 왕사(王師) 보우(普愚)국사의 고향 홍주, 공민왕 7년(1358) 왕사(王師) 보우(普愚)의 고향 목(牧) 승격홍주(洪州) 조선이 망할 때까지 600여 년 동안 충청지역의 중심지 홍성사람들은 지금도 홍주인(洪州人)이라고 스스로를 부르고 있다. 홍주(洪州)가 공주·충주·청주와 더불어 충청지역의 대표적 중심지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연유에서 출발한다. 더구나 충남도청이 공주시대와 대전시대를 거쳐 2012년 말부터 충청도 홍주 땅에 정착했기 때문에 그 자부심은 더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어떤 이유에서인지 홍주(洪州)가 목(牧)의 위치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10-12 15:57 홍주(洪州), 태조 왕건과 홍규 결합 거점지역 부상 홍주(洪州), 태조 왕건과 홍규 결합 거점지역 부상 나말여초 충남지역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천안과 홍주라는 도시의 새로운 등장이다. 물론 ‘홍주(洪州)’라는 지명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천안과 홍주의 등장은 웅주(현 공주) 중심의 지역구도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홍성지역의 옛 지명인 ‘운주(運州)’나 ‘홍주(洪州)’를 논함에 있어서 ‘태조 왕건’과 함께 ‘운주성주(城主) 긍준(兢俊)=홍규(洪規)’를 빼놓고는 역사적으로나 고증학적 측면에서도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결국 신라 말 고려 초에 ‘홍주(洪州)’지역은 ‘태조 왕건’과 함께 ‘운주성주(城主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8-27 11:18 성종 도단련사, 현종 지주사 이후 ‘홍주(洪州)’로 고쳤다 성종 도단련사, 현종 지주사 이후 ‘홍주(洪州)’로 고쳤다 홍주(洪州)의 연혁을 보면 ‘ 10년(927년) 정해 3월에 왕이 운주(運州)에 들어갔다고 하였다. “지금의 홍주(洪州)이다.”라고 하였다. 성종(成宗) 을미(성종14년, 995년) 에 운주 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고, 현종(顯宗) 임자(현종3년, 1012년) 에 단련사를 폐하고 지운주사(知運州事)로 고쳤다가, 뒤에 홍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도단련사(都團練使)란 고려 초기에 설치되었던 지방관 중 하나다. 성종 14년(995) 지방제도를 재정비하기 위해 전국을 10도(道)로 나누고,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8-20 10:08 태조 왕건 재위 918~943년 홍주(洪州) 이름 탄생 추정 태조 왕건 재위 918~943년 홍주(洪州) 이름 탄생 추정 ‘홍주(洪州)’라는 지명은 고려 초부터 등장한다. ‘홍주(洪州)’라는 이름은 ‘운주(運州)’라는 지명의 뒤를 이어 나오는 이름이다. 운주나 홍주라는 이름 역시 고려초에 등장한 이래 성종 14년(995)의 지방제도 실시에 의하여 도단련사(都團鍊使)를 파견함으로써 공식적인 행정구역 명칭으로 지위가 확인된다는 점이다. ‘운주(運州)’라는 지명은 고려가 건국한 서기 918년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사’ 태조 원년 8월의 기록에 “웅주, 운주 등 10여 주현이 배반하여 견훤의 후백제에 귀부하였다”는 기록에서 나타난다. 이를 근거로 한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8-13 10:40 홍규(洪規) 고려시대 홍주의 호족 홍주홍씨(洪州洪氏) 홍규(洪規) 고려시대 홍주의 호족 홍주홍씨(洪州洪氏) 견훤의 후백제와 왕건의 고려가 정립되면서 충남지역은 양국의 경계지역에 위치하게 됐다. 당시 충남지역의 동향은 그 지역을 독립적으로 다스리고 있던 호족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향방이 결정됐다. 특히 차령을 경계로 해 그 이북과 이남지역의 향배가 달랐다. 일찍이 공주는 905년 공주장군 홍기(弘奇)가 궁예에게 항복해 태봉의 영역이 돼 있었다. 918년 궁예가 내쫓기고 왕건이 즉위하자 후백제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이흔암(伊昕巖)이 중앙에서의 정변 소식을 듣고 철원으로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궁예의 심복이었던 이흔암은 자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8-06 17:47 옛 고유지명 ‘홍주(洪州)’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빼앗겨 옛 고유지명 ‘홍주(洪州)’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빼앗겨 우리의 역사가 왜곡된 것은 기정사실인데 그중에서도 지명에 관한 것이 그 단초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사람의 이름에는 명분이 있고 지명의 뒤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부르는 지명 역시 다양한 뜻을 포함하고 있다. 깊은 뜻, 재미있고 해학적인 뜻, 슬픈 뜻 등 역사와 문화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일제는 한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이른바 창씨개명 (創氏改名)이라 해서 한국인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제로 바꾸게 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고유지명(地名)도 마음대로 일본식으로 고쳐 버렸다. 그런데 일제가 패망하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7-30 10:48 태조왕건 긍준에 ‘홍(洪)’씨 성 하사, 지명 ‘홍주(洪州)’? 태조왕건 긍준에 ‘홍(洪)’씨 성 하사, 지명 ‘홍주(洪州)’? 홍주, 평택이남·경부선 서부·금강이북 22개 군현 관할운주, 태조 이전 궁예의 통치기 중요성에 등장한 지명현종 3년(1012년) ‘운주(運州)’를 ‘홍주(洪州)’로 고쳤다긍준, 태조로부터 ‘홍규(洪規)’하사 받고 ‘홍주(洪州)’로고려 태조가 후백제에게서 지금의 홍성지역을 빼앗은 후 천안과 함께 후백제 공격의 전진기지로 삼았다가 고려가 재통일한 후에는 국방 못지않게 세수미를 나르는 조운도 중요시했다. 바닷가인 천북과 오천 사이 천혜의 해협에 충청수영을 세운 것을 계기로 충청 서북단인 태안반도에서부터 전라도 군산과 접하는 금강 하구인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7-23 11:57 ‘운주(運州)’지명 고려 건국한 918년 기록에 처음 등장 ‘운주(運州)’지명 고려 건국한 918년 기록에 처음 등장 홍주는 고려 이전의 역사를 잘 알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으로 역사학자들의 견해다. 따라서 ‘고려사’나 ‘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지리서에서도 ‘홍주’의 연혁은 고려 초 ‘운주’로부터 시작된다. 홍주지역의 성주(城主)가 ‘긍준(兢俊)’이라는 이름이 나타나면서 ‘운주(運州)’라는 지명이 고려가 건국한 918년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태조 원년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웅주, 운주 등 10여 주현이 배반하여 권훤의 후백제에 귀부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운주’라는 지명은 고려 건국 이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운주’라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7-09 14:14 고려시대 운주의 탄생과 ‘홍주’지명사용 이유 있었네 고려시대 운주의 탄생과 ‘홍주’지명사용 이유 있었네 ‘태조 왕건(877~943)의 부인인 홍복원부인(興福院夫人) 홍씨(洪氏)가 바로 홍주(洪州)출신이었다’는 점과‘홍주(洪州)사람 삼중대광(三重大匡) 홍규(洪規)의 딸’이라는 점이다. 홍복원부인 홍씨가 태조 왕건과 결혼했다는 점, 그의 아버지를 홍주(洪州)사람으로 기록한 점, 삼중대광 홍규와 딸인 홍복원부인 홍씨의 성(性)이 홍주(洪州)에서 비롯됐다는 기록에 주목해야 한다. 고려시대 지명의 변화는 정치·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의 홍성지역은 고려시대에는 운주(運州) 또는 홍주(洪州)라 불리었음은 분명해 보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6-25 11:07 홍성, 옛 목사고을 고유지명 ‘홍주’를 찾지 못한 유일한 곳 홍성, 옛 목사고을 고유지명 ‘홍주’를 찾지 못한 유일한 곳 홍성의 옛 고유지명 홍주 지명역사 1000년, 충남도청 홍성이전 원년주(州)자 붙은 옛 목사고을 중 유일하게 ‘홍주’만 고유지명 못 찾은 곳일제에 강제로 빼앗긴 고유지명 ‘홍주’ 되찾아 명예 회복해야 여론광복 70년 ‘홍주지명되찾기 범군민운동본부’ 토종지명 되찾기 운동 전국을 비롯해 충청지방에서는 지금도 큰 고을 명칭에 ‘주(州)’자를 붙이고 있다. 옛날 관찰사가 주둔하고 있던 공주(公州)나 충주(忠州), 청주(淸州)가 그런 고을들이다. 그러나 한 때 공주, 충주, 청주와 같은 목사가 있었던 큰 고을 ‘홍주(洪州)’는 1914년 일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6-18 11:43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