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수룡동 사람들과 집 수룡동 사람들과 집 강경애 할머니가 유모차를 밀고 힘겹게 깔끄막을 오른다. 마을회관 앞에서 빠곰허니 들여다보니 신발이 없다. 한번 숨을 내쉬고 허리를 편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예전에는 저 국화밭 있는 곳까지 갯바닥이었는디 시방은 국화만 지천이당게. 그만큼 이 동네가 먹고 살기는 어려워졌단 얘기여. 괴기를 잡으러 멀리 나가야하고 요 지척에서 굴이나 조개나 바지락도 쉽게 캘 수가 없응게. 개발이 되니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어.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의지하고 나누고 그랐는디 시방 지금은 사람 인심이 옛날 같지 않아. 그래도 길이 훤하니 뚫리고 커피도 쉽게 타서 마시니 편키는 허지.’ 돌아서 나오려 하는데 저 멀리 샥시가 한 명 걸어오면서 손을 흔든다. 지난 번 왔던 홍주신문 기자다. 유모 역사자료로 살펴보는 수룡동 마을 | 김옥선 기자 | 2018-03-25 09:26 새벽종이 울렸네, 마을종도 울리네~ 1970년대 ‘유신의 갯마을’ 수룡동 새벽종이 울렸네, 마을종도 울리네~ 1970년대 ‘유신의 갯마을’ 수룡동 새마을운동은 1970년부터 시작된 범국민적 지역사회 개발운동이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수재민 복구대책과 아울러 넓은 의미의 농촌재건운동에 착수하기 위해 근면·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마을가꾸기 사업을 제창하고 이것을 ‘새마을가꾸기운동’이라 부르기 시작한 데서 시작됐다. 1971년 전국 3만 3267개 행정리동(行政里洞)에 시멘트 335포대씩 균등하게 무상 지원해 각 마을마다 하고 싶은 사업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 이 결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 첫째는 정부가 무상공급한 시멘트로 부락민들이 자체 노력과 자체 자금을 투입해 마을이 필요로 하는 숙원사업을 해낸 경우고, 둘째는 시멘트의 무상공급을 받았지만 뚜렷한 사업을 하지 못한 경우다. 역사자료로 살펴보는 수룡동 마을 | 김옥선 기자 | 2018-03-20 09:50 에~헤 어허요 행차마다 대만선이로다~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 풍어제 에~헤 어허요 행차마다 대만선이로다~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 풍어제 지난 2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 마을 풍어제가 열렸다. 풍어제는 정월 보름날 서해 바다를 지키는 용왕산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제다. 풍어제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마을에 사람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당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수룡동 마을은 한국전쟁 시 황해도 옹진으로부터 들어온 이주민들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황해도식 당제가 자연스럽게 전해져, 충청도식 당제를 기본으로 배치기 노래의 리듬 등 황해도 지역의 독특한 문화현상을 조금씩 보태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당제를 치르고 있다. 수룡동 당제는 서해의 용왕신에게 당제를 지내는데 용(龍)은 한국의 대표적 수신으로 용의 보살핌으로 마을이 보다 평안하다고 믿었 역사자료로 살펴보는 수룡동 마을 | 김옥선 기자 | 2018-03-10 09:29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