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어서는 ‘부모-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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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서는 ‘부모-되기’
  • 노승희 <사과꽃발도르프학교 담임교사>
  • 승인 2024.05.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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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모두 다르다. 나의 부모, 친구들의 부모, 짝꿍의 부모, 이제는 부모가 된 친구들까지 하나같이 자식을 목숨만큼 끔찍이 여기면서도 사랑하는 방식, 가르치는 방식은 다양하다. 발도르프학교 교사로 지내며 3년 동안 만나온 학부모님들의 모습은 유독 별나다. 아이들의 교육 하나만을 위해 학교를 만드는 결심을 하고 때 묻은 농가주택과 폐원한 어린이집을 뜯고 고쳐서 학교 건물을 만들어내기까지 부모님들이 들인 수고와 노력은 말로 할 수 없이 크다. 불가능할 줄 알았던 일들을 해내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시지?’ 입이 떡 벌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부모가 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발도르프 학부모님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되기’가 높고 가파른 에베레스트 등정처럼 느껴지면서도 사랑 그 자체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아기 천사가 찾아와주기를 바란다. 결혼과 출산, 육아가 인생의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지 오래. 많은 남녀가 ‘부모-되기’를 두려워하고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때에 나는 왜 ‘부모-되기’를 희망하는가? 
 

고병헌 외 14명 / 민들레 / 1만 원.

대안교육 격월지인 《민들레》의 글을 주제별로 묶은 선집 중 <부모 되기, 사람 되기>에는 ‘흔들리며’ 아이와 함께 하루하루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을 그린 각기 다른 15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부모의 모습 중 나는 어떤 모습을 향해가야 할지. 책을 읽으며 돼 가는 교사를 넘어 돼 가는 부모, 돼 가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교사로서 마주하는 학부모님의 모습 중 가장 마음이 어려울 때는 ‘가족의 경계’ 속에 아이를 가둘 때이다. 감히 사랑의 크기를 비교한다면 부모만큼은 아닐지라도 부모와 함께 이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동반자의 역할을 자처했는데, 어느새 ‘제 아이니까 제가 알아서 해요’라는 반응을 보일 때다. 아이는 그 부모의 울타리 속에 갇히고 만다. 울타리를 치는 부모의 아이에게는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부모-되기란 나를 넘어선다는 것’이라고 말한 저자 서덕희는 ‘공공성, 부모의 한계를 넘어서다’라는 제목으로 ‘교육의 공공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모를 대신하여 누군가가 아이에게 교육 환경이자 모방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부모 자신이 아이에게 채워줄 수 없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내 아이는 누군가에게서 배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마을에 지난해부터 알게 된 한 아이가 있다. 마을에서 열린 공연에서 처음 만났는데, 혼자 온 그 아이는 짝꿍과 내 주변을 맴돌더니 어느새 우리가 가져온 간식을 같이 먹고, 나중에는 내 짝꿍의 무릎에 앉아 공연을 봤다. 처음에는 ‘애가 친화력이 좋네’라는 생각이었지만 점점 알아차렸다. ‘이 친구에게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사실을. 아이를 알만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미 마을의 어른들이 그 아이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섬세하게 신경을 쓰고 계셨다. 교실에서 반 친구들 모두와 1대 1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대화를 진행했고, 학교, 마을 단위에서도 그 아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방식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안심이 됐다. 

이 아이는 마을 사람들의 애정 어린 관심 속에서 성장할 것이고 어른이 되면 한때의 자신처럼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아이의 교육에 있어 가족의 경계를 허물자. 아이는 울타리를 넘어서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은 울음소리가 아니라 날개짓을 보고 뒤따라오는 존재들이다. 부모로서 내가 할 일은 살아가면서 만날 또 다른 아이들에게도 내 자신이 괜찮은 교육 환경이자 모방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일. 사람-되기를 부지런히 할 뿐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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