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5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기억속의 향기 기억속의 향기 어머니는 쑥 향기를 머금으며 어느새 쑥을 뜯던 과거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어린 시절 쑥만 뜯어도 행복했던 그 때로 말입니다.서울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께서 저희 집에 놀러오셨습니다. ‘볼거리가 많은 관광지에 가볼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날씨가 좋다며 ‘쑥이랑 씀바귀, 머위 뜯고 싶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마트에서 파는 쑥은 향이 안나”라고 불평을 합니다. 어머니는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부려 앉아 쑥과 씀바귀, 머위를 한가득 뜯어놓았습니다. “옛날에 이렇게 쑥 뜯어다 많이 먹었어”하며 환한 소녀웃음을 보여줍니다.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향기’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매연 속에 핀 꽃은 그 향기가 순수하게 와 닿지 않았고, 신선하지 않은 농작물은 본연의 향은 사 마을에서 만난 사람 | 홍순영 주민기자 | 2019-05-19 09:08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물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물 내가 그녀의 집을 찾아간 날, 그녀는 그릇 만드는 공방을 다녀왔다며 활짝 웃고 있었다. 한겨울 추위에 농사일은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행복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그녀.오경희(64세·사진)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백화점에서 15년 정도 자신의 가게를 운영했다. 일을 마치고 야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에 피로를 풀기도 하고, 네일샵에서 손톱에 치장을 하며 자신을 꾸밀 줄도 아는 여자였다. 시골에서 흙을 묻히며 농사 지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그런 경희 씨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홍성에 내려와 혼자 힘으로 800평의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다. 블루베리연구회를 통해 농사에 대한 공부를 하고, 경험을 통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접목해서 블루베리를 키워나갔다. 블루베리는 6월에서 7월말까지 수확하는데 이때 손이 많이 마을에서 만난 사람 | 홍순영 주민기자 | 2019-05-05 09:09 기억들이 쌓여 있는 시골 빈집 기억들이 쌓여 있는 시골 빈집 며칠 전에 마을방송을 통해서 마을 어르신의 부고소식이 전해졌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서 빈집이 하나 더 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유독 빈집이 많아 보인다.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이 대부분 빈집이라 그렇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10년 전 시골에 처음 이사 와서 빈집을 볼 때는 약간 으스스했다. 함석지붕은 망가져있고, 대문 틈사이로 보이는 마당에는 수풀이 우거져 작은 숲이 되었다. 장독대며 생활 살림은 조금씩 남아있고 천장에는 거미들이 부지런히 집을 지었다. 이런 빈집을 보고 살고 싶어서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빈집의 소유자는 쉽사리 빌려주거나 팔지 않았다. 사람 없는 마을에 이웃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빌려주면 좋으련만’, ‘산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팔면 좋으련만’ 하며 마을에서 만난 사람 | 홍순영 주민기자 | 2019-04-20 09:08 오늘도 구룡정미소를 지킨다 오늘도 구룡정미소를 지킨다 복상규(80·사진)씨와 오금순(74)씨는 30년 동안 구룡정미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지킨다. 쌀농사를 짓고, 쌀을 사서 먹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서 정미소를 찾는 사람들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홍성읍에서 내가 살고 있는 장성리로 향할 때면 어김없이 구룡리 동구마을을 지나쳐 온다. 이게 가장 빠른 길이다. 구룡리 동구마을로 들어올 때면 옛날 교과서에 나올법한 오래된 간판의 ‘구룡정미소’가 눈에 띈다. 때로는 ‘탈탈탈~’ 소리를 내며 벼 껍질이 벗겨지는 도정소리도 들리고, 가을 추수할 때면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을 본다.매일 지나쳤던 구룡정미소로 쌀을 구매하러 갔다. 꽤나 높은 지붕과 연식이 좀 된 기계들이 정미소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줬다. 한쪽에는 갓 도정한 쌀들이 흰색 포대에 담겨 차곡차 마을에서 만난 사람 | 홍순영 주민기자 | 2019-04-07 09:02 몸이 아파 넘어져도 웃는다 몸이 아파 넘어져도 웃는다 김종실(63·사진)여사는 고된 시골 생활과 힘든 형편에 몸이 자주 아팠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람들에게 환한 빛을 선사한다. 잠시 마주쳐 인사라도 건네면 그녀의 웃음꽃이 전달돼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김종실 여사는 충남 당진에서 살다가 23살에 결혼해 금마면 천변마을에 살게 됐다. 4대가 함께 살며 15명의 대가족이 함께 생활했다. 24살에 아들을 낳고, 2년 후에 딸을 낳았다. 시댁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농사는 돈이 안됐다. 논은 큰 다랑이 하나, 작은 다랑이 하나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추수한 쌀은 모두 농협으로 갔다. 농협에서 대출한 빚을 갚느라고 쌀을 농협으로 보내도 내 손으로 들어오는 돈은 없었다. 1000여 평 되는 밭을 가꾸었지만 대식구가 한겨울 먹다보면 남는 것은 없었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 | 홍순영 주민기자 | 2019-03-25 09:04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