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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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 윤해경(풀무생협 이사·주민기자)
  • 승인 2015.08.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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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된지 70년… 우리는 과연 해방된 것일까? 2015년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간 역사의 그늘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 ‘암살’이 개봉 최단기간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는 것 역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것의 결과일 것이다. 픽션인 영화속에서는 친일파와 세작이 독립운동가의 손으로 끝내 처단되는 장면은 필자 뿐 아니라 보는 이들의 기분을 통쾌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이후에 독립운동가는 천시 받았고 그 후손은 명맥을 유지하면 다행인 삶을 살았으며 친일반민족세력들은 그 재산과 권력을 그대로 물려받아 지금까지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일은 역사에서 사라졌던 약산 김원봉 선생의 등장이다. 1940년 이전까지 김구 선생보다 훨씬 더 많은 현상금을 걸어놓고 일제가 그토록 잡으려 했으나 한 번도 범접하지 못했던 항일무장 투쟁의 영웅 김원봉 선생은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가장 악랄했던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빨갱이’로 매도되고 체포돼 바지가 벗겨지는 치욕과 각종 곤욕을 치르고는 삼일 밤낮을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선생은 결국 김구 선생이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위해 북을 방문할 때 함께 올라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1956년에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 당시 함께 숙청돼 남북 모두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영화가 약산 선생을 역사에서 다시 등장시킨 것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전쟁이 끝나지 않은 지금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기억하는 것 뿐 아니라 억지로 지워졌던 우리 역사속 영웅을 다시 등장시켰으니 말이다. 친일 후손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그 도를 넘어 국정교과서 운운하며 자기 선조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까지 이른 미친 현실 속에서 ‘윤석진이 세작이면 처단하라’는 명령을 16년이 지난 후에도 잊지 않고 실천으로 옮겼던 영화 속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현실의 실제 장면이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배어나오는 것이 필자만의 감정만은 아니리라!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부와 권력은 일제와 그에 충성하는 1% 친일반민족세력에게 집중돼 있었다. 일부 역사를 왜곡하려는 자들은 식민지 시대에 근대화를 압당겼다고 하기도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근대화는 국가적, 민족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분단된 조국에 사는 지금도 완전한 근대화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데 무슨 식민지근대화란 말인가? 다만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을 위한 산업화라는 말이 합당할 것이다. 본 기고에서는 이 문제를 주제 삼는 것이 아니니 이쯤 해두고 어찌되었든 핵심은 나라의 부가 편중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해방이후에는 어찌 됐는가? 일제가 물러간 후 적산이라 하여 일본과 친일세력이 차지했던 재산을 헐값에 불하한 것을 적산불하라고 부른다. 이승만은 자신의 권력 유지을 위해 반공의 기치를 들고 어이없게도 친일파를 중용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내몰았으며 이 방법은 지금까지도 기득권자들이 정치적 상대를 제압하는 유용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적산 또한 대부분 부를 유지하고 있었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게 불하되었고 지금의 대재벌들은 대부분 그 당시 적산을 불하받은 자들의 후손이다. 이는 사회정의에 대한 심대한 혼란을 초래하여 지금도 큰 세력에게 아부하고 자신들의 이웃을 매도하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정의가 살아있는 해방된 조국에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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