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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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6>
  • 한지윤
  • 승인 2016.06.3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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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이 부근의 농가는 산간에 있는 조그만 토지를 경작해 왔는데, 워낙 땅이 메말라 있어 아무리 화학비료를 주어 봤댔자 큰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신경통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억지로나마 겨우 일을 하고는 있지만 무릎이 시큰거리고 손목도 아파서 앞날의 일이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셋인데, 맨 첫째가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고 부인은 또 임신을 해 배가 불러 있었다. 그 외의 식구로 귀머거리나 다름없는 노모가 있다고 했다.
농가의 밤은 빨리 왔다. 8시쯤 되자 벌써 마을 사람들은 잠자리에 드는 듯이 보였다.
“당신들 둘이서 함께……?”
하고 할머니가 넌지시 소영에게 물어 왔다.
“네 괜찮습니다.”
소영이는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이것이 시대의 새로움인가. 집 전체가 좁은 농가이다. 다른 방을 하나……하고 요구한다면 어느 한 사람은 처마밑이나 헛간에서 잠을 자야 하는 도리밖에 없다. 소영이는 위세 좋게 대답을 해 놓았지만, 막상 할머니가 꼬부라진 허리로 깔아 주는 이불을 보자 그만 기겁하고 말았다. 그리고 둘이서 함께 자도 좋으냐고 물은 것은 방을 말한 것이 아니고 이불을 의미한 것임을 깨달았다. 보통 내기가 아닌 소영이도 순간 기가 찼다.
“소영이, 넌 할머니하고 같이 자겠다고 말해야지.”
일호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 집에는 여분의 이불 따위가 있을 리 없고 그렇다고 이불 한 채를 따로 달라고 요구한다면 주인 내외의 잠자리도 문제인 것이다. 이제  남은 방법이란 누가 누구하고 한 짝이 되어 자느냐 하는 문제였다. 이윽고,
“나같은 할망구하고 같이 자도 괜찮다면……”
하고 할머니가 말했다.
일호가 자신의 궁지를 재빨리 선명히 해결해 준 재치에 소영이는 마음이 놓였다. 할머니의 곁에 누워 있더라도 옆의 일호와의 거리는 불과 30센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손만 뻗혀도 닿을 정도의 거리였으므로 잠버릇이 고약해 구르기라도 하면 둘이 겹쳐지기도할 것이다.
주인 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할머니도 크게 코를 골며 잠들어 버린 뒤, 소영이는 잠을 못 이룬 채로 웬일인지 옆 자리의 일호 생각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전등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신문지를 찢어 발라 놓은, 게다가 그 신문지 마저 군데군데 찢어진 창문으로 달빛이 하얗게 새어 들어오고 주위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정막만이 깔려 있다.
일호는 눈을 감고 있었으며, 가슴 위로 두손을 깍지 끼우고 굳은 표정으로 꼼짝 않고 있었다.
소영이는 문득 팔을 뻗쳐 유일호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지금 여기는 티벳트의 깊숙한 오지와도 같은 인간세계로부터 격리되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요함과 알지못할 미묘한 그리움의 감정이 소영이에게 그러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유일호는 아직 잠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일호는 아무 반응도 보여 주지 않았다. 벌써 잠이 들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오만하게도 자는 척하고 있는 것인가. 소영이는 생각을 돌이켜 손을 뗐다. 일호가 진짜로 자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무언가 자제를 하고 있던 탓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면 현명하다고 할지는 몰라도 비겁한 녀석임에 틀림없다. 성북역 에서부터 품고 있었던 일호에 대한 소영이의 엷은 기대는 그 순간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소영이는 얼마 뒤 건강하게 잠이 들었고 두 사람은 다음날 예정대로 일을 마치고 마을을 떠났다. 일호는 여행의 목적을 달성했다.
싫든 좋든 이 여행을 마치고 났으니 소영이의 성격으로는 박정하고 냉정한 유일호같은 녀석은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소영이는 어느 날 역시 고교 동창생이었던 다른 남학생으로부터 일호가 폐결핵으로 온수암 근처에 있는 요양소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개는 S대학교에 입학하기까지는 몸이 으스러져라 공부에 열중하다가 일단 입학을 하게 되면 한바탕 쉬는 것이 예사였다. 그런데 일호는 머리를 싸맬 정도로 수험 준비 공부도 하지 않고 그럭저럭 합격해 놓고 난 뒤 비로소 열심히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연구심도 왕성했다. 사법서사를 하고 있던 부친이 오토바이에 치여서 직업상 가장 중요한 오른 손목을 다치고 나서는 일호는 6명의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 노릇을 해 온 터였다.
그 결과 병을 얻은 것이다. 친구들이 서둘러 주선을 해주어 시설이 좋은 온수암 국립 결핵요양소에 입원해, 최근 수술까지 받아 한 때 위독한 상태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지만 그 뒤 차도가 순조로와 다소 건강해 졌다. 그러나 당분간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이므로 먹고 싶은 것도 자유로이 먹을 수 없고 따라서 사 줄 수도 없으니 불쌍하기가 말이 아니라고 그 친구는 소영이에게 전해 주었다.
인생에 대해 끝없는 이상과 정열을 갖고 전자계산기처럼 정확히 상황 판단을 하는 일호였다.
그러한 그가 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 소영이의 가슴 속에는 착잡한 감정들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소영이는 그녀가 영웅으로 여기던 어떤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질 때.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간절함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유일호의 병은 단순히 균이 침입한 육체의 병이 아니라, 어떤 사회악이 그 원인이 되어 그에게 발병을 하게 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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