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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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3>
  • 한지윤
  • 승인 2016.11.0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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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그러나 당신도 사촌누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까? 제가 친구인 그분을 데리고 오는 것이 뭐가 나쁜 것입니까?”
“내 동생은 순번을 기다려 코트를 사용합니다. 그렇다고 그분에게 순번을 기다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곳에 경기를 하러 온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국회의원이 오니까 두 곳의 코트를 비워 달라고 강요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인 겁니다.”
“국회의원이 우리 회사의 코트에 와 경기를 한다는 건 좋은 선전효과가 되는 셈이죠. 저는 그런 점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최고인은 자신의 의도에 쐐기가 박히자 얼굴근육이 굳어졌다.
“어떻든 결과적으로 보아 회사의 입장에선 결코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순 없잖습니까? 왜 여러분들은 그분의 일을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보아 주지 못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겁니까?”
“따뜻한 눈으로 본다면, 이런 곳으로 데려오는 것보다 공장안을 보여 주는 편이 훨씬 좋죠. 용광로 곁에서의 노동이 얼마나 뜨거운 것인가를…… 아니면 우리들이 일요일이면 하는 이 보잘 것 없는 레크레이션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소영이가 말을 이었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당신같은 기회주의자적인 사람과 테니스를 하며 날을 보낸다는 건…… 더군다나 일반서민을 이해하는 면에서도 생각해 본다면 어디 되겠어요?”
그 때 탈의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최고인씨, 전화예요!”
“잠깐 실례 좀……"
이러한 때에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 최고인 이었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수근수근 최고인에게 욕설을 하면서도 흩어져 돌아가지는 않았다.
2분 정도 지났을까. 최고인이 탈의실 밖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여러분 실례했습니다. 그분은 지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안 나오실 것 같습니다. 어서 마음껏 코트를 사용해 주십시오.”
체면을 손상당한 까닭일까, 최고인은 그대로 몸을 뒤로 돌려 재빨리 도망치듯 바깥쪽으로 잰 걸음걸이로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영이는 외쳤다.
“지구는 한 사람만을 위해 중심으로 돌고 있는 건 아니야! 우리들 모두를 중심으로 돌고 있단 말이야! 이 사실을 똑바로 명심하시지!”
소영이의 질타하는 소리가 최고인 녀석의 귀에 들렸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는 없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하얀 스포츠 카의 운전석에 뛰어 오르자 사납게 엔진의 발동을 걸며 악세레타를 밟았다.
“말 한 번 잘했어!”
소영이는 오빠가 자신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첫사랑, 실연 이후의 두 번째 실연
소영이와 연숙이가 친한 친구 사이가 된 첫 번째의 이유는, 연숙이에게는 용기와 정의감이 있고, 또한 다른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 독자적인 가치기준과 사고의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숙이가 지금과 같은 경지에 달하기까지에는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의 고난을 겪어 온 것이다.
연숙의 첫사랑의 연인은 그녀의 고향 마을에서 전무후무 유일무이하게 S대학교에 입학한 1년 상급생 남자였다. 이름은 이일동, 그로인해 그는 일약 마을의 영웅이 된 것이다.
연숙은 가끔 K시의 서고교에서 함께 기차 통학을 하며 일동이에게 우정과는 약간은 다른 감정을 품고 있던 중에 그는 서고교에서 단 혼자 S대학교에 합격한 것이다. 연숙은 결국 S대학 병에 걸린 환자같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서고교만이 아니라, 그 해에 K시를 통털어서도 S대학교를 입학한 학생은 그 혼자 뿐 이었으며, 더군다나 K시에서는 5, 6년이 지나도록 S대학교에 입학한 사람이 전혀 없었다. K시에서 발간되는 주간신문에서는 제1면에 3단 기사로 일동이의 사진을 게재했고, 마을 이장은 개벽 이래의 마을 명예라고 정장을 하고 재빠르게 축하를 해왔다.
연숙이로서는 그러한 떠들썩한 소란이 오히려 크나 큰 충격이 되었다.
그녀는 길에서 마주친 일동이에게,
“이제 서울에서 굉장하겠군요. 너무 우쭐대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 라고 말했다.
그 무렵 둘의 사이는 연인이라 할 수 없는 묘한 우정 속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일동은 연숙의 생각과는 달리 뜻밖의 말을 해 왔다.
“오늘 저녁 8시에 집을 좀 빠져 나올 수 없겠어? 둘이서 조용히 만나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연숙은 꿈속만 같았다. 만일 누군가의 반대에 부딪쳐 방해를 받는다면 망령이 되어서라도 일동이를 만나러 나갔을 것이다.
두 사람은 마을에서 떨어진 공동묘지에서 만나 숲 쪽으로 걸어갔다. 평생을 두고 잊혀지지 않을 휘영청 달 밝은 밤이었다.
일동은 그 곳에서 연숙의 손을 꼬옥 싸안으면서 사랑의 고백을 했다. 지금 자신은 4년후의 약속을 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머리가 좋은 연숙이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연숙이가 이전에부터 아주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솔직하고 진지하게 그의 심정을 털어 놓아던 것이다. 연숙이는 약간 다르긴 했지만 역시 우등생의 한 사람이었고 일동이에게서 머리가 좋은 여자라 하여 사랑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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