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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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4>
  • 한지윤
  • 승인 2017.01.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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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부처의 초상화를 그린 사람으로서는 어떤 사람이 유명한가요?”
연숙이가 질문했다.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승려 화가로서 담징이 있지 않습니까?”
“잠깐……”
그는 갑자기 모래 위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 물가로 달려갔다. 파도에 씻기어 물을 머금은 매끈한 모래 위에다 그는 일필휘지처럼 글을 쓰듯이 부처의 얼굴을 슬슬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이런 얼굴이었어. 입하고 볼이며 꼭 샹송가수 누구지, 그 가수 닮았다……”
소영은 노골적으로 비예술적 감상의 태도를 나타냈다.
“좀 더 훨씬 큰 귀하고 살이 찐 손을 그리지 않으면……”
그 때 파도가 하얀 거품을 몰고 밀려 왔다.
“제기랄!”
부처는 사라졌다. 예술대학을 다닌다는 사나이는 화가 파도처럼 솟구쳐 올라 그림을 그렸던 자리의 모래를 두 손으로 한 웅큼씩 파내자 모래는 두 손에서 창백하게 빛을 냈다. 어둠 속에서 먼 곳의 빛을 받아 마치 반딧불처럼 빛났다. 그는 바다를 향해 몸부림치듯 모래를 던져 버렸다.
“수영해요!”
소영은 바닷물 속으로 풍덩 뛰어 들어갔다.
“이름은?”
수영해 나가면서 소영이가 청년에게 물었다.
“박노진. 아가씨는?”
“김소영, 옆의 친구는 한연숙……”
밤바다는 반딧불의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소영이의 수족의 움직임에 따라 녹색 빛깔이 수면에 옆으로 길게 여자 육체의 움직임만큼 꿈틀거렸다. 밤바다 속은 따뜻했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이 세상 한 가운데에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릉도원, 바로 그곳에 와 있는 듯 했다.
그림자처럼 사나이가 소영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억센 팔이 조심스럽게 소영이의 상체를 안았다. 박노진의 입술이 소영이의 입술로 덮여 왔다. 물 위로 떠오르는 소영이의 은어 같은 육체는 푸른빛을 냈고 그 순간 유성 하나가 밤하늘을 가르며 흘러갔다.
“싫어……!”
소영은 얼른 몸을 뒤틀어서 물속으로 깊이 잠수해 들어가 헤엄쳐 나갔다.
물속에 잠수한 채 한참 헤엄쳐 나가다가 솟구쳐 물 위로 떠올라 보니 그는 보이질 않는다. 쫓아오지 못하는 바보 머저리 녀석, 하며 생각하다가 소영이는 키스 뒤의 여운을 되새겨 보면서 푸릇푸릇 물살을 가르며 조용히 헤엄쳐 나갔다.
세 사람이 해변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30분쯤 후였다.
박노진을 샌드위치로 하고 소영과 연숙은 바닷가를 거닐었다.
박노진은 벽화의 그림을 베우러 이탈리아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일 또 다시 만날까?”
소영이가 물었다.
“그건 안 되겠는데……내일 아침 일찍 서울로 돌아 가야해, 여기 더 머무를 거야?”
이런 식의 헤어짐은 따분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는 소영과 연숙이에게 악수를 청하고 아쉬운 듯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떠나갔다.
“저 금속성씨, 나와 키스 했는걸.”
소영은 연숙이에게 말했다.
“나하고도……”
소영이는 걸음을 급히 멈추며 연숙의 눈동자를 빤히 노려보았다.
“정말?”
“거짓말을 왜 하니? 너한테 미안하게 말야.”
“응, 그렇구나, 그 애 좀 쓸 만하구나!”
“어떤 의미에서……!”
“박애주의자 같다. 누구한테나 사랑을 베풀 줄 아니까.”
연숙이 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고 키스를 해 주었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가슴에 후련함이 차올랐고 그런 느낌을 갖게 되자 소영은 그와의 만남의 뒷맛이 개운했다.
“서울로 돌아가면, 우리 삼각관계를 만들까? 그녀석하고 너하고 그리고 내가 벌이는……”
연숙은 소영이의 제의에 가타부타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소영은 서울로 돌아간 직후 연숙에게 서둘러 예술대학교로 편지를 쓰게 했다. 회신은 각각 따로 보내 왔으며, 또한 각각 다른 날에 데이트의 장소와 시간을 지정해서 편지를 보내왔다.
소영과 만난 장소는 이태원이었다.
“이탈리아로 가는 것이 싫어 졌어……”
박노진은 쇼 웬도우를 장식하고 있는 갖가지 의상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왜?”
“너와 만나고 나선……”
“……?”
“나는 질투가 불길 같은 사람이지. 만일 내가 이탈리아로 가게 되어, 내가 없는 사이에 네가 누군가 딴 남자와 사귄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게 되는 걸.”
소영은 사나이의 거짓말에 유쾌하게 취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박노진 이라는 녀석은 거짓말에 능숙한 남자임을 소영은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즐겁게 긴장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도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소영이와 노진은 차를 마시고 나서 근처에서 열리고 있는 풍물제를 구경한 뒤 데이트의 일정을 마쳤다.
연숙이와 데이트는 그 다음날인 일요일이었다. 두 남녀는 덕수궁으로 갔는데 그날 밤 7시경에 연숙이가 허겁지겁 소영의 집으로 나타났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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