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52>
상태바
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52>
  • 한지윤
  • 승인 2017.03.17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유미네 집안에서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그거야 우린 알 수 없는 일이고……”
소영은 택시를 잠시 세우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에게 유미의 처지를 대강 이야기를 하고 학생명부에서 유미의 집 주소를 찾아 달라고 했다.
유미의 집은 격식이 반듯한 집들로 죽 늘어서 있는 주택지의 한 구역에 있었다. 짐작하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호화로운 집이어서 소영과 연숙이는 초장에 짓눌린 느낌이었다.
다행히 개짖는 소리가 나진 않았다. 운전사도 도와 세 사람은 유미를 대문 앞 계단에 내려놓았다. 소영이는 택시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벨을 눌렀다.
집안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다. 딸이 12시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데 벌써 이 집 식구들은 모두 잠이 들어버린 것일까. 소영의 집에서는 소영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어머니는 언제까지라도 기다리며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늦게 돌아온 딸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가.
세 번째 벨이 길게 울렸을 때 비로소 안 쪽으로부터 불쾌하다는 듯 슬리퍼 소리를 요란하게 끌며 다가왔다.
“지금이 몇 시야! 허구한 날 12시가 넘어 들어오니, 원……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적어도 어머니다운 모정이 섞인 목소리는 아니었다. 가정부의 음성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다만 그 음성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차가운 그 무엇이 서려 있었다.
소영과 연숙은 계단에서 쓰러져있는 유미 앞을 번개처럼 달아나면서 저 궁궐같은 유미의 집을 생각했다. 그리고 유미가 술을 진탕이 되도록 마셔야 하고, 그러므로써 그 무언가를 잊어버리려고 하고, 불만과 고뇌와 고통을 달래려고 몸부림 치고 있는 필사적인 그녀의 기분을 뭔가 알 것 같은 생각이 되어 소영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다음 날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소영이가 유미의 교통카드를 주웠던 것이다. 유미의 집은 강남에 있었다.
소영은 생각에 잠겼다.
유미가 어제 곤드레가 되어 있었던 곳은 잠실 근방이다. 잠실역.
소영은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후 3시, 강의는 두어 과목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끝난 시간이었다. 경성여자대학에서는 전학생이 등교, 하교시에는 시간을 체크하는 카드가 비치되어 있었으므로 조사해보면 신유미가 지금 캠퍼스에 남아 있는지 여부를 곧 알 수 있는 것이다. 소영은 유미가 술에 취해 떨어뜨린 이 수첩을 자연스럽게 유미를 만나 돌려 줄 궁리를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건물사이로, 핸드폰 번호를 누르고 있는 유미의 뒷모습이 보였다.
소영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소영은 유미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까지 가까이 다가갔다. 유미는 나지막히 속삭이듯 전화기에다 대고 말하고 있었다.
“오늘 올 수 있어?”
상대방의 대답을 들으면서 유미의 뺨에는 조용히 붉으레하게 혈색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요전에는 좋다고 했잖아?”
그녀는 남자에게 간청하고 있는 듯 했다.
“지나간 일이야 아무래도 좋다고 했잖아? 난 언제라도 사라질 용의가 있어. 그렇지만 부탁이니까 오늘만은 만나 줘……”
전화는 끊겼다. 남자는 그녀의 전화를 별로 환영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소영이는 아무렇지 않게 시치미를 떼고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나, 우연히, 네 수첩을 주었어, 돌려주려고 널 찾고 있던  중이었지.”
“어머, 미안해.”
소영이는 유미의 수첩을 건네주고 이내 복도를 걸어 나갔다.
도서실에서 연숙이를 발견하자, 그녀는 빠른 말씨로 말했다.
“이대로 좋으니까 빨리 따라와. 어제의 술주정뱅이를 미행하는거야. 유미는 자살할 우려도 있어……”
행선지가 결정되어 있는 상대를 미행한다는 것만큼 간단한 일은 없다. 소영이와 연숙이는 처음부터 잠실까지의 표를 사서 유미에게 눈치 채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50~ 60미터쯤 간격을 두어 따라갔다.
잠실 역에 내리자 유미는 넓다란 가로수 길을 오른쪽으로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잠실로 와 달라고 말했던 것은 역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은 아닌 성 싶었다.
저녁 햇볕이 따가웠다.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은 유미는 횐 블라우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길고 부드러운 웨이브의 머리를 치렁치렁 위까지 흔들거리면서 걷고 있었다. 그녀는 회색타이트 스커트의 허리를 빨간 허리띠로 타이트하게 조여 매 마치 외국인과도 같은 풍만하고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 길을 여러 번 다녀 익숙해진 듯이 그녀는 조용한 로터리를 거침없이 왼편으로 돌았다. 뒤 따라가고 있는 소영과 연숙의 눈에는 아직도 의아한 불이 켜져 있었으며 거무틱틱한 뼈다귀와도 같이 보이는 목욕탕을 나타내는 네온 간판이 보인 것과 그 간판아래 자그만 여관입구의 현관으로 유미가 터벅터벅 들어가는 것을 본 것과는 일순간 동시였다.
“어떻게 되는 거야?”
연숙이는 안색이 변하며 늘랍다는 듯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면서 말했다.
“서로 합의가 이루어져 저 곳에 들어갔다면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겠지.”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