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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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54>
  • 한지윤
  • 승인 2017.03.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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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뜻밖에 그녀는 목이 매여 말이 막혔다.

“넌……”
소영이는 다정하게 유미의 어깨를 안았다.
“유미야, 넌 그 사람한테 얼마간 호의를 갖고 있지?”
“그런 건 아니야.”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의아스러운 눈으로 이 쪽을 바라다보았으므로 유미는 철로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는 급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유미의 혼담은 급속히 진전되었다. 외국에서 6월은 신부라고 말하듯이 6월이라는 싱그러운 결혼의 계절을 놓치면 대개 가을이나 겨울로 미뤄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랑쪽은 서둘러 결혼식을 준비했다.
유미의 괴로운 마음속을 소영과 연숙은 거울을 들여다보듯 환히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남자들에게 무시만 당해 왔으니 한 번 정도 내 쪽에서 속여 보아도 좋겠지!”
하고 유미가 말했는가 하면, 또
“나 그날 아침 정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까? 그 치한테 톡톡히 망신을 좀 주게……”
하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튼 결혼식에는 와 줘야 해. 그리고 똑똑히 나를 보아 줘,
너희들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 나도 용기가 솟아날 거야.“
유미는 이런 말도 했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므로 결혼식 전 날 밤 10시경에 유미로부터 소영이의 집에 전화가 걸려왔을 때, 때마침 놀러와 있던 연숙이도 소영이 자신도 다 같이 깜짝 놀라며 서로 얼굴을 마주 바라 볼만큼 불길한 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미의 목소리는 다소 긴장되어 있었다.
“부탁이 있는데, 이제부터 그 사람 좀 만나 줘, 그리고 내 얘길 전부 숨김없이 해 줘……”
유미는 조바심을 치며 말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는 걸,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 말이야……”
“이제부터라니? 밤도 늦었는데……”
“괜찮아. 내가 그 사람에게 전화 해 두었어.”
결혼식은 원래는 서울에서 올릴 예정이었지만, 신랑의 근무지가 인천이었으므로 회사 관계의 손님을 초대하려면 인천에서 식을 올리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신랑의 부모와 형제들은 오늘 아침 일찍 L호텔에 투숙해 있다. 신랑도 오늘밤은 그곳에서 묵을 것이므로 11시에 로비에서 기다려 주면, 그가 잠깐 소영과 연숙을 만나러 방에서 빠져 나와 내려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소영과 연숙이는 허둥지둥 서둘러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은 모두 흥분하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섰을 때 그 어슴프레한 조명 빛속에 조용히 서 있는 키가 큰 청년이 ‘소영씨하고 연숙씨십니까,’ 하고 말을 걸어왔다. 눈빛이 맑고, 악의가 없어 보이는 입술을 한 청년이었다. 세 사람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어두운 기둥 뒤에 그늘을 선택하여 자리를 잡았다.
소영의 이야기는 10분도 채 안 걸렸다. 무엇이건 남김없이 다 얘기해 주라고 부탁을 받았으므로, 소영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얘기를 했다.
2~ 3분 생각할 여유를 주십시오.“
얘기가 다 끝나자 신랑이 말했다.
“그럼요, 일생 중대사인데 천천히 여유 있게 생각하셔서 후회가 없도록 해 주세요.”
그녀들은 어두운 호텔 로비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가 약간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1초, 1초의 시간이 가슴 찢기는 것처럼 소영이의 심장에는 느껴졌다.
실로 침묵과 긴장의 순간이 정확히 말해 3분여 정도 지났을 때,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당히 바보든가, 아니면 어느 정도 쇼든가 둘 중에 하나겠죠? 그런 과거가 있는 여자라는 걸 알고 결혼한다는 것은……”
그는 말을 이었다.
“그 어느 쪽이라도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한 과거가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면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눈을 들어 두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금도 상관이 없다고 그녀에게 전해 주시겠습니까? 저도 전화를 걸겠습니다만……그리고 내일 식이 있기 전에 1분 동안만 둘이서 얘기하자고 전해 주십시오. 물론 두 분이 함께 그 자리에 있어도 상관은 없겠습니다. 다만 양가의 부모나 중매인은 없는 곳에서……”
“그렇게 전해 드리죠.”
소영이는 서둘러 일어서고 있었다.
신부의 의상은 눈처럼 새하얗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시집 올 때 가지고 왔다고 하는 장도칼을 가슴속에 집어넣고 유미는 장식된 머리를 조심스럽게 숙여 내리고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부모님은 손님을 맞으러 밖으로 나가고 그 곳에 없었다. 그때 예장을 갖춘 신랑이 황급히 들어왔다.
“잠깐만……미안합니다. 잠깐만 자리를 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용사를 신부대기실에서 내 보냈다. 연숙이가 재빨리 방문 옆에 버티고 서서 넌지시 문지기 역할을 해주었다.
유미는 신랑의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눈을 내리깐채.
“어젠 고마웠소. 다 고백해 주어서……나는 너무 기뻐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유미의 내리 감겨진 눈에서 두 방울의 눈물이 바닥위에 조용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두 사람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영이와 연숙이는 조용히 방을 빠져 나와 손을 뒤로 한 채 문을 닫아 주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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