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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과 ‘홍길동전’

‘홍길동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로 알려졌다. 또한 ‘딱지본소설’ 혹은 ‘방각본소설’ 로 불리는 고대소설이 출현하도록 이끈 소설로 평가된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작품에 교산 허균의 꿈이 서려있고 그 꿈은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새롭게 읽히며 우리에게 시대고를 뛰어넘고 비리와 비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극복할 용기를 불러일으킨다는 데 있다.

“길동이 점점 자라 팔세 되매 총명이 과인하야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지라….”
위에 인용한 ‘홍길동전’ 서두는 길동이가 곧 허균 자신임을 암시한다. 그가 보기 드물게 비상한 인물이었음은 이익이 지은 ‘성호사설’에도 실려 있을 정도다.

“…기억력이 슬기로운 이로서 근세에 허균을 최고라 하니….”
허균 자신은 강릉의 정기를 타고난 인물로 율곡 이이 다음에 작은 형 허봉과 누이 난설헌(허초희)을 들었다. 그 다음에는 (말하지 않아도) 허균 자신이 되는 셈이다. 그가 태어난 고향의 뒷산은 이무기가 살았다고 하여 교산(蛟山)이라 불렀는데, 이를 자신의 호로 삼았고, 홍길동 역시 힘이 절륜한 청룡으로 묘사돼 있다.

그가 태어난 양천 허 씨 집안은 고려 때부터 시를 잘 짓고 글 잘하는 가문으로 소문나 있다. 경상도 관찰사(도지사)를 지내고 청백리로 이름났던 그의 부친 초당 허엽은 한숙창의 딸이었던 첫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허성), 딸 둘을 낳았는데, 맏아들 허성은 선조 임금이 눈을 감으면서 어린 적자 영창대군의 뒤를 맡길 일곱 신하 중 한 명이 되었고, 맏딸은 박순원에게 시집갔으며 그 둘째 딸은 뒷날 동인의 수령이 되는 우성전에게 시집갔다.

초당은 두 번째 아내와 사이에 허봉, 허난설헌, 허균을 낳았다. 허균은 손위 누이와 함께 손곡 이달에게 시와 인생철학을 배웠고 서애 유성룡에게는 학문을 배웠다. 이달은 최경창, 백광훈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렸으나 스스로 관리의 길을 내던지고 자연과 더불어 시를 지으며 살았던 백광훈을 빼고, 최경창과 이달은 서얼 출신이라서 넘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과거시험을 볼 자격조차 없는 이들이었다. 이에 교산은 그 자신도 서자인지라 스승 이달의 불우한 처지를 생각하며 잘못된 세상을 바꿀 개혁 의지를 불태웠고, 도상훈련 삼아 쓴 소설이 ‘홍길동전’인 셈이었다. 그에게 개혁의지를 불태우도록 만든 여건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그는 방대한 독서량을 통해 유교적인 면에만 함몰된 당대 식자층의 편벽된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로 인해 당대 최고의 불교지성이었던 서산대사(휴정)와 송운대사(사명당)와의 교유가 있었고 아버지의 스승이었던 화담 서경덕을 통해서 이기일원론의 세계관과 잡학으로 폄하됐던 산술 기하학적인 식견도 획득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풍류남아의 기백과 행동으로 당대의 민중예술가들이라 할 만한 수많은 명기들과도 어울렸다. 이러한 사실은 ‘선조실록’(1604년)에도 실릴 정도였다.

“일찍이 강릉에 갔을 때는 기생에게 혹하여 그의 어미가 죽었는데도 문상하지 않았다.” 그가 한시를 주고받으며 교유했거나 사랑했던 기생들로는 부안의 명기요 당대 일류시인 최경창의 연인이었던 이매창, 광주의 광산월, 그 밖에 낙빈, 설레, 춘방, 그리고 마지막을 함께 보냈던 춘섬 등이 유명하다.

그가 개혁의지를 불태운 데는 당대 백성들의 삶을 피폐토록 만든 임진왜란(1592)과 정묘호란(1616)을 빼놓을 수 없고, 나라를 그 지경으로 몰고 간 관리들과 식자층의 부패, 무능을 꼽지 않을 수 가 없다.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실상을 조석으로 목격했던 허균으로서는 홍길동처럼 가능하다면 무력으로라도 세상을 뒤집어 엎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혼은 결국 개혁의지를 펼쳐보지도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자고 만다. 그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자유분방하고 거칠 것이 없었던 그의 언행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제자였던 기준격의 아버지요 정승까지 지낸 가자헌의 비리를 ‘오정기대병가’라는 시 속에 풍자했다가 그가 역모를 꾸민다는 기준격의 고발로 결국 항변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참수당하고 만다. 마침 그 무렵 영의정 박순의 서자 박응서와 목사 서익의 서자 서양갑 등 자칭 ‘강변칠우’들이 새재에서 은상인을 죽이고 은 700냥을 강탈하다 붙잡힌 사건과 맞물려 아얏 소리 한 번 못하고 시대의 천재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지금은 교산 허균이 살았던 시대에 비하면 인권이 다각도로 존중되고 인생살이의 많은 면들이 감출 길 없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곧 제2의 IMF시대를 맞게 되리라고 우울하게 전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가의 대소사가 개선 광정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이들의 한결 같은 소망이리라. 이럴 때일수록 식자층, 사회의 지도층이 품위 있는 언행을 위해 노력해야만 따사롭고 햇빛 밝은 내일이 펼쳐질 것이다.

이원기 칼럼위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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