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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좁은 생각에, 그렇다

사회 환경의 다변화(多邊化)는 통섭형(統攝型) 인재를 부른다. 특히 우리 사회는 사고력과 표현력의 확장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넘쳐나는 정보를 선택하고 판단하며, 본질을 찾아내 전달하는 능력도 필요로 한다. 자신의 관점과 전체의 관점에서 모두 생각할 수 있는 인재유형인 셈이다. 공동체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에는 ‘리더’가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창의적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진정한 지식인은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사람일 테다. 따라서 자기성찰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 늘 자신을 돌아보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계속 1등만 하는 사람은 패배했을 때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1등을 하는 사람은 1등을 유지하는 데 급급해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 한 번의 실패에도 쉽게 좌절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같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보고 듣는 것이 비슷해서 생각도 단순해진다.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이런 말을 했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어제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어제와 다른 생각은 통렬한 자기반성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요구한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에 따르면 “우리가 가진 욕망들은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놓은, 혹은 내게 주입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체적인 삶을 강조한다. 삶이 자신을 너무 들볶는다 생각될 때, 여기저기 함부로 널린 행복은 누추해 보일 뿐이다.

자정 기능을 잃은 사회와 자기성찰이 없는 사람의 최후는 몰락이다. 예전부터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인격의 완성을 최고 가치로 쳤다. 책을 읽는 것을 단순히 어떤 지식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의미를 이해하고 세상의 원리를 밝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서 필요한 자료를 쉽게 찾는 시대에 독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다행히도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는 독서로 밥이나 빵이 나오진 않지만 구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은 세 번 태어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육체적 탄생이다. 두 번째는 정치적 탄생이다. 세 번째는 정신적 탄생이다. 정신적 탄생은 사유하는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과 세상의 원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기 생각이 만들어지고 세상에 대한 유현한 태도를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기하학에 왕도(王道)는 없다”고 얘기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으며 모든 것이 꾸준한 노력으로 성취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바흠이라는 농부가 가지려고 했던 땅 욕심이 현대를 사는 우리한테는 돈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이 아닌지도 반추해봐야 한다. 그런 후 비로소 내 삶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 기회가 올 테니 말이다. 성공한 사람이 밉다면 내 마음속에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들어있어 그를 질투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데미안’에 나오는 문장이다. 새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려는 인간의 비유다. 자신의 생각 혹은 기존 사회가 만든 프레임을 깨뜨리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다. 참된 성찰은 자기중심이 아니다. 시각을 자기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관계의 힘으로 오늘을 꿋꿋하게 살아낸다.

가장 안전한 곳이 가장 위험한 곳일 수도 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이나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변화 사회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여러 분야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시지포스의 바위’처럼 살 것인가, ‘고르디우스의 매듭’같이 살 것인가, 그래도 선택할 수 있는 삶에는 해피엔딩을 일굴 사소한 시작이 있다. “예쁜 여자에게 키스하면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키스에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뼈 있는 말에서 자성(自省)하는 기분을 맛본다.

한학수<청운대 방송영화영상학과 교수·칼럼위원>

한학수 칼럼위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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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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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민기 2018-04-16 10:39:06

    창의적인 사고는 한 분야의 지식이 다른 분야와 융합하여 유추되고 변형되어야만 나올 수 있다.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고에서 최고의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창의적인 사고가 한두 사람의 천재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삭제

    • 강동구 2018-04-15 17:31:45

      사회는 새로운통섭형 인재를 원하고 있습니다.
      통섭형 인재는 사고가 보다 열려 있고 다양한 분야에 식견이 있는 것으로 시작 된다고 생각합니다. 1을 보더라도 단지 1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볼수 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이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함을 다시 느낍니다   삭제

      • 권혁환 2018-04-15 17:00:01

        시대 변화에 맞추어 변해가는 것이 힘들 수 있겠지만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며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성찰을 노력 없이, 자정 기능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많은 지혜를 쌓아가며 살아가야 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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