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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가물어도 풍년농사 가능한 비옥한 땅 ‘만경마을’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5>
농촌마을 희망스토리-홍동면 신기리 만경마을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5.0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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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양저수지 정비해서 관광지로

김동호 이장

홍동면 신기리 만경마을은 예부터 물이 마르지 않고 땅이 비옥해 만석지기 마을로 불려졌다. 만경마을 노인회 정규선 총무의 말이다. “만경이는 흉년 없는 마을이었어요. 그래서 만석지기 부자가 많이 살았던 동네였죠.” 정 총무는 만경이라는 지명도 그런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습으로 밭을 갈면 고랑과 두둑이 생깁니다. 이것을 1경(景)이라고 합니다. ‘경’자는 볕 경(景)입니다. 보습에서 이랑을 만드는 부분이 볕으로, 1만 개의 이랑을 만들 수 있는 들이라는 뜻의 만경입니다. 여기는 들이 넓지 않아도 물이 풍부합니다. 땅이 기름져서 홍동면에서도 홍동 일만경이라고 불려졌습니다. 벼농사는 물론 밭농사도 풍작을 이루는 1번 으뜸마을로서 만경이입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논바닥에서 물이 솟아납니다. 밭도 기름져 야채가 뭐고 다 잘 됩니다. 여기서 콩 2섬이 나오면 저쪽에서는 1섬도 못 나와요. 7년 가물어도 농사짓는 곳으로 옛날부터 ‘만경이는 가물어도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만경마을은 홍양저수지도 있어서 풍부한 농업용수와 관광자원으로서의 잠재력까지 갖췄다. 홍성읍과 경계지점인 데다 청양~홍성간 29번 국도 충절로가 마을 가운데를 관통하면서 지나가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군에서 홍양저수지 진입로를 확장하고 수변도로에 단풍과 은행나무를 심는 등 조경에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호소했다.

“홍양저수지 수변도로에 가로수로 아름다운 풍광을 조성해 외지에서 찾아오는 마을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군청에 건의했더니 예산 문제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주말에는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진입로가 좁아 마주 오는 자동차가 교행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만경마을 김동호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닦았던 새마을도로는 불편합니다. 동네사람들도 불만이 많죠. 남의 밭에 들어가 비켜줘야 하니까.”

그래서 홍양저수지로 향하는 길가의 밭은 자동차 타이어 자국이 난 채 고랑이 짓뭉개진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만경마을 주민들은 홍양저수지 주변을 제대로 정비하고 화장실도 만들어 휴양지로 거듭난다면 소득사업으로 관광객을 위해 오리배를 띄워 운영해 보겠다는 꿈도 갖고 있었다.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도 판매하고 농어촌공사에 수면 사용허가를 받아 부락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만경마을회관에 모인 노인회원들. 오른쪽 맨 앞이 정규선 노인회 총무, 그 뒤 김동호 이장.

■ 서로 믿고 빌려쓰는 마을금고 운영
만경마을은 64가구 132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주로 농업을 한다. 홍성읍과 가까워 일부 주민은 읍내에서 사업을 하거나 직장에 출퇴근하기도 한다. 만경마을 김동호 이장도 홍성읍내에서 석유판매소를 운영하는 것이 주업이다. 기름진 땅에 홍성읍과 가까워 판로를 개척하기도 좋아 귀농인들이 선호하는 동네지만 땅이 귀해 섣불리 들어오지 못한다. 원주민 가운데 농토를 내놓는 사람이 없고 땅값도 비싼 편이다.

특정 씨족 중심의 집성촌과는 거리가 먼 다양한 성씨가 어울려 산다. 순흥 안 씨를 비롯해 면천 복 씨, 평택 김 씨, 경주 이 씨, 나주 정 씨, 해주 최 씨, 경주 김 씨가 골고루 살며 화합하고 상부상조한다. 만경마을 자체적으로 설립해서 운영하는 마을금고가 있는데 이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명백하게 증명되는 셈이다. “우리는 마을금고를 별도로 설립했습니다. 이사장은 복기동 씨가 맡았는데, 마을주민들끼리 돈을 맡기고 서로 대출해 쓰며 상부상조합니다. 신용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와 체계는 꼭 같습니다.”

김 이장은 마을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법인도 아니고 점포도 없다며 누구든지 갑자기 필요할 때 빌려 쓰고 갚을 수 있는 은행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귀농인들의 전입은 뜸한 대신 고향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희망은 있다고 김 이장은 전망했다.

미/니/인/터/뷰-노인회 정규선 총무
애향시 ‘만경찬가’

만경마을은 노인회가 활성화돼 있다. 회원은 27명으로 마을회관에 모여 항상 점심을 해 드신다. 노인회 정규선<사진> 총무는 홍주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전직 교사로 회원들을 알뜰히 챙긴다.

“노인들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가입을 안 했기 때문에 65세 이상 어르신은 이보다 더 많습니다. 만경은 장수마을이기도 합니다. 88세의 할아버지가 트랙터를 운전하며 농사를 짓습니다.” 정규선 총무는 고향을 너무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경마을 찬가’를 쓰기도 했는데 그의 시를 소개해 본다.

安(안) 따짐이
卜(복) 울뎅이
丁(정) 고집
혈맥 이어받아 뭉쳐 사는 곳

100년 전 우리 조상
만경산에 올라
독립만세 외쳐대니
침략자 간담이 서늘했다네

일경은 백 이랑
만경은 백만 이랑
칠년대한 가뭄에도
독샘배미 물길 돌려
풍년농사 기름진 터
홍동에선 제일 만경
칭송했다네

빼뽀 팔경 경치 좋아
잉어 붕어 파도를 희롱하고
낙낙장송 우거진 곳
힐링 장소 안성맞춤이라네

예부터 우리 마을
만석지기 부자 나고
현재 미래
부귀 쌍전할 터
우리 함께 영원토록
긍지 갖고 살아가세


미/니/인/터/뷰-조인호 시인
만경산 독립공원 만들어야

만경마을 북서쪽에 있는 만경산은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이 봉화를 올렸던 곳이라고 조인호(89·사진) 할머니가 회고했다.

“내가 시집와서 독립투사들이 봉화불을 올리며 만세를 불렀던 곳이라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경산은 홍성에서 가깝고 산이 아름답기도 해 독립공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할머니는 예산군 덕산이 고향으로 어릴 때 친정아버지가 윤봉길 의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우리 국민이 배우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야학을 해서 글도 가르치고 노래도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어려서 아버지한테 독립운동가를 배운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조 할머니는 어릴 때 배웠던 노래 네댓 곡을 직접 불러 보이기도 했다.

골밭에 해동화 벌겋게 필 때
우리의 가슴도 벌겋게 한다.
이 강산 저 강산 떠나지 말자
하늘의 뜬 구름도 달 두고 간다.
에헤라 좋구나 삼천리 강산
이 강산 떠나지 말자……

3·3·5조의 일정한 운율로 힘차면서도 때로는 행진곡풍으로 독립의지를 나타내는 가사를 할머니는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친정아버지의 이름을 조봉익이라고 기억하는 할머니는 윤봉길 의사와 함께 상해에 가서 독립운동을 하려고 했으나 할아버지가 반대해 동행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삼대독자여서 갈 수가 없었어요. 대신 가야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가야산 서산 쪽에 어름재라는 마을에서 우리가 3~4년을 살았습니다. 친정아버지는 조재웅, 조선관이라는 이름까지 3가지를 사용하면서 늘 도망을 다녔습니다.”

조 할머니는 아버지가 잡힌 적도 있었지만 감옥을 오래 살거나 크게 처벌을 받지 않아 해방 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시인이기도 한 할머니는 2013년 ‘천국고향 가는 길’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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