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독자기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2>
  • 김주호<한국스카우트 충남연맹 이사>
  • 승인 2018.05.11 09:28
  • 댓글 0

건설현장 2층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심한 부상을 입고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받아 간신히 호구지책은 마련했으나 그의 삶은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못 다한 학업에 대한 열망이 살아나 환갑 진갑이 지난 나이에 과거 퇴학당했던 고교(광천제일고등학교)에 복학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필자가 나서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께 통사정해 어렵사리 복학할 수 있었다.

사실 원수 같은 친구로 잊고 있었지만 40년이 훌쩍 지난 뒤에 필자 앞에 나타났을 때는 옛날 일이 생각나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마음이 약한 필자는 발 벗고 나서서 그가 만학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는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같이 열심히 공부했다. 걸음걸이가 불편한데도 다른 학생들의 모범이 되었고 장학금도 받았다.

젊은 오빠(여학생들), 선배님(교직원들), 큰 형님(남학생들)으로 불리면서 축하의 꽃다발과 함께 오매불망(寤寐不忘) 원하던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아마도 이 친구는 장애인이 되면서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심취한 것 같았다.

늦깎이로 고교를 졸업하고 조계종 7교구 본사(수덕사)에서 경전을 공부해 수명(修命)이라는 법명도 받고 포교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해 제대로 포교활동을 하지 못해 늘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설상가상으로 치매, 위암, 파킨슨병 등 합병증을 얻어 1년간 투병하다가 3년 전 가을 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슬프기도 하지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품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한편 작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필자가 들락거리는 절은 수덕사의 말사인 정암사로 광천읍 오서산 중턱에 있는 작은 절이지만 유서 깊은 천년고찰이다. 이 절의 주지 법룡(法龍)스님께 부탁해 적은 비용으로 그 친구의 49일재를 올렸다. 그 친구와 같이 수덕사에서 공부한 김정순 포교사를 비롯해 임호빈 사장(정암사 신도회장) 등 많은 분들이 49일재에 동참해 그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 후 그 절 주지스님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그 친구의 49일재를 올린 며칠 후 오후 늦게 오서산 정상에 올랐다가 서해 바다 낙조를 보게 되었다. 한두 번 보는 게 아닌데 먼저 간 친구를 생각하며 올라가서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 날 따라 날씨가 쾌청했다. 구름 한 점 없었다.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태양을 보고 있으려니 마치 태양 속에 인자하신 관음보살이 들어 계신 양 잠시 환시 현상에 빠졌다. 그런 환시 현상은 그 친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20여 년 전 양양 낙산사에서 본 거대한 해수관음보살상이 눈에 익어서 일 것이다.

동해의 푸른 물을 굽어보며 인자한 미소를 띠고 계신 해수관음보살상은 20년이 지났어도 가끔 눈에 어른거린다. 설마하니 동해의 해수관음보살님이 서해 바다로 오신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이 세상 어느 곳이든 관음보살님이 안 계신 곳은 없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하니 어느 곳인들 관음보살님이 안계시겠는가! 필자가 사는 광천에서 그리 멀지않은 서산에 마애삼존불의 온화한 모습(일명 백제의 미소)도 있다. 죄업을 쌓으며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을 인자한 미소로 굽어보시는 관음보살님은 아무리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모두 용서해 주실 것 같아 글이 짧은 필자로서는 어떻게 달리 표현 할 방법이 없다. 허기야 불교를 안 믿는 사람일지라도 인자한 관음보살의 미소를 싫어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지옥에 가서 관음보살을 만났다’라는 속담이 생겨났겠는가! 수십 년간 죄업을 쌓아서 아비지옥에 떨어졌을지라도 자기 죄업은 용서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평생 쌓은 죄업 때문에 혹독한 죗값을 치루는 아비지옥에서 관음보살을 만났다면 이는 죽은 지식이 다시 살아온 것보다 더 반갑다는 뜻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보다 더 절박한 마음으로 관음보살님께 매달렸을 것이다. 관음보살님은 모든 죄업을 다 용서해 주시는 분의 대명사가 되어서 그런 속담이 생겨났을 것이다. 어디 관음보살님 뿐이겠는가! 법당 안에 계신 부처님도 마찬가지로 자비를 베풀어 죄업을 용서해 주신다.
부처님이나 관음보살님은 동해나 서해 산과 들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말처럼 중생을 제도하신다.

부처님은 산에도 들에도 물에도 하늘에도 땅에도 어디든 계시니 언제 어느 곳에서든 만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처님의 자비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기독교나 다른 종교 일각에서 부처님이나 관음보살상은 흙이나 돌로 만든 우상(偶像)이며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미신이라고 매도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고 편견이다. 부처님이나 관음보살상이 우상이라면 성모 마리아상이나 십자가의 예수상은 우상이 아니던가! 겉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면에 담겨있는 진리와 정신이 본질이고 그 표현물을 우리가 숭배하는 것이지 나무나 돌이나 흙을 숭배하는 건 아니다.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면 종교는 다 좋은 것이고 남이 믿는 종교도 포용하는 것이 부처님의 뜻일 것이다.<끝>

김주호<한국스카우트 충남연맹 이사>  hjn@hjn24.com

<저작권자 © 홍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주호<한국스카우트 충남연맹 이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 뉴스
PREV NEXT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