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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농사 우순풍조하고 국태민안 비나이다결성농요, 그 역사를 돌아보다
1993년 결성농요 연습 모습. 사진의 배경이 되는 곳이 지금의 결성농요전승박물관 자리다.

결성농요는 결성면 일대에서 전승되는 논농사와 관련된 소리를 말한다. 1989~1990년에 문화재청에서 추진한 결성지역 향토민요 조사에서 이소라에 의해 처음 발굴됐다. 당시 결성면 성남리와 금곡리 일대에서 전하는 일노래를 중심으로 농요로 재구성됐다. 이후 시연회를 거쳐 1993년 제3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충남 대표로 참가해 종합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1996년 11월 30일 충남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됐다.

이 과정에서 제반 농사일과 일노래 전승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던 노동 조직은 각 마을 단위로 구성된 두레다. 두레의 총 책임자를 좌상이라 불렀는데 그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두레로 김매기를 할 때는 논둑에 용대기를 세워놓고 풍물 등의 악기는 풀어놓고 작업에 들어간다. 이때 두레꾼들은 선소리꾼이 구성지게 소리를 메기면 일제히 그 후렴을 받아 김매기를 한다. 김매기를 마치면 두레를 결산하는 두레먹이를 했다. 결성지역에서는 칠석이 중요한 명절로 인식돼 대개 칠석날 두레먹이를 겸한 동네잔치를 벌였다. 두레의 공동놀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풍물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상징이 용대기였다. 결성면 형산리 구수동의 경우 1824년에 제작된 용대기가 보관돼 있고, 형산리 주교에는 1891년에 제작된 용대기가 보관돼 있다. 결성지역의 두레는 6·25를 겪으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를 전후로 해 마을의 김매기가 소멸되고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두레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용신제. 2)모심기. 3)건쟁이. 4)뚝막이.
5)아시매기. 6)쉴참놀이. 7)만물. 8)일을 마치고 행진.

지금의 결성농요는 지난 1993년 제3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때부터 용신제·모내기·건쟁이·뚝막이·아시매기·쉴참놀이·만물·일을 마치고 행진·한마당 큰 놀이의 아홉 마당으로 구분해 공연을 하고 있다. 용신제는 동리 중심 대로변에 용대기를 세워놓고 좌상을 모시고 수머슴의 지시에 따라 용신제를 올린다. 모심기는 일꾼들이 일제히 논에 들어가 한 줄로 늘어서 한 포기씩 모를 심고 소리와 춤을 춘다. 건쟁이는 모를 심은 지 보름 정도 후 아시매기 전에 잡초와 돌풀 등을 뽑으며 소리를 한다. 뚝막이는 갑작스런 폭우로 냇둑이 터져 시급한 뜩막이를 소리와 세모가래질을 한다. 아시매기는 풀이 난 논바닥을 호미로 파 뒤엎는 매우 힘든 작업인데 ‘얼카덩어리’ 논매는 소리를 한다. 쉴참놀이는 쉴참이 되면 아낙네들이 술과 안주 등 새참거리를 가지고 나와 권하며 해학적인 상여소리와 함께 지게상여놀이를 한다. 만물은 잡초를 매는 일인데 풀을 뽑으며 손질하고 피사리도 한다. 이 곳 고유의 유장한 음정인 ‘두렛소리, 산여, 마루, 몬들소리’ 등 백제유민의 원음이라고 하는 희귀한 소리를 한다. 모든 일을 마치고 동리를 향해 돌아가는 길에 흥에 넘치는 소리를 하며 일을 마치고 행진한다. 한마당 큰놀이는 하루 일을 모두 마치고 농악과 함께 피로를 풀며 삿갓춤과 함께 무동과 어우러진 큰 놀이가 벌어진다.

한마당 큰놀이.

결성농요는 제1대 김청규 회장에 이어 제2대 황성창 회장, 제3대 조광성 회장, 제4대 이선종 회장에 이르고 있다. 초창기 140여 명에 이르던 단원이 시나브로 줄어들면서 현재 63명의 단원들이 1년에 20여회의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이선종 회장은 “지금 가장 큰 걱정은 삼층탑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라며 “고령화가 되면서 삼층탑에 올라가는 사람이 일흔이 넘었다. 그래도 우리 단원들은 젊은이가 많은 편인데도 상황이 이러하니 앞으로가 걱정이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무등을 탈 어린이도 없다고 한다. “마을에 어린아이가 없다 보니 무등을 탈 아이가 없다. 지난 공연 때는 홍성에 사는 아이가 와서 무등을 탔다. 원칙은 결성에 사는 어린이를 무등에 태워야 하는데 어린이가 없어 큰일이다.”

한편 성남 중리에 살았던 김동희 씨가 직접 손글씨로 적어간 책이 전해진다. 제작년도는 1970년대 전후로 추정되며 결성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농요와 설화, 마을 이야기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책 서문에는 ‘우리 동네 성남중리 큰마을부락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씩설객설 얻어듣고 주워듣고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일들을 적음’이라고 돼 있다. 이선종 회장은 “아마도 그 당시 결성면 준공무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을 거쳐 농촌 사회에 내려오는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이다. 어려웠던 시절, 서로가 힘을 모아 나누고 도와주며 가난한 시절을 버티고 견디어 낸 힘의 근간에는 우리의 농요가 있다. 이제 점점 고령화되고 아이는 볼 수 없게 된 마을에서 결성농요가 주는 우리 농요의 신명과 농민들의 결속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김옥선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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