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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로 들어서며 동서로 나눠진 이동마을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
농촌마을 희망스토리-갈산면 행신리 이동마을
이동마을 전경.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다.
이동마을 이상근 총무.

갈산면 행산리 이동마을(이장 김의식)은 우리말로 텃골 혹은 텃굴이라고 한다. 배꽃이 떨어지는 이화락지형(梨花落地形)의 명당이 있다는 마을이라 해 이동(梨洞) 혹은 배울이라고 부른다.

이동마을은 갈산면행정복지센터 소재지 동남쪽 방향으로 이동교를 건너 갈산면소재지에서 2km지점에 위치한다. 마을 동쪽으로는 쌍천리, 북쪽으로는 내갈리와 상촌리 노동, 서쪽으로 신기, 남쪽으로 목과마을이 위치한다. 마을 남쪽에는 해발 76m의 철마산이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넓은 들판과 와룡천이 있다.

이상근 총무는 “예전에 와룡천에 둠벙이 세 개 있었다. 비가 많이 와도 상시 파란색 물이 있었는데 1960년대 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우리 마을 사람도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도 어른들에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이어 “와룡천에 옛날에는 물이 맑아 짱어, 민물게, 붕어 등도 많았고 미역도 감고 빨래도 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오염이 돼서 풀이 너무 많아진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이동마을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성씨는 김해김씨다. 이후로 밀양박씨와 경주이씨들이 입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동마을이 가장 번창했을 때에는 1950년대 후반 50가구였고 현재는 28가구만 남아있다. 1973년 새마을사업으로 마을 안길 정비와 지붕개량사업으로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었다. 마을 앞을 지나는 와룡천이 수시로 범람해 피해를 입었으나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된 와룡천 정비사업으로 와룡천 제방이 정비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수시로 범람해 농경지를 침수, 1998년 행산지구 경지정리사업이 시행되고 경지정리가 완공됨으로서 수해로부터 벗어났다. 마을의 주요 소득원은 전통적으로 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최근에는 고추가 주 소득원으로 자리 잡았고 일부 가구에서는 축산업으로 한우를 키우고 있다.

1973년 이동교 다리를 놓았으며 2002년 수해로 교각이 무너져 2003년에 다시 이동교가 건설됐다. 특히 2001년에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며 이동마을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서해안고속도로가 마을의 중앙을 관통하면서 홍성IC가 만들어졌고 마을은 동서로 나뉘어졌다. 일부 주민은 보상을 받고 떠나 마을이 급격하게 위축됐다.

이상근 총무는 “얼마 전 방음벽이 설치됐지만 일부만 설치되어 소음으로 살기가 불편해 아무도 마을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방음벽이 설치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마을의 한 주민 역시 “여름에는 소음으로 인해 문을 열고 살 수가 없다”며 “그로 인해 잠도 자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이동마을회관은 새마을운동 당시 본래 마을의 새암골에 주민의 부지 희사에 의해 지어졌다가 서해안고속도로가 통과하면서 회관이 도로에 편입돼 2000년에 현재 위치에 새로 준공됐다. 마을주민들은 주로 갈산장과 용호장을 이용했으나 용호장이 1942년 대홍수로 유실되면서 주로 갈산장을 이용하게 됐으며 현재는 홍성장을 이용한다. 이동마을에는 대중교통이 들어오지 않아 불편하게 생활하고 있다.

이상근 총무는 “연로한 어르신들은 전동차를 타고 갈산면까지 나가 거기서 버스를 이용한다”며 “여태 이러고 살았으니 그러려니 한다. 아마 마을이 다른 마을과 연계되지 않고 뚝 떨어져 있어 그런 것 같은데 갈산면 마을버스가 우리 마을에도 들어와 차가 없는 어르신들이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갈산면 행산리 이동마을회관.
예전에 비해 많이 오염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맑은 물을 자랑하는 와룡천.
2003년에 새롭게 단장한 이동교.
서해안고속도로 밑으로 분리된 이동마을.

김옥선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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