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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6>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따라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가 없고, 또 그 아내는 두 지아비를 섬기면 불순하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지탄을 받았던 것이다. 그 예를 신라 처용의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닐다가
들어가서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더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 이뇨
본디는 내 것 이다마는
앗은 것을 어찌 할꼬


이 노래의 유래는 신라 헌강왕때 급간 벼슬을 하던 처용랑이 달밤을 즐기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부인이 다른 남자와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물론 글에는 그 외간 남자를 역신이라 했지만 그 시대의 사상은 처용랑이 부인을 관대히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당시에는 여자의 순결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무릇, 상고 때는 사람의 수가 적었다. 이러한 실정의 농경사회에서 어찌 노동력을 제한하는 남녀유별을 따질 수가 있으랴!

이와 같은 환경에서 형성된 것이 가정생활이므로 여인들의 위치는 가정에 이르면 제한된 규제 없이 생활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에 있어서 어머니의 지위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으로 믿어진다.

둘째로는 어머니는 스승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치가 발전됨에 따라서 학교, 서당 혹은 경당 등이 세워져 그 곳에서 자녀들의 교육을 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의 아이들은 주로 어머니가 그 기초 교육을 맡은 스승인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 소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한지윤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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