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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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64
  • 홍주일보
  • 승인 2020.11.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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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는 가림성으로 가게 된 군사들을 황급히 수습해 가지고 그날 정오 도성을 떠났다.
‘내가 미련했지, 하마터면…’
백가는 말잔등에 앉아 조는 듯 눈을 딱 감고 다시 이런 생각으로 뇌리에 가득찼다.
지렁이 기어가듯 느릿느릿 행군하던 백가의 군사들은 도성에서 한 30리 떨어진 산 속에 들어가서 멈춰 섰다. 날이 어두워 더 행군할 수 없었다. 백가는 아늑한 골짜기에 숙영지를 정하고 거기서 또 며칠 동안 지체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이른 아침, 백가는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심복 장수 한 사람이 황급히 장막으로 뛰어 들어왔다.
“주공, 어서 떠납시다.”
“왜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부산을 떠는거야?”
백가는 그렇잖아도 심사가 꼬이는데 시어미 역정에 강아지 배를 차는 격으로 부하장수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아닙니다. 그런게 아니라 오늘 대왕께서 이리로 사냥을 나오신답니다. 어서 떠나야 합니다.”
“음, 그래?”
백가는 후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기 시작했다.
‘대왕이 사냥을 나온다? 이리로 온다?’
무엇인가 한참동안 골똘히 생각하던 백가의 얼굴을 갑자기 가면을 쓴 것처럼 굳어져 버렸다. 이윽고 그는 심복장수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심복장수는 알았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휑하니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윽고 그는 날랜 무사 서른 명을 데리고 장막으로 돌아왔다.
백가는 미리 준비해둔 화살 한 묶음을 가운데 내놓으면서 여러 무사들을 앉으라고 하였다.

“내가 오늘 대의에 따라 대사를 도모하려고 그대들을 불렀거니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자는 나 하는 대로 화살을 꺾어 서약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지금 군복을 벗고 고향에 돌아가도 좋다.”
백가는 말을 마치자 화살 한 대를 뚝 꺾었다. 불러온 무사들은 모두 다 백가의 심복이었던지라 한 사람같이 백가가 하는 대로 화살을 꺾어 보였다.
“고맙도다. 그대들이 나와 한 마음 한 뜻이니 내 이제 말하겠노라. 금상이 황음무도하여 이 나라 사직이 뒤죽박죽이 된 것은 그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여 나는 오늘 대의에 좇아 무도한 임금을 폐하고 새 임금을 세우려는 것이다. 지금 왕은 이리로 사냥을 나오고 있으니 그대들은 곧 가서 길목을 지키다가 하수하라!”
무사들은 저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이내 진정하고 입을 모아 맹세하였다.
“주공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고맙다. 일이 성공되면 그대들은 다 공신이다. 그러면 지금 곧 떠나도록 하라!”
백가의 명령이 떨어지자 심복 장수는 곧 무사들을 거느리고 달려가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 안가서 왕의 사냥 대열이 나타났다. 준마위에 높이 올라앉은 동성왕이 맨 앞에 서고 조금 뒤에는 전신무장한 날랜 무사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매복해 있던 백가의 무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쏜살같이 뛰어나가 왕을 겨냥하고 칼과 창을 휘둘렀다. 삽시간에 좁은 길목은 수라장이 되었고 왕은 칼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왕을 호위하던 무사들도 엉겁결에 칼을 빼어들고 닥치는 대로 자객들을 찔러 죽였다.
자객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웠으나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두 다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유독 그 심복 장수만이 용케 빠져나와 백가의 장막까지 돌아오게 되었다.
“어찌되었는가?”

초조히 기다리고 있던 백가가 피투성이 된 심복 장수를 붙잡고 다급히 물었다.
“본부대로 왕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도 다 죽었습니다.”
심복장수는 쓰러진 채 헐떡거리면서 겨우 말을 이었다.
“됐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도성을 들이치는 것이다!”
백가는 너무도 기뻐 칼을 빼들고 일어섰다. 그러자 심복 장수는 그의 두 종아리를 끌어안고 말렸다.
“안됩니다. 왕은 죽었다 해도 그들의 군세가 대단합니다. 그리고 왕을 죽인 것이 백좌평의 소행이라는 것을 그들도 지금쯤 알 것이니 도성을 단단히 지킬 것입니다. 이대로 들이치다가는 무리한 죽음을 당할 뿐입니다.”
“나의 소행인 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지금 그 자리에 쓰러져 있는 무사들이 주공의 심복이 아닙니까? 혹자는 숨이 붙은 채 잡혔을 수도 있습니다. 때를 기다려서 거사하십시오.”
“때를 기다리라니?”
“어서 가림성으로 도임하시어 강한 군사를 기르고 군량을 많이 장만해두면 장차 성공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심복 장수는 말을 마치자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대의 말이 옳다. 한시바삐 가림성으로 가야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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