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근대문화역사거리, 짬뽕특화거리, 말랭이마을
상태바
군산 근대문화역사거리, 짬뽕특화거리, 말랭이마을
  • 취재·사진=한기원·김경미 기자
  • 승인 2023.06.24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 원도심 활성화, 특화거리에서 답을 찾다 〈3〉
군산시 옛 도심권에 조성된 지역 대표 음식인 짬뽕을 주제로 한 특화거리.

군산은 항구도시 특유의 혼합 문화로 가득한 근대문화역사도시
전주한옥마을과 함께 ‘전북 관광의 양대산맥’ 손색이 없을 정도
지역의 대표 음식인 짬뽕을 주제로 한 특화거리 옛 도심에 조성
난민촌 형성됐던 ‘가난한 산동네’ 문화·예술창작 공간으로 탈바꿈

 

전북 군산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박하고 정겨운, 담백한 소도시의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도시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군산은 호남의 비옥한 땅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당시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근대문화역사거리’에는 여러 명소가 밀집해 있으며, 이를 근간으로 인근에는 지역의 대표 음식인 ‘짬뽕특화거리’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군산하면 짬뽕, 짬뽕하면 군산’이라고, 군산에는 짬뽕집이 유난히 많다고 한다. 항구도시로 싱싱한 해산물이 풍부한 데다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려는 여행객들이 한 해 500만 명이 넘게 찾으면서 짬뽕을 찾는 식객이 대거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짬뽕집들은 홍합·동죽·꼬막·오징어·대하 등에 돼지고기·콩나물까지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해 저마다 특색 있는 맛을 선보이는가 하면, 고추짜장·물짜장 등 별미를 가미해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 시대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 군산은 우리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근대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길 수 있는 산 교육장이다. 특히 신흥동 일대의 다양한 유명관광지가 아버지 세대의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최근 군산시에서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통해 재개발하고 있는 신흥동 말랭이마을은 이러한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들과 피난민 그리고 가난한 백성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사라져가던 마을을 다시 살리고 있는 곳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말랭이마을은 군산 근대문화역사거리 중심에서 도심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 바로 옆으로는 월명터널이 지나고 뒤편에는 월명공원이 있다. 월명터널을 진입하기 전 오른쪽 산비탈에 말랭이 마을이 오밀조밀하게 위치하고 있다. 
 

■ 군산 근대문화역사거리, 전국적 명성
한마디로 군산은 항구도시 특유의 혼합 문화로 가득한 근대문화역사 도시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국내 항구도시들은 문을 밖으로 활짝 열었다.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 그리고 군산 순으로 열었는데, 1899년 5월 1일이 군산의 개항일이다. 하지만 군산은 다른 항구들과는 그 성질이 달랐는데, 오직 쌀 수출만을 근간으로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충청과 호남 일대의 쌀이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그래서 일본 상공인들이 모이게 됐고 인구의 50%가 일본인으로 채워지면서 그렇게 군산은 일본인의 도시가 됐다.

당시의 그 수많은 흔적은 수많은 공간으로 남았다. 현재 군산 원도심 지역의 건물 가운데 20% 정도가 일제 시대에 지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제 우리는 그곳을 찾아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여행자가 되고 있다. 이렇듯 군산은 일제 식민시대 건축물이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해 이제는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899년 5월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미곡 수탈의 창구 역할을 했던 군산이 최근 들어서 ‘근대문화역사의 중심도시’로 각광 받으며 전주한옥마을과 함께 ‘전북 관광의 양대산맥’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식민시대 아픈 역사의 흔적을 무조건 부수거나 지워버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활용해 지역 관광자원으로 만든 아이디어가 군산을 새로운 관광도시로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본정통이었던 현재 해망동 근대문화역사거리에 가면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군산근대건축관)과 옛 일본 18은행 군산지점(군산근대미술관), 옛 군산세관(관세박물관) 등 근대거리를 만날 수 있다. 현재 군산 시내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근대 건축물은 170여 채 가량으로 추산된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근대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자원화는 군산을 전국적으로 알리며 원도심 활성화와 관광객 유치,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낙수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숫자는 유료로 운영되는 근대박물관 입장객 수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짬뽕을 주제로 한 짬뽕특화거리 조성
군산시는 지역 대표 음식인 짬뽕을 주제로 한 특화거리를 옛 도심권(수십 년 된 짬뽕집이 자리한 영화동, 미원동, 흥남동 등)에 조성했다. 특화거리 이름을 ‘짬뽕시대로’, 브랜드는 ‘군산짬뽕’으로 정했는데, 군산에는 현재 화교가 운영하는 요릿집을 포함해 중국음식점 150~160곳이 성업 중이라는 설명이다. 이 중 짬뽕으로 이름을 알린 업소 상당수가 원도심권에서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군산시는 특화거리 일대의 낡고 오래된 도로·인도·간판 등 가로경관을 정비하고, 스토리텔링 등을 가미한 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짬뽕집 등 일대 외식업체 환경개선과 짬뽕투어 로드맵·맛 지도 제작 등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주차장 등 편의시설 구축과 조형물 설치, 관광 콘텐츠 개발 등에도 힘쓰고 있다. 특화거리에는 짬뽕을 주메뉴로 하는 식당 10여 곳을 모집해 입점을 도왔고, 기존에 군산에서 영업하던 식당이 옮겨 오거나 새로 창업할 수도 있다. 입점 업체에는 시설개선 자금을 융자하고 위생 서비스개선과 경영 컨설팅, 친절 교육, 홍보 등을 지원하며 식재료 공동구매 체계 구축, 상수도 사용료 감면 등 혜택도 준다. 

군산에는 3대 짬뽕집(지린성, 복성루, 빈해원)이 있다고 한다. 특히 빈해원은 화려한 유리와 전등으로 치장된 높디높은 천장이 흡사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다. 짜장으로 유명한 빈해원은 화교인 왕근석이 1950년대 개업한 곳으로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이다. 1965년 현재 건물로 옮겼고, 1970년대 증축했는데 철근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규모가 상당하다. 문화재청은 빈해원을 문화재로 등록했는데, 이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군산의 생활사를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운영 중인 식당이 문화재로 등록된 건 일제강점기 건물인 고창의 조양식당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공간도 공간이지만 음식 맛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물짜장이 유명하다. 맵지 않고 해산물이 풍성해 감칠맛이 있는데 울면을 연상케 하기도 하는 독특한 메뉴로 꼽는다.
 

■ 난민촌 가난한 달동네 ‘말랭이마을’
군산시 신흥동(新興洞)은 본래 옥구군에 속했다. ‘신흥동(신흥리)’은 새롭게 일어나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면적이 무척 넓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월명공원 능선을 배경으로 금광동, 월명동, 명산동, 신창동, 송창동, 금동 일부가 신흥리에 속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신흥동은 개복동 고지대와 함께 군산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로 알려졌다.

옛날 신문에 따르면 신흥동은 노동자 집단 거주지로 1932년 4월 현재 조선인 4179명(862세대)이 살고 있었다. 군산부에서 조선인이 가장 많이 사는 산동네였다. 그럼에도 신학기에 입학 아동은 십 수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일본인 점포에서 고용을 살거나 과자 행상, 식모살이 등으로 끼니를 연명하는 등 주민 생활상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일본인이 창업한 향원양조장과 조선인이 업주인 신흥주조장도 있었다. 1950년대에는 조선 시대부터 주민 공용으로 사용해 온 공동우물을 모 양조장이 독점해 말썽이 된 일도 있었다. 청주(淸酒) 제조업체인 고려양조장이 우물에 열쇠까지 채워놓고 사용했다.

이 사건에 분개한 주민들이 ‘우물되찾기운동’을 벌이는 등 우여곡절 끝에 해결됐다고 전한다. 영욕의 세월을 오롯이 품고 있는 신흥동, 조선 시대 신흥리는 마을 공동으로 당제를 지낼 정도로 주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월명산에서 기우제 지낼 때도 주민들이 참여했으나 일제의 전통문화 말살 정책으로 모두 사라졌다. 일제의 감시와 통제에도 1923년에는 뜻있는 조선인들에 의해 학원(야학)이 설립되고 이듬해에는 교회와 주일학교가 개설된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광복(1945) 후에도 빈민들이 오무래오무래 모여 사는 산동네였다. 한국전쟁 이후엔 밤나무골에 난민촌이 형성돼 ‘가난한 동네’라는 별칭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처럼 가난했던 달동네가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문화·예술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신흥동 산동네는 장수 농촌 드라마인 1980년대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로 널리 알려진 탤렌트 김수미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이기도 하다. 지금 ‘말랭이마을’에는 마을커뮤니티, 잔치마당, 어귀마당, 신흥양조장(신흥주조장), 추억의 전시관, 놀이터, 예술인 레지던스 공간(이야기마당, 작가 이야기), 창작체험관, 기획전시실, 자유극장(1950~70년대 군산 관련 ‘대한뉴스’ 상영) 등이 들어서 있으며, 인기탤런트 김수미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고향길(김수미 길)’도 조성돼 있다. 또 ‘말랭이마을’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본식 건축물(히로쓰가옥, 대한통운 지점장 사택, 옛 남조선전기주식회사 건물, 초원사진관 등)과 인접해 있고, 비좁은 골목길은 왜색 기운이 짙게 풍겨 일본 나가사키시 변두리 언덕길을 산책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이 지역이 근·현대 역사와 문화예술이 연계된 체류형 관광지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