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100년 세월 품은 한옥·양조장 ‘문화갤러리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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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100년 세월 품은 한옥·양조장 ‘문화갤러리로 변신’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3.09.1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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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정미소·양조장에 문화예술이 꽃피다 〈2〉
부여 자온양조장은 원형을 살려 술과 요리를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자온길 프로젝트, 오랫동안 변화되지 않는 문화거리 만들자’ 출발
규암마을, ‘전통문화와 공예’ 문화콘텐츠로 쇠락한 시골 마을 살려
부여의 작은 시골마을, 전통문화라는 씨줄과 공예라는 날줄로 변신
100년 세월을 품은 한옥과 양조장, 문화갤러리·술과 음식카페 탄생

 

백제의 고도 충남 부여에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 유적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한편으로는 백제의 유적지 말고는 이렇다 할 관광 콘텐츠가 없어 한계라는 지적도 따르는 곳이다. 하지만 5년여 전부터 부여 규암면 규암리 자온로에 ‘자온길 프로젝트’라는 마을재생사업이 진행 중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첫 단추가 규암 나루터 인근 골목에 위치하고 있는  독립서점 ‘책방 세:간’이었다고 한다. 시골 마을에서 책방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호기심을 안고 찾아간 시골 책방은 지금까지도 꽤 신선함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 마을이 변신하는데 출발점이 된 곳이라고 한다.

백마강 변의 부여 규암리는 해방 전후만 해도 200여 가구가 살았던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규암장터가 열리면서 규암나루터에 배가 무시로 드나들었다. 마을 거리에는 60여 개가 넘는 선술집과 여관 등이 즐비했으며, 극장과 백화점도 있었다. 

규암리의 전성기는 1968년 백제교가 놓이면서 막을 내렸다고 한다.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백마강의 규암나루터가 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상권은 부여읍으로 점차 옮겨갔고,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붐비던 장터의 국밥집, 부여에 처음 세워진 극장과 양조장 등은 폐허가 됐다. 집주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빈집도 늘어갔고, 시간이 흐를수록 상점과 가게 등은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마을은 점점 사람들이 떠나가 비어가기 시작했다. 
 

부여 자온양조장 사장이 살았던 100년이 넘은 한옥은 문화갤러리 이안당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가운데 부여 규암의 ‘자온길 프로젝트’의 시작은 ‘오랫동안 변화되지 않는 문화적인 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전통공예가 박경아 작가의 마음과 집념에서 출발했다고 전한다. 
어릴 적부터 전통공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미 대학 4학년 때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 가게를 열고 비즈니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 북촌, 서촌, 삼청동, 헤이리 등까지 확장하며 소위 잘 나가는 전통공예가의 삶을 살았다. ‘아름다운 것들(전통공예)’을 알리고 삶에 쓰임 있게 하는 일은 보람과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예술의 거리가 조성되고 나면 어느 순간 월세가 천정부지로 뛰었고, 대기업이 거리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만든 거리에서 예술가들은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하지만 예술의 거리에서 쫓겨나는 일이 또 다른 기회의 시작이었다고 할까. 부여에 소재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에게 부여는 애정과 이해가 높은 곳이었다고 한다. 백제의 수도, 백제는 디자인적으로 훌륭한 국가, 공예가들에게 관직을 허락해줬던 유일한 국가, 세계적인 무역이 시작된 곳이라는 스토리도 그의 꿈과 들어맞았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버려져 빈 공간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부여 규암 시골 마을에서 전통문화와 공예라는 문화콘텐츠로 쇠락한 작은 시골 마을을 다시 살리는 ‘자온길 프로젝트’를 총괄하면서 결국 규암마을을 문화예술이 흐르는 마을로 바꾸는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시골 소도시 문화·예술적 활동 필요하다’
지방에 문화적인 거리를 조성하겠다는 한 공예작가의 말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고 한다. 서점을 하겠다고 하니 “시골에 무슨 서점이냐”고 했다. 카페도, 공연에도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문화적인 것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가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서점을 열고, 카페도 만들고, 공연도 추진했다. 북 토크도 하고 플리마켓도 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할 일을 만드는 게 자온길의 활력을 살려내는 방법이라 여긴 것이다. 게다가 서울에서는 공연이나 북토크 등의 문화가 그냥 일상이지 않던가. 
전통공예가 박경아 대표는 “모든 일은 무모함에서 나온다”는 신념으로 일상을 지방에서도 실현해보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시골의 소도시에 문화·예술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한 뮤지션들은 초대에 기꺼이 응해줬고, 김장훈, 브로콜리너마저, 마이앤트메리 등 유명 뮤지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전국의 20~30대들이 부여로 몰려왔고 자온길을 찾아왔다.

오래된 공간, 지방의 소도시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 하지만 지방만이 가진 가치에 주목했고, 오래된 공간이 가진 힘도 믿었다. 공간 하나하나를 만들 때, 헐지 않고 복원하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은 ‘쇼룸’ 그 자체다. 이곳에서는 커피도 파스타도 도자 작가가 만든 그릇에 담기고, 현대적인 공연이 한옥에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백마강 변의 작은 마을, 충남 부여 규암리에 들어선 공방, 책방(동네서점), 커피가게, 백제술집 등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모인다는 소문을 듣고 찾은 마을은 고즈넉한 시골마을 그 자체였다. 현재 ‘자온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낡고 허름한 부여의 작은 시골 마을에 전통문화라는 씨줄과 공예라는 날줄로 옛 시골 마을을 새로운 문화예술이 숨 쉬는 마을로 5년째 변신시키고 있는 그곳이다.

50여 년의 세월, 먼지만 켜켜이 쌓여 가던 규암마을에 들어온 박 대표는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아 공방, 갤러리, 편집샵, 북카페, 숙박시설 등을 만들기에 필요한 땅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규암면 자온로와 수북로 일대의 집 16채와 대지 1만 3200㎡(4000평)를 구입하거나 지인들과 매입해 공간을 장기 임대하는 방식으로 확보했다. 매입한 부동산은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바탕으로 공간의 역사적 스토리에 현대적 감각을 더 하는 리모델링 방식을 택했다. 공방으로 사용되는 집은 리모델링의 백미로 꼽히는데, 페인트가 벗겨져 볼품이 없던 벽면을 새롭게 바르지 않고 사포로 잘 벗겨낸 결과 벽에 멋진 그림이 생겨났다고 한다. 옛날 건물의 결을 그대로 살려 복원한 것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놀라는 반응이라는 설명이다.
 

부여 자온양조장 내부 전경,

■ ‘자온(自溫)길은 스스로 따뜻해지는 길’
시골이라면 정말 많은 장소가 있었을텐데, 왜 하필 부여의 규암마을이었을까.
부여는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전국 어디서든 2~3시간이면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백제가 융성했던 시절의 문화유산을 오롯이 담고 있다. 1500년 전의 탑이 도시 한가운데 있고 ‘부소산성’을 비롯한 ‘낙화암’과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과 ‘정림사지 5층 석탑’ 등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의 도시다. 

이렇듯 부여는 관광지로는 너무나 훌륭한 시설과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히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도 숙박 시설 등은 턱없이 부족하고 문화콘텐츠 등도 많이 부족한 도시라는 점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라는데 주목했다. 부여 규암의 ‘자온(自溫)길’은 ‘스스로 따뜻해지는 길’이라는 뜻을 가진 거리다. 이제는 부여 백마강변 작은 시골마을, 규암면의 규암마을 일대를 칭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자온(自溫)’이란  이름은 5년 전 ㈜세간 박경아 대표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죽었던 마을에 온기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 이름이라는 것. 문화예술로 공간에 새로운 쓰임을 넣고 있는 곳,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자온양조장’은 술과 음식이 있는 카페로 변신했고, 양조장 사장이 살았던 100년 세월을 품은 한옥은 문화갤러리 ‘이안당’으로 탈바꿈했다. 
 

자온양조장은 부여에서 오랫동안 전통주를 만들던 양조장이다. ‘자온양조장’의 공간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새롭게 재탄생 시킨 공간도 역시 ‘자온양조장’으로 또 다른 변신을 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부여에서 생산된 술을 비롯해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다양한 술과 지역의 식재료 등을 활용한 ‘자온양조장’만의 특별한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또한 ‘임 씨네 담배 가게’는 서점 ‘책방 세:간’으로 변신했고, 술을 팔던 요정 ‘수월옥’은 동명의 카페 ‘수월옥’으로 변신했다. 작고 오래된 집을 개조해 만든 ‘더테이블’에서는 부여의 건강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담은 파스타를 맛볼 수 있으며, 멸실 신청돼 사라질 뻔했던 오래된 ‘작은 한옥’에서는 숙박이 가능하게 됐다. 

‘선화스테이’에서는 차분하게 쉼을 가지며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기거주 숙소로 변신해 ‘한달살이’가 가능한 곳이 됐다. 오랜 세월 방치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낡은 집은 규방 공예작가의 공방으로 만들어져 작품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아트스테이’로 변신했다. 

부여 백마강 변의 작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 다시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 차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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