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임종 맞을 수 있도록 마지막 길 동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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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임종 맞을 수 있도록 마지막 길 동행해요"
  • 최선경 기자
  • 승인 2013.03.0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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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료원 호스피스병동 자원봉사자 한금선 씨

 


어느 날 문득 사랑하는 사람이 말기 암 진단을 받고 고통스런 투병 생활을 겪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게 됐다. 어떤 심정으로 내 사랑하는 가족을 대해야 하는 것일까?

삶과 죽음의 문턱, 그 고통의 끝자락에서 조금이라도 생을 평온하고 기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금선(광천읍·50) 씨가 바로 그렇다. 한금선 씨는 홍성의료원 호스피스병동에서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영적 돌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한 씨의 남편 신복섭 씨는 광천읍 소망교회 목사이다. 남편과 함께 목회활동을 하면서 한 씨는 평소 독거노인 등 어렵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는 데 관심을 갖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러다 지난 2009년 5월 홍성의료원에 호스피스병동이 문을 열면서 한 씨는 곧장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말기 암 환자들이다. 사실상 암 치료를 다 마치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환자나 보호자 모두 길게는 4~5년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지친 사람들이다. 호스피스병동에 오는 환자들은 대략 20일 정도 머물며, 1년에 평균 120여 분이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 현재 3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월요일 오전에는 누룽지 봉사, 화요일에는 포크아트, 수요일에는 꽃꽂이와 목욕봉사· 네일아트, 목요일에는 손뜨개질, 금요일에는 오카리나와 하모니카 연주가 준비돼 있다.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실 수 있도록 그분 곁에서 찬송가도 불러 드리고 손을 잡아 드려요. 경황이 없으신 보호자와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게 가장 큰 역할이랄까요?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잘 가세요, 당신 때문에 행복했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천국에서 만나요, 정말 미안해요 등 살면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그러면 다들 너무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시죠, 기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할 일을 다 하고, 얽힌 것 풀고, 가족에게 사랑받고 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 늘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환자 대해
안타까운 사연들을 수없이 접했다. 남편이 말기 위암이었는데 보호자인 아내가 자주 속이 메스껍다고 하여 체한 줄 알았지만, 정밀 검사를 받아보니 아내 역시 위암 판정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아픈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2달간 엄마 곁에서 24시간을 함께 하면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를 했던 30대 딸도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보호자인 딸이 침대에 앉아 어머니를 뒤에서 안고 하루 종일 붙어 지냈다. 환자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오롯이 딸과 함께 한 2달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70대 노부부가 계셨어요. 보호자이셨던 할아버지께 할머니에게 사랑한다고 한 마디만 해 달라고 부탁하자, 한사코 거부하던 할아버지가 '사랑했소, 내가 너무 미안하오'라고 말씀하시며 할머니 뺨에 입을 맞추셨어요. 할머니는 기쁨의 미소를 지어보였고, 주저앉은 할아버지의 울음소리가 병실에 가득 찼죠. 할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어요" 간혹 암이라는 것을 모르고 호스피스 병동에 오는 환자도 있지만 한 씨는 환자에게 남은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한 씨는 늘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봉사한다. 일주일에 한 번 병동을 방문하지만 다음 주에 오면 이미 세상을 떠나는 환자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더 환자를 웃게 만들고,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 애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기다리는 숨 막히는 현장에 서 있기에 저 자신이 너무 부족해요. 이곳에서의 봉사는 '정말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들이에요.또 삶의 마지막 순간을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내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는 소중한 순간입니다. 돈, 자동차, 큰 집이 중요하지 않아요.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과의 갈등을 풀고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호스피스병동,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곳
한 씨는 이곳 호스피스병동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 아니라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곳이라고 여긴다. 봉사하면서 느끼는 것은 환자들을 적게나마 섬기려고 갔다가 오히려 더 많은 섬김과 사랑의 나눔과 인생의 참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값비싼 선물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생명이 제일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는 곳이지요. 삶은 순간, 순간이 축복이에요. 말하고, 걷고,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이곳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최상의 의료서비스가 아니에요. 그저 가족들이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주고 당신이 있어 행복했다고 말해주는 것이랍니다" 사별 이후 이곳을 찾는 가족들이 간혹 있단다. 이곳에 오면 남편이, 엄마가 있을 것 같아서, 떠난 그들이 웃으며 자신들을 맞이해 줄 것 같아서 들른다고 한다.

한 씨는 말할 수 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 권한다.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절절한 눈빛으로 아무리 사랑을 표현하려 해도 이미 너무 늦는다며, 지금 이 순간 이외의 순간은 의미가 없다고 전했다.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마지막까지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분들을 만날 때면 가슴이 답답하고 어떻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듭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면 다음 순간도 행복해질 수 있죠. 제 곁을 떠난 많은 분들께서 간절히 남겨주신 선물입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으로 언제나 삶 속에는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 살면서 자신의 삶과 죽음을 성찰할 수 있다면 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더욱 열심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의 생을 '소풍'이라고 표현한 천상병 시인의 시 구절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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