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실리테이션에 혹하다
상태바
퍼실리테이션에 혹하다
  • 곰이네농장·주민기자 맹다혜
  • 승인 2013.08.29 1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장곡면 행정리 내가 사는 마을이 희망마을 사업을 신청하면서 마을 만들기 교육을 자주 받고 있다. 지인들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희망마을 사업에 단지 젊다는 이유로 어떡하다 내가 마을 리더로 신청하게 됐는데 누가 위원장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낯 뜨겁고 우습다. 내가 이 마을에서 뭔데 이런 소릴 듣는지 지금도 부담스럽다.
그럼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행정리에 들어와 하우스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겨우 6년차. 20대 때부터 시작한 귀농이니 이제 어디 가서 귀농인이라 말하기도 남사스러워 귀농인 모임에는 가지 않는다. 차라리 동네 분들과 같이 있는 게 편하게 느껴진다. 꼴에 선배랍시고 요즘 새로 귀농하시는 분들 보면 농사를 쉽게 안다며 발끈하기도 하고 마을에 들어왔으면 일단 마을 분들의 말씀과 규칙에 순응해야한다고 쉽게 말한다. 본인도 처음에 어려웠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난 그렇게 싸가지 없게 군적 없다고 하면 동네 분들은 너도 처음에 싸가지 없었단 얼굴이시다.

결국은 귀농인도 아니고 동네원주민도 아니고 중간에 껴서 어디에 속했는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어중간한 상태에 있는 것 같다. 뇌구조가 귀농인에서 원주민으로 옮겨가느라 그렇다며 위안하지만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완전한 내편은 없다는 것에 가끔 심각하게 외롭다. 결정적인 일이 닥치면 다 자기편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겠지만 나는 혼자 남게 될거란 막연한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뭘 작은 농촌에서 원주민, 귀농인을 나누느냐고 하겠지만 엄연히 있는 구분이다.
그런 내가 마을의 리더란 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이거 자리를 잘 잡아야지 뭣도 모르는 게 괜히 조용한 마을을 흙탕물 만드는 미꾸라지는 되면 안되는데 그 점이 제일 조심스럽다. 그러다 마주한 것이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이다. 어떤 사안에 있어서 한발 물러서서 여러 사람들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촉진하고 서로의 의견을 화합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촉진자가 퍼실리테이터다.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교육한다며 온 퍼실리테이터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현명해보이던지 나도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이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이겠구나 싶다. 물론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이란 점에서 약간은 다르지만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다는 점, 개인적 욕심을 부렸다가 잘못되면 날 위해줄 결정적 편이 없다는 불안감이 이권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내가 욕심이 없고 착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욕 안 먹고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골치 아픈 일은 무엇하러 하는 걸까. 나는 그냥 이런 일에 묘하게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마을일은 잘해야 본전이란 경고를 하시면서도 나름 뜻 깊은 일이라는 지인 분들의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또한 동네 분들은 평생 사셨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으신 것들이 내 눈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그냥 넘기기엔 아까운 것들을 잘 지켜서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되면 좋겠다. 나는 단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런 아름다운 마을에 내 농장이 있다는 것만 나에게 남는다면 그걸로 족하다. 사업을 하며 만나게 되는 좋은 분들과 교육을 받으며 여러 가지 배우게 되는 것도 만족스럽다.
우리 마을 이장님도 좋고 마을 분들도 교육에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잘 참여해주어 다행이지만. 어찌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몸을 낮춰 이 마을을 들고 휘젓고 다니는 리더가 아니라 조심스런 조력자로 남는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