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노트]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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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노트]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
  • 윤여문<청운대 교수, 칼럼위원>
  • 승인 2014.03.13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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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희한한 일이다. 습관처럼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논리적 고민을 해봐도 세상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기억할 수 있는 유년시절의 가장 오래된 의문 중 하나는 아버지의 ‘뉴스 중독증’이었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뉴스를 보고 또 보았다. 7시 뉴스부터 자정뉴스까지 모두 섭렵해서야 비로소 TV를 끄셨다. 그날의 정치적인 이슈와 국제정세, 각종 사건사고, 심지어 스포츠 경기의 최종 스코어 결과까지 모든 것이 똑같은 내용이었지만 아버지는 마치 엄청난 새로운 속보를 보는 것처럼 뉴스에 필요 이상의 애착을 보였다.
더 알 수 없는 일은 내가 착한 일을 해야 가까스로 얻을 수 있는 ‘해태 맛동산’과 ‘농심 꿀 꽈배기’를 아버지는 싫어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달디 단 ‘해태 맛동산’과 ‘농심 꿀 꽈배기’를 싫어하는 이유가 “너무 달아서”라는 말에 나는 경악했다. 기가 막힌 것은 그 좋은 맛동산과 꿀 꽈배기를 마다하고 유난히 애착을 보인 건 2홉들이 소주였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그 소주가 ‘입에 딱 붙는다’는 말을 듣고 몰래 몇 잔 마셔 낭패를 보기도 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혼 후에도 예상 못한 수 천 개의 알 수 없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내 어머니와 같은 여자가 아니라고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결혼 전에 그렇게도 나긋나긋하고 토끼 같았던 아내가 둘째 아이를 낳자마자 어느새 호랑이가 되어버린 사실은 다소 충격이었다. 의견 충돌로 조그만 다툼이라도 있는 날에는 십 수 년 전의 일들을 잊지도 않고 하나씩 들춰내며 내 뒤통수에 마구 쏘아댄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오면서 내 아내가 예전의 서운한 일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백 번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의 ‘고스톱’ 게임에서 ‘초단’하려는 막내 누나에게 흑싸리 오끗짜리를 아무 생각 없이 던져주는 것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나 자신에게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흔히 30대를 이립(而立,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이라 하고 40대를 불혹(不惑,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이라 일컫는데 30대에 이립하지 못했던 내가 어느새 40대에 들어섰다. 불혹을 시작함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니 그렇다면 나는 지진아가 아닐까.
불혹의 기간을 지난해 시작한 나는 이립이나 불혹과는 상관없는 여전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생을 살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며 주어진 어려운 일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칠순을 바라보는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이 NBC 방송국의 ‘The Tonight Show’에 참석하여 “이제 음악이 무엇인지 조금 이해가 된다”라고 언급한 것이 단순한 겸손이 아니었다면 나도 인생에서의 정답 찾기를 서두르기보다는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며 치열하게 살고 싶다.
왜 그 수많은 유치원 아이들 사이에서 유독 내 딸아이만 반짝이는지, 왜 몇 만 번을 반복 했던 골프 스윙인데 매번 다른 방향으로 공이 날아가는지, 왜 한낱 얼음판 위의 단순한 김연아 몸짓이 대중에게는 예술로써 인식되는지, 왜 늦가을 해질녘 강변북로에서 마주치는 석양이 쓸쓸해 보이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 굳이 이유를 찾지 않고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사색하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처럼 지금 내가 TV 뉴스에 집착하고 더 이상 아이들의 과자에 매력을 못 느끼고 오히려 소주가 ‘입에 딱 붙는’ 것을 깨달은 요즘의 나는 어느새 늙어버린 것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지만 하나씩 깨달아 가는 것도 인생의 소소한 맛이 아닌가 싶다. 아직 어리지만 그렇게 살다 흙으로 돌아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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