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내포문화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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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내포문화숲길
  • 홍주일보
  • 승인 2014.11.0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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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 담긴 이야기<1>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시는 결성면 어르신들.

길에는 이야기가 있다. 홍주신문과 (사)내포문화숲길은 내포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내포 문화 숲길을 걸으며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참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내포문화숲길’을 시작으로 8회에 걸쳐 내포숲길을 걸으며 지역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 정신을 계승하고자 지역의 소중한 유·무형의 자산을 소개할 예정이다.<편집자주>

“물이 어디까지 들어왔냐면 여 결성읍에서 관청으로 나가면 다리, 교량. 바닷물이 거기까지 들어왔었다고, 우리들은 하청다리라고 이야기 했지. 그 때는 바다에서 고기도 잡고 게도 잡고 해서 먹고 살았지. 잡아서 팔기도 하고. 지금은 바다가 막혀서 어렵지만 여기서 4~5km 떨어진 곳까지 가서 고기를 잡아오곤 했었어. 옛날 말로 충선대 조기 잡으러 다닌다고 하면서 말이야”



이곳의 예전 모습을 물어보자마자 어르신들이 꺼내놓는 이야기에는 짭짤한 소금기가 가득했다.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다른 바닷가 동네였던 결성면은 그 옛날, 백제시대 때는 결기군의 치소(행정중심지)로서 서해안의 군사중심지이기도 하였고 그 이후 줄곧 서해안의 교통, 문화행정의 중심에 있었던 고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70~80대 고령의 노인들이 기억하고 있는 고장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옛날에 여기는 결성현이었어. 백제시대 때에는 ‘결규부은’이었지. 결규부은의 결은 ‘맺을 결’자이고 규는 ‘몸 규’자를 썼는데 주변의 보령지역이나 홍주지역을 ‘결구은 상하’라고 불렀지. 그러니깐 홍주지역이 여기보다도 작은 현이었다는 거야. 지금의 홍성이란 이름도 1914년에 홍주군과 결성군이 합해질 때 홍주군의 홍과 결성군의 성을 따라 그렇게 된 것이지. 그러니께 우리지역은 비교적 역사가 깊은 곳이란 말이여” 현재의 충남 홍성의 서남쪽 지역으로 넓은 평야가 있는 내포지역의 서해 바다 쪽 입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홍성군 홍주목과는 별도의 현감이 수장으로 있을 만큼 큰 규모의 고을이었다. “예전에 안 좋은 일이 하나 있었다고 해. 1733년에 시부사건이라고. 사연인즉슨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데, 이 일 때문에 결성현이 폐현이 되었어.

그러고선 보령현에다가 붙여가지고 한 3~4년간은 결성이라는 고을이 행실을 못했지. 왜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느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어. 하나는 옛날 거지들은 음식을 얻어서는 모았다가 같이 먹는 이런 식으로 살았는데 이 부자도 이렇게 했겠지. 근데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이 오기 전 음식을 혼자 먹었다 해서 죽였다는 거야.


또 다른 하나는 이 부자가 짚신장사를 했었는데 아버지 짚신만 잘 팔리고 아들꺼는 잘 안 팔려서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그런 설이 있지. 나라에서는 이런 고을이니께 폐현시킨거지. 부끄러운 일이지 큰 고을이 없어 졌으니 아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여.

그 후 1736에 복원이 된 거야. 다시 결성현으로 살아난 거지. 지방관들이 임금에게로 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으니 도와달라고 사정했거든.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당시 이 사건은 굉장히 큰 사건이었거든. 이 사건을 저지를 사람 이름이 ‘차귀섭’이라고 기록에도 남아있는데 그 사람 이름으로 썼던 한자 ‘차’자가 현재 성씨 열람에는 없어.

그만큼 대단했던 사건이었지” 300년에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가야지만 알 수 있는 이런 옛 이야기를 그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새삼 입에서 입으로,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힘이 바로 이런 곳에 숨어있지 않을까 싶다. 내포 역사인물길은 현재의 결성면 읍내리 중심가에 위치한 석당산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시작을 뒤로 역사인물길을 따라 옛 자취를 볼 수 있는 많은 문화재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결성향교이다. 현재 결성향교에서는 선비선발대회, 과거시험, 전통혼례 등 다양하고 활발한 사업 등이 진행 중이다. “결성향교는 고려 때 기록이 처음 나옵니다.

고려 때 기록이 1010년도니깐 올해로 벌써 1004년이나 되는 셈이죠. 조선시대 때 유학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정해지면서 전국의 향교들을 읍내에서 가까운 곳으로 세우게 되었는데 결성향교도 그 때 현재의 자리에 옮겨왔습니다. 이리로 옮겨온 지는 600년이 되었죠” 향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과거 이 지역의 높은 위상을 또다시 확인할 수가 있다.

비록 지금의 향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하였지만, 현재 새롭게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교육 및 문화적인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때 그 풍경이 아직도 선하다. 지금은 서지 않는 오일장. 바로 결성장이다. 결성장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보령 천북면 쪽에서 나룻배를 타고 넘어와 물건을 살 수 있는 유일한 장터였다고 한다.

“장날은 뭐 사람 만나기 위해서 나오는 거여. 뭐 회의를 소집하는 것처럼 장날가면 사돈네도 만나고 딸네집도 만나고 하니깐 장에 왔던거여. 근데 대게 그 때들은 애나 어른이나 (몸의) 영양들이 충실하지 못했거든. 근데 어른들이 장에 와서 막걸리를 많이 잡수셨다고.

그럼 장이 파할 때면 길가에 많이들 누워 있어요. 그게 장날 풍경이었어. 노인네들이 장에와서 술을 한 두 잔 하면 힘이 없으니깐 그냥 누워 있는거여 그럼 집안사람들이 와서 모셔가고 그렇게 했었지” 장에 가신 아버지를 찾던 소년이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 때 그 시절의 풍경을 기억하는 순간 번지는 얼굴의 미소는 어릴 적 할머니,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장터를 돌아다니던 기억 혹은 친구들과 신나게 산과 들을 뛰어놀던 기억 때문이 아닐는지…

<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 스토리텔링> 그 길에 담긴 이야기
내포문화숲길 홍성센터에서는 청운대학교 관광경영학과 친구들과 함께 홍성구간의 숨은 이야기들을 직접 지역의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술 : 결성면 김동일, 이동준 외 주민 / 문화in장꾼 이현조 팀장
채록 : 청운대학교 관광경영학과 이청엽, 소미애
정리 : 내포문화숲길 교육팀장 정수연

** 내포문화숲길은 내포지역의 역사,문화,생태자원을 바탕으로 내포지역의 4개시군 (서산시,당진시,홍성군,예산군)에 조성된 800리의 장거리 걷는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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