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 간월호에서 그대의 마음은 춤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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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호수, 간월호에서 그대의 마음은 춤추는가…
  • 김세호<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
  • 승인 2014.12.0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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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마음을 훔진 절세가호(絶世佳湖)

간월도 간월암 석양.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동파(1036~1101)는 “물빛 반짝반짝 빛나고 개인 날 더욱 좋고 어른어른 어우러진 산색(山色) 비온 날 신비하네.

서호(西湖)를 서시(西施)에 견준다면 옅은 화장 짙은 화장 모두 다 어울리리(水光?晴方好 山色空濠雨亦奇 浴把西湖比西子 淡粧濃抹總相宣).”라고 ‘음호상일초청후우(飮湖上一初晴後雨)’에서 상찬한다.

고도(古都) 항주의 명승(名勝) 서호는 고대 중국 4대 미인 중의 하나인 서시(西施)의 이름을 따서 시쯔호(西子湖)라고도 불린다. 서시는 월(越)나라 구천(句踐)이 오(吳)나라 부차(夫差)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친 월나라의 절색(絶色)이다.

서시는 가슴을 잡고 찡그릴 때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 모습에 감탄한 당시의 많은 여자들이 그 흉내를 내고 다녔다는 고사(西施嚬目-서시빈목)가 있다. 가슴에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대고 슬픈 표정을 보이는 절세가인(絶世佳人)을 보고 느끼는 남자의 심정은 과연 어떨 것인가.

간월호(看月湖)의 겨울,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호수를 우리는 만난다. 물은 맑고 푸르다. 낮에도 좋고 밤에도 좋다. 비 오는 날에도 좋고, 맑은 날 겨울 벽공(碧空)엔 달도 밝다. 결코 중국의 서호에 뒤지지 않는 명소라고 하면 과문하거나 자기자랑의 애향심인가.

겨울이 오면 광대하고 평온한 수면 위로 백조(白鳥)는 여유롭게 떠돈다. 이 때 간월호는 아연 백조의 호수가 된다. 호수 위를 유영하는 백조를 보는 것은 운이 아주 좋은 것이다. 간월호를 매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복(福)이 아주 많은 사람일 것이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의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는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더불어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음악이다.

백조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러시아 전설(우리나라의 ‘나무꾼과 선녀’의 설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을 재구성한 ‘백조의 호수’는 전 4막으로 순백의 의상을 입은 발레리나가 펼치는 아름답고 신비한 발레의 고전이다.

189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새의 다양한 움직임을 무용으로 표현하는 다수의 ‘백조의 호수’ 고전발레 버전들은 발레리나·발레리노들의 연기와 테크닉이 압권이라는 찬사를 지금도 받고 있으며 여전히 킬러콘텐츠(콘텐츠는 부호, 문자, 음성, 음향, 영상 등의 자료 또는 정보. 킬러콘텐츠는 압도하는 최고의 콘텐츠를 말한다.

관심이 높고, 지속적이며, 의미가 커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유형의 문화콘텐츠.)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모든 무용가와 안무가에게 연기(演技)와 꿈의 원천이 되는 작품이다.

간월호 노을 백조.

‘백조의 호수’는 발레리나·발레리노가 될 수 없는 우리들에게 결국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를 알려준다. 그대는 무도회의 구석에 앉아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나 가난한 집안 출신의 짝을 찾지 못한 아가씨에게 “셀 위 댄스(Shall we dance?)”할 수 있을 것인지를…

모든 신사는 모든 숙녀에게 정중하게 춤을 청해야한다는 것을… 아름다운 자연의 친구인 백조를 만나는 간월호는 서산·홍성 일대의 천수만 일부를 막는 간월 부남지구 간척사업으로 인해 조성된 거대한 인공호수다. 약 7.7km의 긴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이 담수호가 된 간월호, 왼쪽이 바다인 천수만이다.

수면면적은 28.76㎢로 서호(6.3㎢)보다 4배 이상 큰 규모다. 태조 이성계(1355~1408)의 스승이자 벗이었던 무학대사(1327~1405)가 도를 깨쳤다는 간월암은 썰물 때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작은 돌섬에 위치한다.

간월호에 달이 뜨면 시간은 차츰 침잠하고, 평범한 속인들도 어느 순간 풍류를 즐기는 시인이나, 달과 손가락의 화두(話頭)-견지망월(見指忘月)을 잡는 선객(禪客)이 될 수도 있는 풍광을 본다.

뛰어난 산수(山水)를 우리가 마음에 담는 것은 결국 좋은 인간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월호의 맑은 창파(蒼波)에 또 한 번 마음을 씻는 기회를 갖는다.

백조는 아름다운 자태로 물 위에 떠 있지만 수면 아래서는 물갈퀴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백조는 멀리서는 한가하고 우아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보통 직업이 없는 남자실업자를 ‘백수’ 여성실업자를 ‘백조’라고 부르는데 익숙하다. 백수, 백조는 우리가 직업을 가져야 하고 부지런한 삶을 찾아야 한다는 결코 가볍지 않은 교훈을 준다. 직업(vocation)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계의 유지를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가 가지고 있다.

직업은 인격의 존엄과 자존심의 원동력이자, 인간을 사랑한 신이 부여한 진정한 소명이기도 하다. 한편 백조는 일부일처(一夫一妻)의 정절을 지키는 새로 널리 알려지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새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새삼 깨우치게 한다.

‘미운 오리새끼’는 결국 백조가 된다. 위대한 작가 H. C. 안데르센(1805~1875)은 불멸의 동화 작품에서 아름다운 백조가 되는 오리를 통해 가난, 어려움, 고독, 욕망 속에서 소외된 타인들과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간월호 백조.

본래 백조인 미운 오리새끼는 우월함, 기품, 아름다움, 가치관 등은 천부적으로 타고난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누구나 백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타고난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는 우화(寓話)이기도 하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등 놀라운 이야기들을 통해 그는 오해를 받기 쉬운 우리 인생의 슬픔과 고뇌를 우회적으로 증언한다.

‘莊子(장자)’ ‘외편(外篇)’에는 이런 글도 보인다. “오리의 발이 짧다고 이어 주면 오리에게 걱정을 줄 것이요, 학의 발이 길다고 그를 잘라주면 학을 슬프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자를 것이 아니며, 본래 짧은 것은 길게 해 주는 법이 아니다. 그래야만 괴로움을 피할 수 있다.”

사실 오리 역시 아름다운 새다. 우리는 오리를 식용(食用)으로 보는 데만 익숙하지만, ‘봄 강물이 따뜻해지면 오리들이 먼저 안다(春江水暖鴨先知).’ 그리고 엄마 오리가 ‘풍덩’ 하면 아기 오리는 ‘퐁당’ 자맥질을 한다. 오리는 귀엽고 순진한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샛강과 작은 하천과 연못을 노니는 오리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평화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당서(唐書)’에 따르면 고려의 마자수는 말갈(靺鞨)의 백산(白山)에서 나오는데, 그 색깔이 마치 오리(鴨)의 머리처럼 푸르기(綠) 때문에 압록강(鴨綠江)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를 눈 속에서 춤추게 내버려 두라, 그래서 눈이 아직 지상에 머무는 동안만은 외투도 벗어버린 채로 서로를 알아볼 때까지는. 우리를 눈 속에서 춤추게 내버려 두라,
-귄터 그라스(1927~),<눈 속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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