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探鳥), 자연의 신비와 생명 존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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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探鳥), 자연의 신비와 생명 존엄 일깨우다
  • 김세호<홍성조류탐사과학관연구위원>
  • 승인 2014.12.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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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探鳥) 여행에서 배우다 <1>

 

 

 

 

 

탐조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태관광을 하고 있다.

최근 자연생태계 및 생물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연 상태의 새를 관찰하는 전문적인 취미활동인 탐조가 각광을 받고 있는 추세에 있다. 유수한 탐조클럽에는 여성들의 참여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탐조는 본래 중세 왕족이나 거대한 영지를 소유한 귀족·영주(領主)들의 고상한 레저와 스포츠를 겸했다는 장구한 역사를 갖는다. 홍성조류탐사과학관 김세호 연구위원과 함께 아름다운 탐조여행을 떠나 본다. <편집자주>

고고한 자태의 황새는 항상 홀로 다닌다. 의리를 생각하는 협객(俠客)이나 냉정한 자객(刺客)과도 같은 눈매를 가진 용감한 매의 일종인 말똥가리 역시 혼자서 앙상한 나무 가지 위에서 사냥감을 조용히 응시한다.

백조(고니, 큰 고니)는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다. 쇠기러기는 떼를 지어 긴 편대비행을 한다. 새를 보는 시간에는 차가운 공기의 상쾌함, 흙의 따뜻한 부드러움, 흐르는 강물의 고요함, 생생한 자연의 고른 숨결 속에서 우리들 마음이 한층 맑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자연생태계 및 생물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탐조(자연 상태의 새를 관찰하는 전문적인 취미활동)가 각광을 받고 있는 추세에 있다. 유수한 탐조클럽에는 여성들의 참여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탐조는 본래 중세 왕족이나 거대한 영지를 소유한 귀족·영주(領主)들의 고상한 레저와 스포츠를 겸했다는 장구한 역사를 갖는다. 아주 고아한 취미가 아닐 수 없다. 야생의 새들이 사는 곳, 그들의 번식지나 서식지는 대개 아름다운 숲이나, 강, 습지나 하구를 비롯한 섬이나 바닷가일 경우가 많고 경관 또한 우수하고 대부분이 절경을 자랑한다.

새들은 인간 이상으로 명당을 좋아한다. 따라서 탐조는 언제나 우리를 명승(名勝)의 자연 속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탐조는 색다른 여행이다. 그리고 탐조는 생태관광 성격을 갖고 있다.

생태관광(Ecotourism)은 생태학(ecology)와 관광(tourism)을 합성한 신조어로 관광객에게 자연 생태의 학습기회를 제공하고 관광으로 인한 수익은 지역의 생태계 보전이나 지역주민에게 되돌아가는 관광의 형태를 말한다. 블루오션이라고 할 만 하다.

관광지역의 자연환경 보호, 고유문화와 역사유적의 보전, 생태적으로 양호한 지역에 대한 관찰과 학습, 지속 가능한 관광사업과 관광 활동 등을 포괄하며 녹색관광, 자연관광 등과 유사한 개념이다. 새는 하나의 자연유산이면서도 문화유산이다.

새를 찾는 것은 결국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찾고 사랑하는 것이다. 탐조는 우선 방문 지역의 자연사와 문화적 습관에 대한 이해가 저절로 깊어진다. 새를 관찰하면서 자연의 신비에 속하는 생물다양성, 생명의 존엄성, 생태계 보존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고, 생물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탐조는 대중의 과학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자연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탐조는 낚시나 사냥과 비슷하지만, 미끼나 떡밥을 준비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관찰+기록’만 하므로 살아있는 생명을 잡는다는 죄책감도 없다,

탐조는 자연에 대한 예의와 존경을 필요로 한다. 조류 관찰자 행동수칙이나 규정은 탐조 참가자들에게는 자연보존을 위한 올바른 자세와 책무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너무 화려한 옷은 새들의 눈에 띄고 경계심을 유발하기 때문에 탐조에서는 멋을 부리지 않는다.

자연의 색깔과 유사한 수수한 차림을 함으로써 자연 생태의 질서를 배려하는 겸손과 경의를 최대한 표한다. 건강한 환경, 자연보호를 추구하는 탐조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며, 담배꽁초나 스티로폼 등을 철저히 수거하고, 멸종위기 종을 보호하고, 각종 관련 규칙들을 준수한다.

탐조는 포켓에 들어갈 만한 작은 조류도감, 망원경, 카메라(휴대폰)만 있으면 얼마든지 쉽게 즐길 수 있는 수준 높은 오락이기도 하다. 탐조는 또 생물을 살리는 공부의 여정이다.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실제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탐조는 인종·세대·남녀·직업 등 여러 가지 차이를 넘어 지식을 공유하고 자연보존과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학습과 체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홍성조류탐사과학관(관장 배혜령 청운대 교수)의 겨울 주말(토·일요일)에는 탐조객들의 발길이 모인다.

탐조는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홍성조류탐사과학관은 동절기의 매주 토요일 오후에 토요탐조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때로 노란색 스쿨버스를 타고 새를 찾아가는 길은 초등학교 어린 시절의 소풍을 갈 때처럼 설레는 경험을 맛본다. 

 

 


특히 탐조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새들을 관찰하면서 ‘꼬마 조류학자’가 되어 저절로 탄성을 지른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탐조에 나가면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그들의 반짝이는 호기심은 강하고 진지하고 참으로 놀랍다.

다양한 모습의 새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질문을 연발한다. 새들과 자연에서 어린이들은 놀이와 배움의 기쁨을 저절로 느낀다. 앞으로 그들이 가져야 할 긴 학창생활에도 탐조의 경험은 자극을 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생생하고 바람직한 가정교육의 가능성이 탐조에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들은 모름지기 놀이(play)를 통해 학습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부모가 강요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낫다.

새를 관찰하는 탐조에서 어린이들은 마치 ‘과학자’의 모습이다. 관찰하는 습관의 형성이 창의성의 근원이 된다. 조류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어린 탐조가들은 과학자나 예술가로서의 가능성과 미래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탐조와 관련된 과학자의 초상도 눈부시다.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과 함께 DNA의 비밀을 푼 ‘이중나선’의 제임스 왓슨(James Watson, 1962년 노벨상 수상)은 아마추어 탐조가이자 취미로 새를 연구하는 아버지를 따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새를 찾아 산과 들을 돌아다녔고, 그 이어진 학구열로 시카고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동물학을 공부하다

결국 유전학에서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197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저명한 동물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헨(Niko Tinbergen)은 어린 시절부터 동물 관찰과 식물 채집에 매우 열성적이었는데 특히 철새 관찰 등에 사로잡혀 철새 이동의 비밀을 풀고 싶은 소망에 생물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니코의 형 얀 틴베르헨(Jan Tinbergen)은 196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다. 콘라드 로렌츠(1904~1989). 독일의 유명잡지 슈피겔(Spiegel) 등으로부터 ‘동물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찬사를 받은 로렌츠는 어릴 때부터 새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게 많았다.

거의 50세에 가까운 늦은 나이에 본 아들 로렌츠가 의사가 되기를 아버지는 바랐으나 아들이 조류학으로 방향을 틀자 아버지가 “왜가리가 정말 머리가 나쁜지 어떤지를 연구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말을 하자 로렌츠는 무척 화를 내기도 했다고 아버지는 회상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비교해부학, 동물심리학을 정착시켰다. ‘인간은 개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가’와 야생거위에 대한 놀라운 기록인 ‘나는 여기에 있는데 너는 어디에 있니?’, ‘그는 가축과 새와 물고기와 대화한다’ 등의 뛰어난 저작을 남겼다.

야생거위의 생태를 통해 발견한 그의 ‘각인효과’ 연구는 학습이론, 정치학 등에도 차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20세기의 어떤 생물학자보다 콘라드 로렌츠를 통해 우리는 동물에 대해, 그리고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동물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평가가 있다.

1973년 칼 폰 프리슈, 니콜라스 틴베르헨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했다. 조류학자 원병오 박사(1929~)는 북한의 저명한 조류학자였던 원홍구 박사의 4남2녀 중 막내아들이다. ‘날아라 새들아’(원병오. 서울:도서출판 다른세상, 2004. PP315~316)라는 저서에서 부전자전이 된 조류학 연구에 대한 아버지의 영향과 열정에 대해 감동적으로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탐조활동을 함께 하다가 평생의 반려자로 인연을 맺기도 한다. 조류 관련 저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강창완, 김은미 부부는 ‘새를 보다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조류생태 다큐멘타리 사진작가, 저술가인 이들 부부는 ‘제주도의 새 부부’로 1년에 300일 정도를 야외에 나가 새를 연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야생조류도감 제주의 새’, ‘주머니 속 새 도감’ 등 조류 생태탐사 관련 책을 다수 출판했다. 또 아버지를 따라 탐조활동을 하던 어린 자녀들이 생물학을 전공하게 되거나 자연보존 관련 분야의 직업을 갖거나 활동을 하게 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보면 탐조는 대를 잇는 공감과 소통까지 자연스럽게 이루게 하는 모양이다.

‘그 때에는 산에 길이 없고 바다에는 배가 없었다. 만물은 함께 모여 이웃하며 살았고, 새와 짐승들은 떼를 이루었으며, 초목은 제멋대로 자랐다. 사람은 새와 짐승들과 함께 놀았고 까치 둥우리에 올라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장자(莊子)’ <마제(馬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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