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과 그리스의 비극
상태바
그리스 비극과 그리스의 비극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5.07.16 11:5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리스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가 ‘에피다우로스’라는 원형극장이다. 1만4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이 노천극장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연극이 상연되고 있는데, 무대에서 114m 거리에 있는 객석 끝에서도 배우의 소곤거리는 대사가 들릴 정도라고 한다. 지금부터 2400~2500여년 무렵 고대 그리스인들은 여기에 모여 연극공연을 관람하면서 교양과 지식과 지혜를 넓혀갔다. 고대 그리스의 극장은 단순히 연극을 공연하는 장소 이외에 학교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일상 뿐 아니라 디오니소스 축제 같은 때에도 연극 경연대회가 벌어지기도 하였으니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같은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탄생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들 작품구성이 얼마나 치밀하고 탄탄한지 오늘날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를 읽어봐도 우리의 정서가 크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전통은 세익스피어 연극으로 이어졌고, 프로이트는 이 작품을 읽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생각해 냈으며,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썼다.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 이렇게 극장에 모여 연극을 관람했던 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였는데, 카타르시스는 마음속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이 해소되는 것을 말한다. 나보다 더 잘나 보이는 사람들이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파멸해 가는 모습을 보고, 또는 진지하고 잔혹하며 때로는 막장 드라마 같은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관객은 연민의 눈물을 흘리면서 내 삶도 바라 봤던 것이다.

비극 공연을 보면서 스스로를 정화할 줄 알았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후손들이 남의 돈을 마구 빌려 쓰고 갚지 못해 유로존의 계륵(鷄肋)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400년간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다가 1821년 독립한 이래 거의 100년 이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반복하고 있고, 돈 갚을 능력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채권 국가들은 더욱 더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오랜 식민지 생활이 그리스인들의 유전인자마저 바꿔 놓은 것일까?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스스로 빚을 다스리지 못하면 빚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그리스는 확인시켜주고 있다.

왜 그리스인들은 다른 국가의 돈을 갚지 못하는 수치스러움을 시지프스처럼 반복하는 것일까? 그리스가 만성적 디폴트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능력이상으로 많은 돈을 빌려 쓰는데 있다. 관광업과 해운과 선박업 이외에는 변변한 산업이 없는 그리스는 국가의 재정이 부족하자 2001년 너무 일찍 유로존에 가입하여 돈을 빌려 왔고 그것을 포퓰리즘에 기반하여 계획 없이 써버렸다. 능력이 안 되는 초등학생이 유로존의 돈깨나 있는 대학생 형들과 어울리면서 계획 없이 돈을 펑펑 쓴 꼴이다.

빌려온 만큼 세금을 거둬들이면 문제가 없을 터이지만 그리스는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지 못했다. 그리스인들은 1000원의 이익이 발생하면 400원은 공무원에게 뇌물로 바치고 400원은 내가 갖고 200원만 세금을 낸다는 것이다. 부정부패와 모럴해저드 현상이 심각한 상태로 보인다. 우리는 IMF때 금모으기를 하면서 외환위기를 넘기려고 십시일반 노력했지만 그리스는 빚을 탕감해보겠다고 큰 소리 치는 정치인을 총리로 뽑아 협상전면에 내세웠으니 이들의 도덕성에 박수치는 유럽인은 적을 것이다.

빚을 진자가 을이 되어 빚을 갚으려고 노력할 때 채무도 연장해주고 원금도 탕감해줄 개연성이 있을 터인데 그리스의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은 그러한 모습과 거리가 먼 행동을 보여 왔다. 그리스가 빚을 갚으려는 채무이행약속을 제대로 보이지 않자,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는 신뢰라는 화폐를 잃었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스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스는 국가재산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겠다고 약속해야 채권자들의 숨소리가 가라앉을 것 같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그리스 국민들은 에피다우로스 극장에 모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남의 빚 갚는 연극이라도 봐야 채권자들의 분노한 마음이 진정될지 모르겠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1200조원이 넘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에 세계는 경고음을 보내고 있고,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만 그것을 소음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홍민정 2015-08-25 08:54:45
그리스 비극과 그리스의 비극을 읽으면서 해박한 지식에 다시 한번 놀랍니다.
전체를 아우를수 있는 통찰력은 많은 공부이겠지요.
비극...카드의 비극을 생각합니다. 그냥 긇다가 말일이 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개인사
고통을 호소하면 저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이 되어 버린 우리들의 생활에 비극이라고 생각되어지는데 ...가계부채를 개인의 과소비만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