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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서 겨울사이

읍내의 한적한 아파트 앞, 깊어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담장 옆에 높은 감나무가 늘어서서 백월산 봉우리들과 높이를 겨루고 있다. 마당은 텅 비어 바다 밑까지 고요한데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만 전등 빛 같이 빨갛다. 조심스럽게 감나무의 굵은 밑 둥에서부터 가지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용처럼 꿈틀거리면서 갈라지고 또 갈라지면서 높은 끝에 이른다. 가지가 끝나는 곳에서 무한의 공간이 시작된다. 가는 가지와 희끄무레한 겨울 하늘 사이에 아련한 기쁨이 솟는다.

본다는 것은 눈을 움직인다는 것이랄까. 그렇게 가지를 오르내리다보니 나무 전체의 모습이 환하게 다가온다. 그러다가 천정을 보고 뒤로 누우면 가까운 나무 가지들이 그물처럼 얽히며 창틀을 덮어 버린다. 이름 모를 새가 두 마리 날아와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지 끝에서 빨간 감을 쪼아 먹는다. 그러다 두 마리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가지에서 가지로 날아다니니 조용하기만 한 가지들이 금방 생기를 띠고 살아나 커다랗게 팔을 내젖는다. 거리는 공포분위기라도 감돈 듯이 텅 비어 삶의 그림자가 드물다. 그러나 나뭇가지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여유 있게 팔을 벌리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면 도리어 그것을 회초리로 아프게 갈겨준다. 여름에 빛을 받고 공기를 마실 때는 나무도 양털같이 부드러운 잎으로 공간을 포옹했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몸을 뒤치며 수런거렸다. 그러나 바깥과의 교섭을 끊어버린 이제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뜻이 다른 새로운 자유를 즐기고 있다.

겨울은 사람을 좁은 공간속에 가둬 놓으려 든다. 그러나 겨울이라고 다 겨울은 아니다. 겨울 속에는 겨울보다 훨씬 많은 봄이 사이사이 끼어있다. 추위가 맹위를 떨다가도 잠깐 풀리는 날 양지바른 산비탈이나 냇가 둑길을 걸어보면 밝은 햇살 끝에 군데군데 파란 풀들이 나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나무마다 잔가지들이 연기같이 뿌옇게 흐려져 있어 거기서 피어나는 겨울날의 옅은 안개가 마치 봄 안개 같은 착각을 일게 한다. 가다가 멈춰 서서 길가 나무를 들여다보면 잔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눈들이 금방이라도 싹이 틀 것만 같다. 지난 늦가을에 언덕 위 나무들이 가랑잎을 날리는 것을 보고 슬퍼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겨울나무가 추워한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옷을 벗은 겨울나무를 살포시 안아본다. 그러면 몸속에 베어든 추위가 이상하게도 새로운 힘이 되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나무들은 제각기 참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의 자세를 하고 있지 않는가. 손가락을 뻗어 거침없이 선을 그으며 공간을 움켜쥔다. 그러면 거기에 그가 파악 한데로의 세계가 아름답데 펼쳐 나간다. 서둘지 않는 유연한 모습으로….

최복내 <숲속의힐링센터대표 숲 해설가·유아숲지도사·숲길체험지도사·칼럼위원>

최복내 칼럼위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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