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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기획특집 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대전 원동 헌책방거리, 낡은 것들에 풍요가 깃들다헌책방<2>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4.1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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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원동의 헌책방거리 풍경. 40~50여년의 세월을 품은 영창서점, 고려당서점. 육일서점 등이 헌책방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 돌아보면 처음에는 새로 나온 책
1970년대 30여개 대전 헌책방 이젠 대여섯곳 명맥 이어
헌책방 외길 50년 세월… 고려당서점의 사장은 여든 다섯
많은 사람들의 관심 끄는 헌책방 문화콘텐츠개발 등 시급


지역의 헌책방은 서울의 헌책방보다 살림이 팍팍하다. 책을 사 읽는 사람이 서울보다 적은 것이 큰 어려움이다. 책을 사 읽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새 책방’이나 ‘헌책방’ 모두 힘이 든다. 새 책을 사는 사람이 많아야, 그 책을 읽고 다시 내놓는 사람이 있을 테고, 그 책을 내놓아야 ‘헌책방’에 책이 들어오게 되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책을 살 때 인터넷 책방에서 산다면, 어떤 책이든 살 수야 있겠지만, 두 손으로 책을 만지작거리고 들춰보면서 고르다가 사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사는 모든 책이, 책이름이나 지은이 이름이나 펴낸 곳과 차례만 보고서 쓸모가 있거나 읽을 만한지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지역에 있는 새 책방과 헌책방을 모두 활성화 시켜 키울 수 있는 길이란 없을까. 지역의 도서관과 새 책방, 헌책방을 함께 잇는 책 문화도 문화시설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지역에서 헌책방을 즐겨 찾는 발길도 있어야하는 이유다. 헌책방 주인도 애써야겠지만, 이런 괜찮은 헌책방이 곳곳에 있을 때, 지역의 자치단체에서 몇 가지 문화정책이나 기획을 내놓는다면 지역의 주민들뿐만 아니라, 지역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으리라.

헌책방은 헌책이 있는 곳이다. 국어사전에서 말 풀이를 살펴보면 ‘헌책을 팔고 사는 가게’를 ‘헌책방’이라 부른다. ‘헌책’은 ‘이미 사용한 책’을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헌책방이나 헌책을, 또 책을, 이런 말 풀이로 나타내거나 바라보아도 좋을까. 그저 ‘누군가 한 번 쓴(읽은) 책’을 ‘헌책’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허전하기 때문이다. 그저 ‘헌책을 팔거나 사는 곳’을 ‘헌책방’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라는 느낌이다. 마음을 담는 책이요, 마음을 담기에 기나긴 나날이 흘러도 얼마든지 되읽으면서 꿈을 빛내도록 도우니까, 사람들이 헌책방으로 마실을 다니며 손에 책 먼지를 묻힐 것이다. 그리 크지 않든 제법 크든, 마음을 밝히는 책 하나를 만나면서 기쁘게 웃을 만한 책 쉼터인 헌책방이 있으니까 말이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을 다시금 돌아보면 이 모든 헌책은 처음에는 새로 나온 책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로운 책은 없다. 지난날 책이 밑거름이 되어 새 책이 나오고, 이 새 책은 금세 헌책이 돼 또 다른 새 책이 나오도록 밑거름이 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든 새 책이나 헌책으로 장만해 읽든 책은 모두 같은 줄거리와 느낌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은 같은 책이니까. 우리는 ‘책’을 읽는 사람이지 ‘헌책’이나 ‘새책’을 읽는 사람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좋은 책을 알아보거나 찾아봐야지, 값진 책이나 새로운 책이나 오래된 책이나 이름난 책을 찾아볼 노릇이 아니다.

■ 헌책의 문화적 가치 인정하는 사회
대전에도 오래 전 향수를 간직한 채 겨우 명맥을 유지해 나가는 헌책방 거리가 있다. 대전역 근처에 원동이라 불리는 곳에 헌책방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원동이라고 불리던 곳이 지금은 중앙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전중앙시장 한복거리 옆 신중앙시장 주차타워 앞쪽에는 몇 개의 헌책방들이 모여 있다. 과거 1970년대에는 30여개가 넘는 헌책방들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영창서점, 고려당서점, 성실서점, 육일서점 등 대여섯 개의 헌책방이 과거의 명성과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로 헌책방 경력이 40년째라는 송진헌(65) 영창서점 사장은 헌책방이 살림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훈풍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곳 대전의 헌책방 거리에서 책방 경력이 가장 오래된 연장자로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고려당 서점의 장세철 사장은 여든 다섯의 나이라고 전한다. 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구실에 근무하다가 서점을 열게 됐다고 한다. “고소설이나 가사에 관심이 많아 희귀본이 들어오면 자료를 찾아보곤 했다”며 “단골 대학 교수들에게 연결하여 논문에 포함되기도 하고 대학박물관에 전시도 됐다”고 회고하면서 “1956년에 원동시장에 이 건물이 처음 세워졌는데 처음엔 헌책방은 없었어. 신간을 파는 원동서점이 이 건물에 처음 있던 서점이었고, 1960~70년대가 지나면서 노점으로 헌책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단속이 심해져서 노점을 못하게 되니까 하나둘씩 건물 안으로 들어온 게야, 내가 두 번째로 들어왔지. 이제 50년 세월이 넘어섰네.” 대전의 헌책방뿐 아니라 원동시장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살아 있는 역사를 만나고 있었다. 헌책방 외길로 5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왔다는 말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연세에 비하면 목소리는 청년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의 총기가 살아있다.

대전의 헌책방 중에서 가장 규모가 넓은 육일서점의 주인장은 40여년이 된 헌책방을 맡게 된지 10년여 됐다고 한다. 육일서점을 인수한 조방현 사장은 1980년대 홍명상가에서 홍명서점을 운영했고, 서적도매업에 몸담기도 한 서점맨이다. 그러다보니 헌책방을 인수한 것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한다. 서점 안에는 과거의 역사와 요즘 책까지 혼재돼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착각이 들 정도다. 책꽂이에는 빛이 바랜 오래된 고서적부터 1980년대 대학생들이 즐겨보거나 숨어서 보던 책들도 즐비하게 꽂혀 있다. 1980년대 군부정권에 저항하던 수많은 청년들이 사회과학 도서를 읽으며 공부를 했다. 공식적으로 판매가 되는 책들도 있었지만, 판매금지조치가 이뤄져 일반서점에서는 구하기 힘든 책들은 복사본을 통해 돌려 읽기도 했다. 그런 복사본 책들도 있다. 옛 고문헌과 필사본, 역사문화서적 뿐만 아니라 족보까지도 책들이 첩첩 산을 이루고 있다.

“그냥 책이 좋아 헌책방을 넘겨받았다”는 조 사장은 “좀처럼 구하기 힘든 책들을 발견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3평 남짓의 조그만 헌책방을 운영하던 조 사장은 작년 12월 지금의 지하 50평 규모의 공간으로 매장을 옮겼다. 책을 꺼내 볼 수도 없을 정도로 협소한 공간에서는 헌책방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 사장에게 헌책방은 어떤 의미일까. 오래된 책과 잡지, 자료 등을 가지런하게 서점의 벽에 걸어뒀다. ‘두 날개, 갯마루, 백석(白石), 문학개론, 철학개론’ 등 오래된 책들을 빼곡하게 진열해 놓은 광경에서 그의 행복감이 전해진다. 독서를 좋아하고 특히 사회과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주인답게 관련서적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다. 중앙시장 초입, 헌책방거리의 건물 지하에 자리한 이 헌책방은 헌책뿐만 아니라 고풍스런 골동품도 진열돼 있다. 오래된 오디오나 첼로, 시계 등 중년들의 추억을 자극할 만한 소품들도 있다. 책들로 발 디딜 틈도 없는 여느 헌책방과 달리 이용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도 마련돼 있다. 이 책방의 주인 조방현 사장은 “문인들과 시민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서점을 꿈꾼다”는 청사진도 밝혔다. 주로 고물상이나 가정집, 아파트단지 등이나 향토사가 등 단골들에게서도 책을 선별해 오고 있다는 이 헌책방은 일반 대형 중고서점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희귀도서나 절판도서를 구하기 위해서 발품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 바로 이러한 헌책방이다. 현재 중앙시장 원동에 자리한 헌책방은 6개 정도다. 최근 두 곳의 헌책방이 사라졌을 만큼 헌책방의 불황은 심각하다. 이에 대해 헌책방의 주인들은 다른 서점과 차별화된 전략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헌책방 주인 조방현 사장도 “중앙동 헌책방 거리 일대를 대전만의 특색 있는 문화의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며 “비단 헌책방뿐만 아니라 LP상점이나 골동품 가게 등이 모여 방문객들이 문화적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헌책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문화콘텐츠 개발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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