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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기획특집 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헌책방이야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헌책방<6>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5.1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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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책 내용을 모르면 손님에게 권하거나 대화할 수가 없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책 팔고 공연하는 복합문화공간
헌책방 찾는 손님은 정말 독서에 내공이 쌓인 분 많다
독립문 ‘골목책방’ 오십년 세월 한 곳에서 헌책방 꾸려


헌책방에 따라붙는 일반적인 수식어는 아마도 ‘고색창연’일 것이다.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 대전 원동의 헌책방 골목, 전주의 헌책방 같은 곳이 그렇다. 노끈으로 묶인 책 더미 사이로 나이 지긋한 주인이 책을 척척 골라내는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작은 마을 작은 골목에는 그래서 아직도 작은 헌책방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친 헌책은 귀한 사람의 또 다른 손길을 타면서 새로운 가치의 숨결을 얻는다.

하지만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무엇인가 수상해 보이는 이름이다. 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에서 5분쯤 걸으면 길가에 푸른 줄무늬 차양 위로 사각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그곳이다. 허름한 붉은 벽돌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책방에 들어가면 ‘헌책방’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서른 평 남짓한 공간이 아늑한 서재 같기도 하고 카페 같기도 하다. 어느새 귓가에는 은은한 재즈 선율이 휘감긴다. 벽에는 천장 높이 책장들이 서 있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 쪽의 책장은 사람의 허리 높이 정도로 낮춰 시야를 확보했다. 책방 곳곳에는 이런저런 소품들을 배치한 것이 특징적이다. 산뜻한 북카페다. 책방 주인이 애써 모은 희귀 수집품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관련한 자료들이라고 전한다. 윤성근(43) 대표가 대학 시절 원서로 읽은 ‘앨리스’에 빠진 이후 30년 가까이 모은 것들이라고 한다. 책방 이름 ‘이상한 나라’도 그 책에서 따왔을 정도로 애정이 각별하다고 한다.

■ 은평구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윤 대표는 어릴 때부터 ‘활자 중독’이라 할 만큼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헌책방에 드나들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한 달에 60~70권씩 책을 읽는다고 전했다. 지금 진열해 놓은 3000여권의 책도 빠짐없이 윤 대표가 직접 읽어보고 고른 것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방은 도서 길잡이 역할도 겸하는 이른바 큐레이팅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도 열린다.

윤 대표는 “책이란 옷이나 신발과 달라서, 책 내용을 모르면 손님에게 권하거나 대화할 수가 없다”며 “그래서 억지로 잘 모르는 책을 팔기보다는 내가 직접 읽어서 아는 책을 권하는 게 편하고 좋아서 읽어본 책만을 판매한다”고 말하면서 ‘헌책방’을 차린 이유에 대해서도 “제일 큰 이유는 거짓말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다. 원래부터 사소한 일까지도 거짓말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헌책방이야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 같다고 느낀다. 헌책방을 찾는 손님은 정말 독서에 내공이 쌓인 분이 많다. 내가 읽을 때 재미가 없는데도 굳이 사탕발림 하면서 억지로 팔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그런 말에 안 넘어가는 분들이니까. 그런 분들이 고객이니 일하기가 아주 편하다. 팔리는 책이 어떤 책인지 감도 금방 잡힌다”고 밝혔다. 헌책방의 특성상 ‘내공’이 쌓인 손님이 많아, 책을 팔기 위한 억지 사탕발림은 더더욱 피한다는 설명이다.

책은 오프라인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책 상태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직접 확인하고 사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설명이다. 책을 사들일 때는 원가의 20~30% 정도에 사고, 팔 때는 원가의 50% 선에서 책 상태에 따라 달리 책정한다. 희귀본이나 절판된 책이면 원가의 5~6배 이상 값이 뛸 때도 있다.

윤 대표는 ‘헌책방 주인’ 하면 떠오르는 푸근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모습이 어딘지 예술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책방을 열기 전까지는 컴퓨터를 전공한 IT 회사 프로그래머였다. 그런데 어찌하다가 2007년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시작하게 됐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헌책방을 시작한지도 10년 세월이 넘었다고 말한다.

헌책만의 매력에 대해서도 “헌책은 일단은 가격부터 싸다. 나도 읽고 싶은 책은 헌책방부터 찾아본 뒤에 없을 때 새 책을 산다. 워낙 책을 많이 읽으니 기왕이면 싼 게 좋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면 될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서 읽어야 느릿느릿 읽어도 마음이 편하다. 게다가 한두 번 보고 마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니까. 남이 봤던 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도 있다. 새책은 마치 새 운동화를 신은 것처럼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그렇지만 헌책은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특히 책에 있는 메모나 밑줄도 매력 가운데 하나다. 미지의 전 책 주인은 왜 이 부분에 밑줄을 쳤을까, 왜 메모를 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내가 밑줄 치려고 했던 부분에 이미 밑줄이 그어진 걸 보면 ‘왜 그랬을까’ 하고 또 공감해 보는 그런 매력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책도 팔고 공연도 열고 공부도 하고 차도 마시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역 주민들, 헌책 수집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소문을 들은 사람 중 하나였다. 이름난 애서가인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 시절부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종종 찾았고, 급기야 서울시장 집무실 디자인을 윤성근 대표에게 맡기기에 이르렀다. 주문은 집무실을 “헌책방처럼 꾸며달라”고 해 윤 대표가 직접 디자인을 했고, 박 시장이 가지고 들어간 3000여권의 책을 배치했다고 전한다.

■ 서울 독립문 영천시장의 ‘골목책방’

서대문구 영천시장의 골목에 있는 ‘골목책방’ 모습.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에는 영천시장이라는 오래된 저잣거리가 있다. 영천동 옆으로 현저동이라는 오랜 골목마을이 있다. 이 둘레에는 독립문이 크게 서고, 독립문 앞으로 길고 높은 찻길이 가로지른다. 인왕산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한 이 둘레에는 서대문형무소가 있기도 하다.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이 있는 곳이다. 서대문구 영천동이나 독립문 언저리는 헌책방인 ‘골목책방’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1970년 언저리에 길장사로 처음 책 살림을 꾸리다가 이듬해부터 가게장사를 이은 ‘골목책방’은 지금까지 자그마치 오십년 세월 남짓 한 곳에서 헌책방을 꾸려온 오래된 책방이다.

이곳 ‘골목책방’은 서울시에서 선정하는 ‘서울미래유산’으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이 오래된 책방은 은평구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과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과 인연이 있는 단골 헌책방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박원순 시장은 시장이 되기 전 ‘이 오래되고 멋진 책방에 따로 간판이 없다’는 대목을 안타깝게 여겨서 ‘만다라’를 쓴 소설가 김성동으로부터 글씨를 받아 인사동에 나무새김을 맡겨 손수 간판을 달아 준 곳으로도 알려진 책방이다.

새로 옮긴 ‘골목책방’은 독립문한의원 건물 사이 골목에 있다. 길가 1층의 안경집하고 수정당 시계집 사이에 작게 난 영천시장과 이어지는 골목이다. 1970년부터 영천시장골목을 지켜왔던 헌책방 ‘골목책방’은 팔순의 부부가 오늘도 지키고 있다. 하얀 머리카락의 주인장에게 네 권의 책을 골라 놓으니 “한권 더 고르면 1만원이요”라며 책 더미를 손질하고 있었다.

과거 종로구 평동에는 ‘연구서원’이라는 책방이 있었고, 교남동 쪽으로는 ‘어제의 책’이라는 헌책방이 있었다. 이들 책방을 들러 사직동 고갯길을 넘어가면 누하동에 ‘대오서점’이라는 오랜 한옥 헌책방이 있었으며, 누하동에서 더 걸어가 계동에 이르면 ‘합서점’이라는 자그마한 헌책방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5호선 서대문역에서 3호선 독립문역에 이르는 한길 한쪽은 온통 아파트 숲으로 바뀌었다. 평동에 있는 적십자병원부터 하늘찻길 앞까지 온통 고층아파트다. 그 길 건너 영천시장 독립문한의원 골목엔 여전히 ‘골목책방’이 있다. 이렇듯 골목책방의 오래된 책이 오히려 더 새롭다. 작은 골목책방이 아름답다. 오랜 헌책방이 깃든 작은 저잣거리 골목이 눈부신 이유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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