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뛸거면 월계관 쓰겠다는 승부욕으로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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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뛸거면 월계관 쓰겠다는 승부욕으로 출전
  • 황동환 기자
  • 승인 2019.06.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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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에서 마라톤까지 숨은 실력 뽐냈던 박현분 씨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양장(2008년)과 양복(2011년) 부문에서 각각 은메달 수상, 2012년 ‘제21회 서울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 여자 5km 종목에서 금메달 획득 등 홍성의 화제의 중심에 올라 본지에 소개된 적이 있던 박현분(60. 홍성읍)씨.

박 씨가 직접 운영하는 ‘강남옷수선(홍성 상설시장)’ 가게에서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2012년 이후 8년만에 만난 박 씨는 기능경기대회는 물론 각종체육대회 현역선수에서 물러나 지금은 생업에 전념하고 있었다.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남다른 실력을 발휘했던 박 씨가 휠체어마라톤이라는 전혀 다른 부문에서 각광을 받게 될 줄은 본인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제가 홍성군장애인협회 총무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마라톤 종목은 엄찬섭씨와 신정녀씨 이렇게 두 분이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신정녀(은하)씨가 도민체전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가족문제로 서울로 주소를 이전해야만했어요. 갑자기 결원이 된 신 씨 대신 저보고 대타로 출전하라고 엄 씨가 권유했죠. 엄 씨의 지도로 며칠 트레이닝 받고 출전해서 금메달을 따게 된거예요.”

박 씨가 운동선수로 처음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한 종목은 충남장애인체육대회 장애인휠체어 100m, 200m 부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박 씨는 본인도 몰랐던 운동선수로서의 숨은 실력을 점차 발휘하게 됐고, 이를 눈여겨 본 엄 씨의 계속된 권유로 휠체어마라토너가 됐다. “단거리 메달획득 이후 뭣모르고 출전한 마라톤대회  여자부에서 2등을 하게 됐어요. 이를 시작으로 각종 대회 때 마다 나가게 된 거예요. 마라톤은 처음 출전해 2등했는데, 이왕 뛸 거라면 월계관을 써보고 그만둘 때 그만둬야겠다는 승부욕으로 계속 마라톤을 하게 된거죠”

그렇게 시작된 박 씨의 마라톤 경주는 곧바로 빛을 보게 된다. ‘제21회 서울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2012년)’ 5km 종목에서 박 씨가 여자 장년부 금메달을, 엄 씨는 남자 청년부 동메달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던 것이다. 이외에도 박 씨는 펜싱대회도 출전했었다. 첫 도민체전 출전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전국대회를 앞두고 선수 결원이 발생했고, 대타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당시 대진운이 좋았어요. 꽤 실력이 있던 분이 저의 상대였는데, 마침 그분이 임신중이었어요. 당시 그분이 제가 초보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제가 본인을 아무 곳이나 찌를 것 같았는지 저와 경기 직전 기권하는 바람에 금메달 결정 전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습니다. 그랬더니 그때 홍성군이 난리도 아니었어요. 현수막도 걸리고…”

몸이 성한 사람도 5km는 걷기에 짧은 거리는 아니다. 이 거리를 발도 아닌 양 손의 힘으로 휠체를 밀고 경쟁해야 한다. 몸에 상당한 무리를 가져온다. 이 때문에 박 씨는 어깨통증 등 너무 힘이 들어 6년전쯤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런 박 씨에게 아쉬움이 하나 남아 있었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출전이 불발됐던 일이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전국대회에서 금, 은, 동 중 하나의 메달을 따야 한다. 그리고 전국대회는 그 이전에 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야 출전권이 주어진다. 이런 과정을 전부 통과했던 박 씨는 국제대회에 앞서 실시하는 10개월 합숙훈련에 합류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그 해 박 씨에겐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이 있었다. “당신이 출전하면 분명히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당시 남편의 설득으로 아들을 끝내 혼자 놔둘수는 없었다. 박 씨는 그 때 일을 잊지 못하는 듯 했다. 대신 그 아들이 지금 의대 전공의가 됐다. 가끔 아들에게 “올림픽 연금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며 웃으며 말한다는 박 씨는 자신의 희생으로 아들이 잘 된 것을 뿌듯해했다.

박 씨는 선수들에 대한 군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에둘러 말한다. “제가 운동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대회용으로 취급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비 털어 장비 사가면서 운동해야 했어요. 운동용 휠체어는 천만 원을 호가합니다. 군의 열악한 지원상황에서 이런 장비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박 씨 말처럼 연습하고 사용하다보면 휠체어는 고장이 날 수 있다. 그런데 그 수리도 선수들 몫이었다는 상황이 운동을 계속하기 어렵게 했다고 한다.

지금 홍성군에서 휠체어마라토너 남자선수로는 엄찬섭씨가 유일하고, 여자선수들은 박 씨보다 나이가 적은 여자선수들 몇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회 앞두고 출전선수들을 모집하는 상황이다. 한 때 홍성의 장애인육상선수들이 전국에 화제를 몰고온 시절이 있었다. 실력으로 얻어낸 성과들이었다.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군의 여건 조성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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