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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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9>
  • 한지윤
  • 승인 2019.09.1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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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그것도 부족했음인지 다듬이질을 해서 옷에 맵시를 내어 자식들에게 입혔던 이 모두가 어머니들의 솜씨요, 창작이요, 문화인 것이다.
이와 같이 어머니의 대명사로 불리워지던 물의 문화는 그시대에 백제의 국모 소서노가 한수 변에 도읍을 정하고 이민족에게 아리랑의 문화를 남겨주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은 이조시대 왕성이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건재하다. 지금은 세계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며 또 선진국의 수도로 웅비하려는 서울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백제의 어머니, 아니 겨레의 어머니가 골라잡은 터전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상고할 때 이 겨레의 어머니들의 은혜를 하늘이라고, 또 땅이라 한들 어찌 족함이 있으랴! 그러나 어머니들이 물에 온갖 정성을 다해 이룩한 것이 아리랑이지만 그 유래의 알쏭달쏭함이 또한 아리랑의 노래이다. 이러한 아리랑은 슬픔과 피로를 덜어주고 또한 즐거울 때에 목놓아 부르면 그 즐거움을 더해 주는 것이다. 마치 품안의 자식을 위해서 부르는 자장가를 그 아이가 알 수는 없으나 포근한 잠에 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들의 자애로움을 생각할 때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그 자식의 뼈와 살, 그리고 온몸에 배었기 때문에 알쏭달쏭한 아리랑의 노래가 울리기도 하고 웃게 하는 지도 모른다.
이상과 같은 아리랑의 문화 즉, 어머니의 사랑을 지니고 한성이 도읍으로 정해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한 소서노 국모의 슬기를, 누구인들 찬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유리태자 이야기>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이렇게 쉽게 남편 주몽이 자기의 곁을 떠날 줄은 정말 몰랐다.
남들은 뭐라고 하든 자기의 눈에는 세상에 더 없이 잘난 사람으로 보였기에 예씨 부인은 주몽과 결혼을 했던 것이다.
‘목장에서 말을 기르는 목동이면 어떻고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남에게 설움을 받아가며 살아가면 어떠랴. 장래에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면 그만이지. 더구나 자기를 끔찍이 아껴주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도 없고, 행복 이란게 뭐 별건가!’
이런 생각으로 예씨 부인은 주몽과 결혼했던 것이다.
생각대로 주몽은 예씨 부인을 끔찍이 아껴 주었고 금이냐, 옥이냐 소중히 생각해 주었다. 그것은 시어머니 유화 부인도 그러했다. 왕후(王后)가 부럽지 않았고 왕자비가 부럽지 않았다. 마음껏 기뻐했고 즐거웠으며 행복했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남편이 자기의 곁을 떠나가 버린 것이다.
이 동부여에서 시기와 미움과 음해를 받으며 살아 갈 남편 주몽은 아니었다.

어디를 가든 꼭 큰일을 해낼 그런 남편 주몽이 결혼한 지 여섯 달 만에 자기 곁에서 떠나갈 줄이야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목장에 데리고 있는 오이가 불러서 나갔다 들어온 뒤,
“부인 나는 지금 이곳을 빨리 떠나야 하오.”
“아니, 떠나시다니요?”
“대소 태자가 죄를 뒤집어 씌워 나를 잡으러 온다고 하오.”
“대소 태자가요?” <다음호에 계속>

<이 소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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