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나눔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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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나눔의 즐거움
  • 허민욱 학생(홍주중 3학년)
  • 승인 2010.12.0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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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중학교 3학년 허민욱 학생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만 해도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아무런 의지도 없이 그저 시간을 채우기 위해 했습니다. 청소년수련관 혹은 우체국 같은 공 기관에서 약간의 일손만 돕고 인증서를 뽑아서 제출하면 담임선생님께서 시간을 채워주셨고, 저는 매번 그런 봉사활동 아니, 시간 채우기를 할 때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게 정말 봉사활동일까? 정말 그렇다면 어째서 내 마음에 보람이 차지 않을까?" 라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2년을 살아왔고, 중학교 3학년에 반 배정을 받은 뒤로 전 바뀌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학교에서 재가봉사활동을 지도해주신 선생님께서 바로 제 담임선생님이 되신 것입니다. 선생님께선 시간 채우기에 불만을 갖고 있는 절 알아보셨는지, 저를 학교 봉사동아리에 가입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방학과 주말을 이용하여 틈틈이 제게 재가봉사활동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렇게 막막하게 선생님을 따라간 제게 첫 봉사는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위생환경이 좋지 못한 탓에 대중목욕탕이 아니면 제대로 씻을 수도 없는 집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저와 제 동아리친구들은 막중한 일을 맡았던 것입니다. 정신지체장애를 가지신 부모님 밑에서 자란 세 아이를 씻기는 일을 맡은 것입니다. 저를 처음 본 아이들은 저를 경계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냄새가 나서 탈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눈치를 주기도 했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때린다고 협박을 하는 것이 귀여울 따름이었지만, 아이들의 버릇은 좋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가정교육의 부족 때문인지 반말을 하며 심지어 저희에게 욕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온탕에서 때를 불리라는 저희 말을 듣지도 않고 냉탕에 들어가서 무작정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면 무척 속상했습니다.

그렇지만 봉사의 참뜻을 알기 위해 참고 또 참아가며 아이들을 정성스럽게 씻겼습니다. 그렇게 목욕사투가 끝나고 옷을 입은 아이들 몸에서는 냄새가 남아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얼마나 어려운 환경인지 속으로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곧 아이들과 동아리단원들은 선생님 차를 타고 집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때 집 문을 들어서자마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주변에도 이렇게 어렵게 생활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에 말입니다. 화장실은 문도 제대로 달리지 않았고, 재래식인데 최근에 한 번도 청소를 한 적이 없는지 오물이 차고 넘쳤습니다. 뒷마당의 잡초는 사람 키만큼 자라있었으며 건넛방도 사용한 적이 없는 것처럼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정신장애 1급을 갖고 계신 아버지께서는 힘든 막일로 생활비를 벌어 오시느라 힘이 없으신지 안방에 누워만 계셨고, 마찬가지로 어머니께서도 같은 장애를 갖고 계셔서, 작은 집안일을 제외하면 두 분께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을 경험하니 저는 진실된 마음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저희 중학생이 집을 헐고 다시 짓는 일은 할 수 없을 뿐더러, 그 황폐화된 집도 전세를 들어서 산거라 주인이 따로 있어서 국가나 지방복지센터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제가 도울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 솟구쳤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 봉사활동마다 열과 정성을 다해 제 마음을 전했고, 아이들은 그것을 느꼈는지 저희 동아리와 점점 친해져갔습니다. 또 저희가 처음 방문했을 때에도 별로 반가운 기색이 없으시던 어머니께도 정성이 전해졌는지 이젠 많이 반가워하시고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도 많이 하십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부끄러우셨는지 자주 말씀을 안 하셨는데, 이제는 거리낌 없이 필요한 걸 말씀하시고 아들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 주시는 것이 눈에 보일정도입니다. 작은 저희가 일으킨 큰 변화는 빼뽀 마을의 가족에만 온 것이 아니라 제 마음에도 일어났습니다. 이제야 제가 원하던 참 봉사가 무엇인건지 깨달은 것입니다. 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보람이 흘러나왔고, 시험기간 등의 이유로 가지 못할 때면 아쉽기도 하고 아이들이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름하지만 행복한 그 집에 시샘이라도 하듯 태풍 곤파스가 들이닥쳤습니다. 건넛방은 아예 쓸 수 없게 쓰러져 버렸고, 임시보수를 해놓은 화장실도 온 데 간 데 없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도움이 시급해진 가족에 저희가 방문해서 가장 급한 화장실을 수리하고 흩날려진 잡초를 정리하는 둥 아픔을 함께 나누며 성심껏 도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학생들 덕에 한시름 덜었구먼." 이라고 하시며 고마워하셨습니다. 며칠 후 우리 홍성에서 있었던 내포축제에 아이들을 데려가기도 했고, 영화도 보여줬습니다. 곧 있을 추석에 제사상에 올리시라고 국거리 양지쇠고기를 어머님께 드렸고, 아이들에게 추석 선물을 물어보니 삼형제 모두 한 입으로 축구화를 사달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시켜놓은 상태입니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우리에게 이제 빼뽀 마을로 다니는 재가봉사활동은 조금씩 저와 동아리친구들의 생활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봉사가 무엇인지 모를 때의 저 같은 아이들이 제가 졸업할 홍주중학교에 없기를 희망합니다. 아이들에게 나눔에서 나오는 행복을 가르쳐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봉사동아리는 절대로 없어지지 말아야겠지요. 졸업한 후에도 제가 학교를 찾아와 후배동아리 아이들을 격려할 것입니다. 물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학업을 핑계로 뒤로 미룬다거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를 경험해 본 것이 정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이런 경험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행복을 전해주는 과정에서 도리어 행복을 받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 봉사는 이웃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웃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것도 저이고, 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보람과 나눔의 즐거움을 받은 것도 저니까요. 대한민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모든 학생들이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될 그날까지 저는 꾸준히 봉사를 할 것입니다. 그날이 오게 되면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 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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