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 문명의 뿌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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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 문명의 뿌리》를 읽고
  • 장정우 <공익법률센터 농본 활동가>
  • 승인 2023.09.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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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인지를 묻는 아이들
해마다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동네의 여러 단체를 소개하는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오늘도 마침 수업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질문을 듣다 문득 자주 나오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에 손님은 ‘얼마나’ 오나요?”, “연봉은 ‘얼마’예요?”, “하루에 ‘얼마’ 벌어요?”, “가장 비싼 책은 ‘얼마’인가요?”, “일 년 매출은 ‘얼마’인가요?”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이들의 질문 중 절반에 ‘얼마’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었다. 하긴 ‘얼마’에 대한 관심은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은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리며 새삼 친구들의 연봉을 알게 돼 놀랐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공무원인 자신에 비해 친구들의 연봉이 얼마나 높은지 놀라움 반, 부러움 반이 담긴 대화 역시 ‘얼마’가 주된 주제였다. 연간 농업소득이 948만 원인 한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내게 지인은 한참 친구들의 연봉을 이야기해 줬다. 은행원인 친구의 연봉은 ‘1억 원’, 도시가스공사에서 일하는 친구는 ‘8000만 원’, 얼마 전 LG로 이직한 친구의 기본급은 ‘6000만 원’…. 

숫자의 크고 작음이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는 기준의 전부는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숫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그런 관점에서 27년째 농업소득 1000만 원에서 제자리걸음하는 농사는 수지가 맞지 않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논밭에 엎드려 땅을 기는 나는, 우리는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바보’인 것일까.
 

웬델 베리/한티재/1만 9000원.
웬델 베리/한티재/1만 9000원.

■ 소농, 문명의 뿌리―뿌리가 뽑힌 현대 사회
웬델 베리는 《소농, 문명의 뿌리》를 통해 과거에 비해 고도로 ‘발전’했다고 여겨지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웬델 베리는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문명의 뿌리인 농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농사에서 멀어지는 과정은 곧 삶의 기준이 질적인 것에서 점차 수량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이며 문명의 뿌리가 땅으로부터 뽑혀 나가는 과정임을 밝힌다. 

그는 발전의 다른 표현인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발전 과정에서 우리의 일이 ‘해체’되고 ‘분산’됐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급을 바탕으로 하는 농사에서 점차 멀어졌고 자신의 전문영역 밖에서는 소비자가 됐다. 전문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질수록 우리가 생산자일 수 있는 영역은 계속 좁아지고, 소비자로서의 역할은 점점 커졌다. 결국 자급능력을 상실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된 현대인은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되고, 돈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돈을 점점 벌기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점차 불안에 사로잡히게 됐다는 것이다. 

웬델 베리가 지적하는 전문화의 또 다른 폐해는 책임감의 해체다. 일의 파편화로 인해 자신이 일터에서 한 작업과 최종 생산물(상품)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오늘 내가 작성한 서류 또는 만든 부품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상품의 일부가 되거나, 쓰레기를 만들지 쉽사리 떠올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 결과가 우리 행동의 결과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 즉 ‘책임감’의 해체이다.

■ 그럼에도 계속될 농사
대부분의 사람이 얼마를 버는지 몰두할수록 땅에 남은 농부의 가치는 낮아 ‘보이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설사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농촌 풍경, 농사일이 눈에 익은 아이마저도 농사를 외면하게 된다. 그 결과는 줄어든 농지와 농민이다. 한때 전 국민의 절반이던 우리나라 농민은 오늘날 210만 명, 전체 인구의 4%에 그친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세상의 대다수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에게 중요한 한 사람의 지지로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갈 힘을 얻곤 한다. 웬델 베리는 이 책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농사의 의미와 가치를 역설한다. 그러니 열심히 농사를 짓다가도 현실에 치여 농사짓는 일에 회의감이 드는 농부에게, 농부를 꿈꾸지만 주위의 만류로 망설이는 예비 농부에게, 농촌에 살지만 농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문득 농사가 궁금해진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웬델 베리의 글은 주저하고 회의감에 빠지려던 우리에게 농사의 가치와 재미를 다시금 일깨워줄 것이다.


머리를 주억이며 비틀거리는                  
늙은 소와 함께
느린 걸음으로                              
졸린 듯 논밭을 일구는 사람뿐            

개밀 더미에서 불꽃도 없이
피어오르는 희미한 연기뿐
그러나 이것은 계속되리 언제나처럼
왕국들은 사라져도

ㅡ토머스 하디, 「국가가 붕괴되는 이때(In Time of the Breaking of Nations)」, 1916. 
 웬델 베리, 이승렬 옮김, 《소농, 문명의 뿌리》, 한티재, 2016, 43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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