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넘어 돌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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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넘어 돌봄으로
  • 이동호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
  • 승인 2023.12.2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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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소재지를 지나던 중, 지금은 아니지만 오래전 슈퍼를 운영하셨던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집 앞 수돗가에 앉아 멀리 찻길을 바라보고 계셨다. 인사를 드리는데 할머니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주말에 찾아온 자식을 점심 먹이고 보내는 길이라고 했다. “애가 올 때는 기쁜데, 갈 때는 슬퍼.” 할머니는 소매로 눈물을 찍으셨다.

농촌에 살며 알게 된 풍습이 있다. 이웃들은 누구네 집을 부를 때, 꼭 자식의 이름으로 불렀다. 복길이가 자식이면 복길이네로 부른다. 여기까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손주가 태어나면 이제는 그 집이 손주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들을수록 신선하면서도 정겹다. 그 이름이 뭐라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곤 하는 ‘내리사랑’의 증거처럼 난 혼자 코가 찡해지곤 했다. 한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이름을 따라 내려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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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래로 흐른다. 인류가 늘 그래왔듯 공동체는 다음 세대를 돌본다. 그 전통에 따라 나도 자랐고, 조카가 자란다. 하지만 공동체의 울타리를 느끼는 시간은 잠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터전에서 살아간다. 전화로 안부만 물을 뿐, 우린 다시 개인이 된다. 서로의 이름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 부산스러운 명절이 끝나고 고령 인구가 절반을 넘어선 마을은 조용하다. 그리고 나는 이 마을에서 명절 때만 보았던 내 할머니의 일상을 보게 된다.

옆집 할머니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재탕 삼탕 끓여 먹는 찌개는 짜고, 핸드폰 매너 모드를 풀지 못해 읍내 서비스센터에 나가야 한다. 나는 옆집 할머니에게서 내 이름으로 불렸던 내 할머니, 내리사랑의 원천이었던 할머니의 일상을 목격한 증인이 된다. 나는 이제야 의문이 생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누가 돌보아야 할까. 사랑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이제는 병약한 그분들이 고독할 때, 고통스러울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공동체가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기댈 곳이 없다. 

■ 무관심이 지배하는 세상
질병에 맞서 인류는 의학은 대단한 결실을 맺어왔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아프게(치료비 감당을 못하게) 될까 봐 두렵다. 치매에 걸릴까 봐 두렵다. 각종 첨단기기와 기술이 발명되고 있음에도 우린 인간다운 생활을 못하게 될까 봐 두렵다. 이 두려움은 우리를 이 시대의 확실한 종교에 입적시킨다. 바로 돈이다. 돈을 벌기 위해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고, 어르신들은 오늘도 몸을 혹사한다. 

우린 의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현대 종교는 우리에게 약한 것은 죄악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의존성이 강한 노약자(때로 어린이도)는 사회의 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 의존하도록 진화했다. 찰스 다윈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것은 협동(그리고 학습능력)이라 했다. 누구든 적던 많던 상호의존하는 게 인간이다. 책 <돌봄 선언>은 우리 시대에 팽배한 무관심의 정체를 밝힌다. 무관심은 무한 시장주의로부터 시작된다. 요즘 세상 참 팍팍해졌다고, 험악해졌다고 느껴왔다. 그건 ‘젊은것들’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내재한 구조적 문제라고 책은 말한다.

■ 돌봄은 인류의 힘
무관심의 늪에서 우린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은 돌봄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책은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다. 개인, 단체의 선한 인성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체, 국가, 경제, 정치 각각이 바뀌어야 한다. 돌봄을 사회의 중심으로. 한파가 시작된 겨울, 돌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는 따뜻한 분들과 이 책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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