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다-《민중의 이름으로》를 읽고
상태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다-《민중의 이름으로》를 읽고
  • 신나영 <꿈이자라는뜰 농장일꾼>
  • 승인 2024.04.04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거철이 시작됐다. 현수막이 나붙고, 트로트 음악을 켠 유세트럭이 동네를 돌아다닌다. 예산군과 홍성군을 통틀어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예산군과 홍성군을 합치면 인구가 16만 명이 넘는다. 그들은 16만 시민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할 수 있을까? 전국적으로는 300명의 국회의원이 5100만의 국민을 대표한다. 이것이 가능한가? 그중에서 이곳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한 명. 후보 두 명 다 60대 남자이다. 농촌에 사는 40대 여성인 나의 정치적 의견은 얼마나 반영될까? 30대 아기 엄마의 고충은 얼마나 이해할까? 80대 할머니가 왜 커다란 집에 혼자 사는지 알까? 우리 동네 버스는 타 봤을까? 우리동네 최대 현안이 쓰레기 소각과 축산으로 인한 악취라는 것을 알까? 선거철과 동네 행사장 외에 만난 적 없는 그들이 대표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보 모슬리/녹색평론사/1만 8000원.

해가 갈수록 투표장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 해서 의무적으로 투표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몇 번의 선거를 거듭해도 우리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농촌은 소외되고 환경은 유린되고 청년들은 도시로 떠나고 있다. 그들은 과연 우리를 대표해서 일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답답한 마음이 쌓여가던 중에 소화제처럼 가슴이 뻥 뚫리는 책을 만났다. 영국의 작가 이보 모슬리가 쓴 《민중의 이름으로》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선거대의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지식과 나의 상식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선거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반대편에 설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민중에 의한 통치’라고 저자는 말한다. 민중에 의해 통치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책은 영국에서 시작된 선거의 역사를 조명하며 선거가 권력과 이익을 탐하는 중산계급 엘리트들의 정치적 수단이 됐음을 보여준다. 선거대의제는 학자와 정치가들에 의해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쓰게 된다. 이 가면을 쓰고 선거에 뽑힌 대표들은 앞에서는 민중을 위해 일하는 척하며 뒤에서는 민중을 기만하고 이익을 탐하게 된다. 영국에서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농부들이 하원이 만든 법에 의해 땅을 빼앗기고 도시로 쫓겨나 도시 빈민이 되었고 은행의 불법적인 통화발행과 부채증식을 합법화해 2008년의 금융위기를 일으키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탈을 쓴 선거대의제는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로 수출돼 대량학살과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 우리도 초기 진통의 역사를 겪었다. 독재정치를 벗어나고 남녀노소 모두가 투표하는 보통선거를 치르면서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민중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선거대의제가 아닌 방법으로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까? 선거 대신 추첨으로 대표를 뽑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16만 인구의 대표를 뽑는 것이 아니라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정도의 마을 단위에서 대표를 추첨으로 뽑아 주민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이다. ‘과연 내가? 정치는 똑똑한 엘리트들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정치는 엘리트만이 할 수 있다는 환상에 갇혀서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시도는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를 보여주고 있는 스위스, 미국과 덴마크의 일부 지역에서도 추첨대의제를 행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을 바꾼다면 민주주의는 멀리 있지 않다.

거대양당이 아닌 다수당의 다양성이 확보되면 시민들의 의견이 정치에 더 많이 반영되리라는 믿음으로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한 발짝 물러나 지금의 시스템 바깥에서 바라보게 된다. 과연 참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 우리의 사회와 제도의 주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