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형 인간과 '큐레이션 커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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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형 인간과 '큐레이션 커머스'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4.12.12 11: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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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로 잘 알려진 ‘햄릿’의 주인공 햄릿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할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결정을 머뭇거리는 ‘결정장애’ 증후군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할 중요한 순간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고민을 계속하는 부류의 인간형을 햄릿형 인간, 그 반대의 인간형을 돈키호테형이라고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는 분류한 바 있다. 에고이스트적인 기질이 강하여 그가 부정적으로 보았던 햄릿형 인간 때문에 21세기에 새로운 산업이 형성되고, 앞으로 더욱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 하니 투르게네프가 다시 살아난다면 자신의 의견을 취소할는지도 모르겠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2015년 트렌드중의 하나는 햄릿형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도와주는 ‘큐레이션 커머스(curation commerce)’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햄릿’이 400년 이전 작품이지만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것은 햄릿이라는 등장인물의 성격이 인간 내면의 한 ‘원형(archtype)’이 되기 때문이다. 즉 머뭇거리는 인간형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내면에 조금씩 상존(尙存)한다. 이것을 두고 여러 의견이 오랜 동안 상충(相沖)해 오기도 했다. 20세기 최고의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엘리엇(T.S. Eliot)은 ‘햄릿’을 실패작이라고 평가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 햄릿이 이유 없이 복수를 머뭇거리고 있고, 그렇게 해야 할만한 ‘객관적 상관물(머뭇거리는 이유가 될 만한 증거)’을 셰익스피어가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 실패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햄릿이 복수를 지연할 만한 이유가 햄릿의 내면에 억압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하면서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겪기 때문이다.

즉 아이가 어머니와 둘만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방해꾼 아버지가 나타나 둘만의 관계를 갈라놓으니, 아이가 힘센 아버지의 세계로 어쩔 수 없이 쫓아가야만 했다는 것이다. 햄릿에게도 한때 이렇게 아버지를 제거하고 싶은 분노가 마음 속 어디엔가 억압되어 쌓여있었는데 삼촌 클로디어스가 대신 아버지를 죽여주어서, 잠시 복수를 머뭇거렸다고 프로이트는 설명한다. ‘햄릿’을 어떻게 해석하든, ‘결정장애’가 있는 햄릿형 인간형이 오히려 산업의 촉진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우유부단함이 이재에 밝은 사람에게는 돈벌이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머뭇거리는 인간형은 셰익스피어 시대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더 많다. 물건을 사든 직장을 선택하든 선택의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대학교수인 쉬나 아엔가는 뉴욕의 대형마트에서 실험을 했다고 한다. 한 집단에는 여섯 가지 초콜릿을 맛보게 하고, 다른 집단엔 서른 가지를 맛보게 했다. 그러고 나서 실험 참가자들의 만족도를 조사해보았더니, 서른 개 초콜릿 쪽 집단보다 여섯 개 중에서 골라먹은 사람들이 더 만족스럽다는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은 잘사는 선진국 보다 남미의 몇몇 나라들, 동남아시아의 잘살지 못하는 일부 국가들에서 행복에 대한 만족도가 높게 나타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가족을 중심으로 전통적 삶의 공동체를 살아가는 미국의 아미쉬(Amish)들이 뉴욕커들 보다도 행복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은 많은 선택의 기회와 행복이 정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고, 소비자들은 어떤 것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분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니 SNS상에서 ‘도와주세요’라는 글이 이제 낯설지 않다.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어 무슨 옷을 입어야 스타일이 살아날 것이며, 자동차는 무슨 차를 사야하며, 식당은 어느 집이 맛이 있으며, 책은 무슨 책을 읽어야하는지, ‘큐레이션 커머스’는 결정을 미루는 햄릿형 인간에게 필요해 보인다. 이런 도움을 받음으로써 소비자는 기회비용과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컨설팅이 유망한 산업으로까지 발전하리라는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패션 컨설팅 산업으로 1억 유로를 돌파하고 있다고도 한다. 선택지가 많을 때, 우리는 모두 ‘yes’와 ‘no’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메이비 세대(generation maybe)’이기 쉽다.

미래의 유통시장은 정보의 바다에서 방황하고 있는 ‘햄릿형 인간’, ‘메이비 세대’의 욕망마저 빼앗아 갈는지 모른다. 그러니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확신에 찬 선택을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이 더 흥미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햄릿을 사랑하기는 어려우나, 돈키호테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투르게네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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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2015-02-08 23:24:50
20대인 저에겐 모든 게 와 닿습니다. 친구들 중에는 햄릿증후군(선택장애)을 종종 볼 수 있는 현실입니다. 정보와 상품의 홍수 속에서 신뢰할 누군가의 조언,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큐레이션 커머스는 대안으로 제시된 패턴으로 보입니다.
햄릿형이 심사숙고하는 인간형이라면 돈키호테형은 추진력 강한 인간형이라 볼 수 있는데 생각은 햄릿처럼 하되 행동은 돈키호테처럼 하는 지혜있는 선택을 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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