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노동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 분야의 전무후무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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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노동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 분야의 전무후무한 시집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6.1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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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동민의 시집 〈보험별곡〉

1989년 3월, <도서출판 세계>가 ‘세계시선’ 세 번째로 시인 최동민의 시집 <보험별곡>을 펴냈다. 최동민 시인은 전태일기념사업회가 1988년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횃불을 높이 든 전태일을 기념하고자 제정, 시행한 ‘제1회전태일문학상’에 연작시 ‘보험별곡’으로 응모,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연고로 출판사는 시집에 ‘제1회 전태일문학상 우수작 수상작품’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보험 노동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 분야의 전무후무한 시집이다.

최동민 시인은 1980년대 당시 경기도 양평에서 대한교육보험 보험영업을 했다. 시집 <보험별곡>에는 시인 자신이 보험영업을 하며 몸소 직접 체험한 일명 ‘보험쟁이’의 애환을 가감 없이 진실하게 담았다.

제1회 전태일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병걸 문학평론가는 당시 ‘구체적 현장성과 운동의 실천성’이라는 제목의 심사평에서 “심사기준으로 전태일문학상 제정의 정신에 따라 ‘노동해방 인간 해방운동의 구체적 현장성과 운동의 실천성이 객관적으로 표현됐는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따라서 구체적 현장성과는 동떨어진 관념적 작품들은 수상작에서 배제됐으며, 또한 기성 시인이나 그에 준하는 활동을 하는 이들은 ‘현장 시인’의 배출 우선이라는 차원에서 배제됐다”면서 “최동민 씨의 ‘보험별곡’은 정인화 씨의 ‘불매가’와 함께 선정된 수상작으로, 주로 보험회사와 보험회사 직원들의 노동현장에서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최동민 씨는 예심을 통과한 15명 중 시를 다루는 솜씨가 가장 안정돼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시의 소재가 노동현장에서부터 일상적 생활과 정치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넓고도 다양하다”고 평했다.

작가 유시주는 ‘새로운 삶’이라는 제목의 시집 발문에서 “재미있게, 속 시원하게 슬슬 잘도 넘어가는 그의 시를 보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한 푼 에누리 없이 밀착돼 있다. 그의 시는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 처음 시를 쓰게 된 것도 ‘계약자를 설득할 때, 그 사람과 나눈 이야기를 주제로 시를 한 편 적어 보내놓고, 그다음에 만나보면 이야기가 잘 풀려서’였고, 1부에 실린 보험 시는 모두 회사 책임자에게 규탄문을 보낼 때 같이 보낸 것을 모은 것들이라니 그에게 있어 시는 아주 구체적인 생존의 무기였던 셈이다”라고 논했다. 

시집은 시인이 책머리 글에서 “교육보험 대가리덜 간담이 서늘하겠지!”라며 “처음에는 하소연으로 시작해서 오기로 객기로 야유로 죽지 않으면 까무러치기로 엄포로 사명감으로 절망감으로 할 일도 없으니까 줄줄이 썼던 것이다.”라고 밝혔듯, 보험업 자본과 그 조직으로부터 교묘하고 다양하게 구속 착취당하는 보험노동자들의 핍진한 노동을 생동감 있게 담았다.

“한 달이 지났는데요/예 보험회산 본래 첫 달 월급이 없습니다//두 달이 지났는데요/예 드려야죠 무척 힘드시죠//4만 원짜리 월급봉투에/세금 떼고 봉사용품비(앨범3 메모꽂이4)떼고//신계약비 미납분(이생명 씨 교육보험) 25,390원 떼고/빨갛게 1,860원을 적어 넣는다.”(시 ‘신입사원’ 전문)

1956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시인은 대한교육보험 양평지부 지부장을 지내다가 농업에 종사했다. 이후 양평에서 정당 활동을 하다 현재 고향 마을인 양평군 지평면 수곡리에 안거하고 있다.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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