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농촌과 공장, 건설 탄광 노동현장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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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농촌과 공장, 건설 탄광 노동현장을 담다
  •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 승인 2023.07.2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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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시인의 시집 <해 뜨는 검은 땅>

1990년 11월, 박영희 시인이 1980년대 농촌과 공장, 건설, 탄광 노동현장을 담은 시집 <해 뜨는 검은 땅>을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에서 ‘창비시선’ 89번으로 출간했다. 시인은 15세 어린 나이에 서울로 상경해 신문팔이와 신문 배달, 구두닦이, 웨이터, 공장노동자, 건설노동자 생활을 했으며, 시집 <해 뜨는 검은 땅>을 출간하기 몇 해 전 27세 때 강원도 사북으로 들어가 다년간 탄광에서 광산노동자의 외롭고 고된 노동을 체험했다. 

시집은 시인이 후기에서 “묶어본 시집의 1부는 공장 생활과 노가다 판에서 씌어 진 시들이고 2, 3부는 광산촌에 대한 시들이다. 4부는 고향인 남악리에서, 5부는 함께 걷는 세대들 속에서 얻어낸 시들이다”라고 밝혔듯, 석탄을 채탄하는 탄광 노동(자)의 관련 시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정부에서도 받아주지 않는/폐광 신청을 내놓고/일본으로 도망간 사장이야/어차피 도망간 거니까/우리가 힘을 합해 일해 보자고/너도나도 앞장섰지만/우리들의 마지막 삶까지 빼앗는/수입 연탄./연탄공장에 사정해 당긴 선불로/쌀 몇 되 팔아 허기 채우며/일을 했지만/다들 하나가 되어/주인 없는 탄광소 살려보자고/무식한 눈물 흘리며 탄을 캤지만/수입 연탄에 눌려 남는 건/살의 낀 분노뿐./막걸리집에 모여 고개 맞대도/철 지난 김장배추 안주처럼/갈수록 힘이 없다”(시 ‘수입 연탄’ 전문) 

시집 <해 뜨는 검은 땅>에 대해 고형렬 시인은 뒤표지글에서 “사북이라고 하는 거칠은 탄광촌의 사랑과 분노가 녹아 있고 그 감동은 남다르다. 이는 고향 남악리를 떠난 뒤 강원도 산속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시인의 집념과 문학적 리얼리티의 당연한 결과이다”라고 평했으며, 정인화 시인은 ‘숨기지 않으려는 떳떳함’이라는 제목의 시집 발문을 통해 “시집에 수록된 72편의 시들은 노동해방에 대한 그의 의지가 점점 분명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제, “그는 고통 어린 농민들의 이야기와 죽음이 도사리는 탄광촌의 현장을 날카롭게 그리고 있다. 나는 그러한 그의 시에서 농민과 광부들의 희망적인 의지를 본다”고 논했다.

시인은 사북에서 광부 생활을 하던 당시 우연히 일제강점기에 사용하던 폐광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일제강점기 시절 북한에 있는 광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그것을 바탕으로 한 편의 장편서사시를 쓰고 싶은 욕망에 1991년 10월, 중국 북한대사관을 거쳐 베이징발 평양행 고려민항기를 타고 북한으로 들어가 4박 5일간 체류했다. 체류하는 동안 자료입수와 탄광견학 등을 북한 당국에 요청했으나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추방됐다. 귀국 후 1992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6년 7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다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1962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에서 출생한 시인은 1985년 ‘민의’로 등단했다. 시집 ‘조카의 하늘’, ‘해 뜨는 검은 땅’, ‘팽이는 서고 싶다’, ‘즐거운 세탁’,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등과 르포집 ‘우리 시대의 장인들’,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만주의 아이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 서간집 ‘영희가 서로에게’, 평전 ‘김경숙’ 기행산문집 ‘만주를 가다’, 청소년소설 ‘운동장이 없는 학교’, ‘대통령이 죽었다’ 등이 있다.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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