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의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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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의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해
  • 이상권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8.0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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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미국 여성 축구대표팀은 남성 대표팀과 동일한 임금을 받기로 미국축구협회와 단체협약을 맺고 합의했다. 2016년 여성 축구대표팀이 연방정부에 진정을 제기한 것부터 시작해 6년 동안 축구협회를 상대로 하는 끈질긴 협상과 법정소송 등을 거쳐서 얻어낸 성과였다. 

이 협상결과를 두고 FIFA 여자 월드컵에서 통산 4번째 우승을 거머쥔 여성 축구대표팀이 상대적으로 국제경기 성적이 떨어지는 남성 축구팀보다 연봉이 떨어지는 성차별 현상을 바로잡은 당연한 결과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에, 남자 대표팀이 받는 상금의 10분의 1도 벌어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FC 댈러스의 15세 이하 유소년팀과의 연습경기에서 2:5로 패한 여성대표팀에게 남성팀이 벌어들인 돈을 나눠주는 합의는 마땅치 않다는 평가도 있었다.

스포츠는 그 자체로 뛰어난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인간의 통상적인 육체적 능력을 초월하는 선수들의 역동적 플레이를 바탕으로 각본 없는 드라마가 쓰여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경기는 의도나 목적이 없는 예술작품에 가깝다. 이런 예술작품은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감동을 준다. 이런 면에서 여성 스포츠와 남성 스포츠는 전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여성이 가지는 육체적 능력의 한계로 인해 특정 종목의 여성 경기는 남성 경기만큼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어떤 특정 경기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인기도에 직접 반영돼 경기 주최자의 입장료 수입으로 현실화 되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곧바로 선수들이나 팀에 지급되는 연봉이나 상금의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반면에 남녀 스포츠 선수의 연봉 차이가 여성 스포츠에 대한 지원과 미디어 노출이 상대적으로 적고, 여성 스포츠의 가치를 약화시키고 무시하는 성별에 기반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소위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을 근거로 해서 ‘성차별’이라는 강력한 단어 선택을 통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성차별주의자로 몰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볼 때 필자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성차별주의자에 해당할 것이다.

‘PC’란 인종과 성별, 종교, 성적 지향, 장애, 직업 등과 관련해 소수 약자에 대한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취지의 정치적, 사회적 운동을 말하며, PC주의자들은 가끔씩 그들의 이념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생각하는 나머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조주의적 불관용의 문제로 인해 대중들의 반감과 거부감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미국식 PC운동에 대해 “불관용의 한 형태로, 강자의 자기 옹호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한 바가 있으며, 2010년대 이후부터 PC라는 말이 인종·성·장애·종교·직업에서의 ‘올바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행동을 풍자할 때 사용되는 부정적인 용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러한 PC주의자들의 태도는 최근에 이슈가 됐던 실사화 인어공주의 흥행 실패에 대한 입장차이에서도 보여진다. 영화 인어공주의 완성도는 북미를 제외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10점 만점에 5점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 빨강머리에 동그란 눈이었던 인어공주역을 흑인 할리 베일리가 맡게 되자, 한국에서는 그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 캐스팅 실패라고 비판하는 글이 많이 따라 붙었다. 그러자 PC주의자들은 “한국인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것이 바로 ‘차별’에 대한 균형적 개념을 몰각한 채 행동하는 PC주의자들의 실체이다.

최근 발생한 서울 모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 사건이 발단이 돼 ‘학생의 인권 보호’와 ‘교사의 교육권 확보’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학생의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는 이념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일부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교사를 학생 인권의 잠재적 위협자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에 편승한 일부 교육 당국에 의해 ‘학생인권조례’라는 형태로 입법화됐다. 

문제의 핵심은 침해돼서는 안 될 학생의 인권이 무엇인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학생인권조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며, 이 조례는 교사와 학생의 본분이 다르다는 근본적인 바탕을 무시한 채, 사회적으로 인기 있는 차별금지원칙을 내세워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악법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분명히 중요한 가치와 원칙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이 사회의 주류사상으로 과도하게 강조되고, 그들의 ‘올바름’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 실천을 강요받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선 일말의 타협과 대화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 세상에 선과 악, 옳고 그름만 존재할 뿐이라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교화의 대상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 

정치적 올바름이 강요하는 것은 ‘옳다’라는 일방적 가치관이지만, 이는 다른 사람의 자유 의지를 침해하게 되며, 종국적으로는 이를 주장한 사람의 판단력과 행동까지 제한하게 된다. 

학생의 인권이 교육권보다 우위에 있어 ‘진정한 가르침’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는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상권 <변호사, 전 국회의원,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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