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도시를 향한 녹색불-《각자도사 사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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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도시를 향한 녹색불-《각자도사 사회》를 읽고
  • 이동호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
  • 승인 2023.08.3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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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사 사회》 송병기, 어크로스

홍성에 배달을 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형형색색 건물 몇 개가 있다. 동화 속 궁전 모습을 본떠 지은 건물. 옛 간판 자국을 근거로 추정해 보면 이곳은 유치원과 결혼식장이었다. 도시였더라면 젊은이들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계속 태어나 운영이 잘 되었을 궁전들. 안타깝게도 농촌 소도시에서는 소명을 다한 탓에 지금은 색이 바래고 외부 시멘트가 부서지고 있다. 그 궁전들이 최근에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요양원. 

“요양병원 수는 2000년 13개에서 2019년 1500개를 넘었고, 요양원은 2008년 1700개에서 2019년 5300여 개로 폭증했다.”

홍성에 새로 생기는 건물 중 많은 수는 요양(병)원 건물이고, 마을 구석구석 부지런히 누비는 차도 재가요양 차량이다. 요양원이 늘어난 만큼 노년의 삶은 나아졌을까. 책 <각자도사 사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환자수도 늘고 병상도 늘었으나, 요양원 노동자 수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송병기/어크로스/1만 6000원.

“(요양병원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근무자뿐만 아니라 노인의 인권 문제로도 이어진다. CCTV가 과다하게 설치되고, 낙상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신체억제대 사용 범위가 넓어지며, 식사 수발이 필요 없도록 ‘콧줄’이 삽입되고, 화장실 이용을 억제하기 위해서 기저귀가 남용된다.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 입소자의 ‘안전’만 강화된다. 그렇게 노인의 서사적 삶은 탈각되고, … 노인은 먹는 입만 가진 존재로 전락한다. 한편 가족 보호자는 간병(비), 의료비, 시설비까지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국가가 여전히 노인 부양을 가족에게 떠맡기고 있는 셈이다.”

평생 직장인으로 살아온 내 아버지는 4년 전 정년퇴직을 했다. 하지만 다시 취업을 했다. 평생을 직장인으로 살아온 탓에, 근로자 외의 삶이 어색하다. 이대로 노년을 맞이하는 것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벌 수 있을 때 더 벌자.’ 아버지는 오늘도 주간과 야간을 번갈아 출근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어떤’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지가 한국에서는 그의 경제력에 따라 달라진다. 최소한 인간답게 죽고 싶다는 소망도 상품이 됐다. 살아있는 게 가족들에게 짐이라는 서사를 노인들은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돌봄이 어떤 부분에서 축산업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축산업이 가축의 생애 초기과정(돈으로 환산되기까지)을 집약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라면 돌봄 산업은 노동력을 상실한 인간의 말년을 처리하는 기관처럼 말이다. 그곳에서 노인은 기본 욕구만 해결받는 대상일 뿐이다. 혹은 그조차 행운으로 여겨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족들은 죄의식 속에 살게 된다.

‘익숙한 곳에서의 죽음’, 시설에서의 죽음이 아닌 집에서의 죽음을 막연히 동경해 왔던 내게 책은 첫장부터 ‘열악한 집에서 살아가는 노인에게 집은 안식처라기보다는 고립된 장소’라는 말로 머리를 한대 쥐어박는다. 그리고 정책입안자도 정체를 모르는 ‘커뮤니티 케어’부터, 호스피스와 안락사, 연명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스펙트럼처럼 이어간다.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가 어떻게 다른건지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노년의 돌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실제 대상자가 되기 전까지 알기 어렵다. 막상 마주할 때가 되었을 때는 개개인은 어찌할 수 없는 벽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막연히 더 많은 노후 자금을 준비하는 것만이 안전한 길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생애 전체를 노동자와 소비자로만 살다 죽을 수밖에 없는 각자도사 사회에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헌법 제34조에는 쓰여있다. 인간다운 생활은 인간다운 죽음이기도 하다. 국가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가 어떤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아니, 내가 인간답게 죽기 위해서. 그런 점에 이 책이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의존적인데, 마치 노인만 의존적인 존재인 것처럼 딱지를 붙인 셈이다. ‘집안일’에 머물던 노인 부양은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었다기보다는 시장으로 옮아갔다.… 노년이 불평등한 삶의 형태로 나타나는 세계에서 노화와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다.”

의료인류학자인 저자는 어떤 이론과 철학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돌봄과 의료 현장에서 현재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의료나 돌봄 전문가가 될 것은 아니지만, 돌봄과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인간으로서 우리 지역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에겐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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